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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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칼럼
무더운 여름 한낮 시집을 읽을 때, 에어컨보다는 덜덜거리는 골드스타 선풍기 바람이 더 낫다. 조금만 움직거리면 땀이 쏟아져, 하릴없이 대자리 깔고 누워 백석의 시를 읽었다. ‘개이빨’을 ‘개니빠디’라 하는 평북사투리가 정감 있다. 그중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라는 시가 재미있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방안에는 성주님, 토방에는 다운구신, 부엌으로 도망가면 조앙님, 고방에는 제석님, 굴통에는 굴대 장군, 대문 열고 도망가면 수문장, 밭마당귀에 연자당 구신. “나는 고만 기겁을 하여 곧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마라 내 발 뒤축에는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바로 지금 이 나라가 ‘맨천 구신’뿐이다. 먹기 싫은 미국 쇠고기 사 가라, 먹으라 성화대는 구신, 촛불 들면 물대포 쏘는 구신, 정부정책 비판한다고 수사 으름장 놓는 구신, 50대 민간인 여성을 총으로 쏘는 구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구신. 이렇게 나오는 북이며 일본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는 구신. 나라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이 제일 무섭다. 이 모든 사달은 기실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그렇다. 우리는 된장에 김치 말고 부드럽고 고소한 마블링 쇠고기를 싼값에 잔뜩 먹고 싶다. 그래서 미국 소 장사들은 풀 먹는 소에게 고기를 먹인다. 나 하나가 쇠고기 먹으면 네 사람분의 곡식이 없어져도 나는 고기가 먹고 싶으니 이게 바로 달걀구신이다. 지난 석 달 가까이 촛불을 들게 한 이 정부도 바로 우리가 선택했다. 부자 되게 해 달라는 일념으로, 공익을 실현하는 대통령 자리에 돈만 쫓아다니는 회사 사장을 뽑아 놓은 게 바로 촛불 든 우리다. 그러니 단박에 뿌리뽑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마땅히 우리 스스로의 죗값을 다 치러야 한다는 말이요, 변증법적으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세계화를 가장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렉서스와 올리브>라는 책을 보면 물보다는 콜라를, 떡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속성상,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라는 귀신은 아프간 산골이나 아프리카 밀림에까지 반드시 출몰하게 되어 있다.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을 못 본 체하고 마을에 득시글대는 바깥구신들만 탓할 수는 없다. 효율, 돈, 편안함을 쫓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이길 현실적 대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는 최대 복병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신뿐이 아닌가 싶다. 벌써 그 조짐이 보인다. 금융자본은 온갖 최신기법을 동원해 부가가치를 눈덩이처럼 불려가다가 마침내 전세계에 신용위기를 가져왔다.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 좋아해서 소를 소 대접 않고 소에게 소를 먹이다가 급기야는 끓여도 죽지 않고 0.001g만으로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프리온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변증법의 섭리라면 섭리일까. 신문을 펼치면 온통 무서운 귀신들 이야기뿐.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같은 시는 그만 접고 백석의 또다른 시나 한 수 읽어보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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