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협연대 관계자들이 카마다 농민협동조합 회원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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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삶터] 필리핀 공정무역 현장(상)
여성농민 주도 협동조합 설립, 공동체 일궈
날품팔이 하루살이에서 가구당 연 2만페소
남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홀로 설 수 있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더 이상 도움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공정무역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공정무역은 설탕, 커피, 초콜릿, 축구공, 의류 등 가난한 나라에서 정직하고 공정하게 만든 물건을 시장가격보다 조금 높게 '제값'을 주고 삼으로써 생산자의 자립을 돕는 일을 뜻합니다. 정직하고 공정한 생산(Fair Production)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생산하며, 생산품을 팔아서 번 수입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사는 설탕 한 봉지와 내가 먹고 마시는 초콜릿과 커피 한 잔이 그런 큰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신복수 회장, 강석호 가공생산자 대표, 김태연 공정무역추진위원회 대리, 교사 나소은씨 등 ㈔한국생협연대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필리핀의 농촌 마을에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자들이 먹는 흰 설탕과 달리 몸에 좋은 미네랄 듬뿍
지난 6일 오후 필리핀 중부 파나이섬 일로일로시에서 차로 40분 걸리는 한 농촌 마을을 찾았습니다. 여성농민들이 중심이 돼 만든 농민협동조합 카마다(KAMADA)가 자리한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설탕공장으로 먼저 안내했습니다. 유기농 사탕수수를 써서 필리핀 전통방식으로 설탕을 만드는 곳입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수확한 사탕수수를 착즙기에 넣고 짜서 즙을 뽑아낸 뒤 큰 가마솥에서 끓입니다. 즙을 끓이면 걸쭉한 액체가 되는데 맛과 빛깔이 우리나라 조청과 비슷합니다. 신기한 것은 여러 차례 가마를 옮겨가며 끓이다 거품이 많이 일 때 이를 다른 곳에 퍼 담아 식히는데, 거품이 가라앉자마자 액체가 바로 설탕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150~200년전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마스코바도 설탕 만드는 과정(1,2,3 순서) 1.카마다 설탕공장에서 농민들이 착즙기를 통과한 사탕수수 껍질을 옮기고 있다. 2.가마솥에서 여러 차례 끓인 사탕수수즙을 식히면 설탕이 된다. 카마다의 설탕공장에서 한 농민이 사탕수수즙을 고르게 펴고 있다. 3. 굵은 설탕 덩어리를 골라내기 위해 필리핀 노동자들이 카마다에서 만들어 보낸 마스코바도 설탕을 채로 걸러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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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바도 설탕이 공정무역의 주요 품목이 되면서 카마다 설탕공장은 마을의 구심이자 희망이 됐습니다. 마을회관을 공장 안에 지은 데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집니다. 손님맞이는 물론 마을잔치도 주로 설탕공장에서 이뤄집니다. 실제 설탕공장이 세워진 뒤 카마다에 일어난 변화를 보면 이들이 공정무역에 거는 기대를 알 수 있습니다. 카마다 협동조합은 1989년에 여성 농민들의 주도로 설립됐습니다.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에를린다 카딘은 "서로 돕지 않고는 생존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20가족이 뜻을 모았고, 농촌개발을 돕는 한 시민단체로부터 2만페소(우리 돈 50만원 가량)를 지원받아 쌀과 마호가니 종자 배양, 염소·돼지 사육, 지속가능농업 추진 등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예전보다 형편은 나아졌지만 자급자족 수준을 넘기는 힘들었습니다. “작은 공장 하나가 50가족 규모의 농촌 공동체 유지하게 하다니…” 하지만 2004년 카마다에 설탕공장이 세워진 뒤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카마다의 농민들이 한 해 생산해 공정무역으로 교역하는 마스코바도 설탕은 100톤이 넘습니다. 공정무역은 판매와 구입처럼 사고팔고 쓰는 사람을 분리하는 말 대신 모두를 하나로 여기는 뜻을 담아 교역이라는 말을 씁니다.
마스코바도 설탕, 파인애플생강잼, 바나나칩, 생강젤리 등 피에프티시에서 생산해 공정무역으로 교역하는 물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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