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6 12:22
수정 : 2018.11.06 20:00
[곽윤섭의 사진마을] 사진전문출판 30년 이규상 눈빛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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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상 대표가 5일 눈빛출판사 편집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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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문출판사 눈빛(대표 이규상)은 3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 이규상 대표는 눈빛의 30년을 정리해 ‘지금까지의 사진-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을 책으로 엮어냈다.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마다 한국의 사진가가 있었다. 책에서 이 대표는 “열아홉의 청년 사진가 이경모(1926~2001)가 해방이 된 당일인 1945년 8월 15일 오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광양에 내려와 있던 노산 이은상도 참석한 광양경찰서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장면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진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라고 썼다. 성낙인은 다음날인 16일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조선건국동맹의 건준 위원장 여운형의 대중연설회를 촬영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6.25전쟁, 4.19, 5.16 등 한국사의 변혁기 마다 사진가들이 자리를 지켜왔다. 성두경(1915~1986)이 6.25전쟁기 동족상잔의 비극에 휩쓸린 서울에 있었고 4.19의 전날인 4월 18일 정치깡패가 고려대생들을 때려눕힌 현장에 사진기자 정범태가 있었으며 5.16과 동베를린간첩단 사건 재판정에 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사진들을 눈빛에서 책으로 펴냈다.
“맥락 부여해 세상에 소개하는 보람”
이 대표는 “내가 운영해온 출판사는 30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출간한 사진집은 되짚어보니 말 그대도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눈빛은 창립 30돌을 맞아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기념전과 북페어를 연다. 이번 기념전에는 그동안 눈빛이 출간한 사진책 중 절판된 것을 빼고 남아있는 450종 전부와 눈빛을 거쳐간 구와바라 시세이, 정태원, 권주훈, 엄상빈, 전민조, 장숙, 변순철 등 사진가들의 원판 사진, 그리고 눈빛에서 수집해온 아카이브 사진 중 미군정기에 외국인이 찍은 코다크롬 컬러 10점도 전시된다.
이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집안 형편상 매달은 아니고 신년호 잡지는 사줬다. 두세 달 동안 책이 닳도록 봤다. <새소년>, <소년동아> 이런 거였다. 중학교 때는 누님이 용돈을 줘서 <학원> 잡지 같은 것을 구독할 수 있었다. 문학으로 관심이 옮겨지면서 월간지 <문학사상>을 거의 100권까지 봤다. 중학생치고는 약간의 겉멋이 있었다. 70년대 작가 김주영, 김원일, 조해일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대학도 문예창작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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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나온 주요 사진집 <지금까지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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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책 ‘지금까지의 사진’ 감사의 말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를 출판의 길로 이끌어 주신 최인훈, 오규원, 이기웅 선생께 감사 드린다. 그분들이 꽂아 준 목표를 향해 나는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왔다.” 창작도 중요하지만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출판 쪽으로 걷게 되어 1985년에 열화당에 들어갔다. 미술서적을 많이 내던 그곳에서 서서히 시각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황영성 같은 서양화가의 카탈로그, 민중미술도 봤다. 그리고 조세희의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가 있었다. 사진이 뭔가 우리 삶에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 사진이 음풍농월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그렇지 않고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사진도 있다는 것을 봤다.
문학에 꽂혀 대학도 문창과를 다녔다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 말을 따랐다
조세희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 감명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쓸모를 봤다
첫 책 크리스 마커 ‘북녘 사람들’
최근까지도 유럽 등에서 주문
이경모-성두경-정범태-김천길 등
해방-6·25-4·19-5·16 격변기 ‘증언’
“한 권 내 팔리면 그 돈으로 다음 책”
30년간 700종 펴내며 뚜벅뚜벅
“미학, 사진비평, 사진사, 사진인문 등
자생적 한국 사진이론서 기다려”
이 대표는 “출판이 재미 있었다. 흩어진 사진을 모아 정리하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에 맥락을 부여해 사진가로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 보람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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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나온 주요 사진집 <북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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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열화당을 나오게 되었다. 몇 달 지나 예비군훈련을 받고 왔는데 유학 갔다가 막 귀국한 미술평론가 정진국의 연락이 와있었다. “사진전문출판사 하나 같이 하자”고 했다. 여균동, 이영준이 합류했고 거름출판사 유대기 사장이 후원했다. 1988년 11월에 출판등록을 했다. 이듬해 2월에 눈빛의 첫 책 ‘북녘 사람들’(크리스 마커)이 나왔다. 2008년에 저자의 동의를 얻어 개정판을 재출간한 한국어판이 현재 남아있는 크리스 마커의 유일한 북한관계 사진집이 되었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최근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 책 주문이 종종 들어온다. 초기 눈빛의 멤버들은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갔고 1989년 거름출판사에서 분리독립한 눈빛에 이규상이 대표로 취임했다. 초기부터 굵직한 책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작가 방송사 대담프로 출연해 대박
이 대표는 “앞으로 쓰일 한국현대사진사는 발굴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이 대표는 “눈빛의 역할은 검증된 사람의 책을 내기보다는 이름없이 묻혀있는 사진가와 사진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러 소식통이 있고 대담이 있고 책이 있다. 그 중에서도 최인진 선생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셨다”라고 했다. 여순사건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경모는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광주고보 시절인 1944년에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문에서 입선도 했고 천경자와 2인전을 가진 이력이 있다. 1946년에 지금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취임해 보도사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해방, 여순사건, 6.25 전쟁까지 ‘격동기의 현장’을 찍었다. 그런데 50년대 중반부터는 보도사진에서 차츰 멀어졌다. 여순사건 사진들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다. 자기가 찍은 보도사진은 단순한 기록일 뿐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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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나온 주요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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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모는 사진 공개에 회의적이었다가 최인진, 한국일보의 고명진, 이규상이 다각도로 설득하자 허락했다. 다행인 것은 이경모가 현장은 떠났지만 예전 필름은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1989년 12월에 ‘격동기의 현장’이 나왔다. 그전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던 여순사건 등의 사진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여러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KBS 대담프로 ‘11시에 만납시다’에 이경모가 출연하게 되어 책이 전국 방송망을 탔다. 사진집 사상 초유의 6쇄를 기록했다.
‘판단하기 전에 기록하라’
30년간 사진 분야로 국한된 전문출판을 해왔으니 고비가 없었겠는가? 이 대표는 “30년간 700여 종의 책이 나왔는데 한 권 한 권 할 때마다 힘들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등 고비 때에도 큰 위기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 우리가 사옥을 세운 것도 아니고 사세를 키운 것도 아니다. 그저 한 권 만들어 팔리면 그 돈으로 또 다음 책을 내는데 썼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동안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책을 더 잘 만들었어야 하는 후회가 자주 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출판을 이렇게 못해왔을 것 같다. 다행히도 자식들이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들이 지금 파리 7대학에서 출판학을 전공하고 있다. 눈빛을 이어가게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순수 사진집 외에 기억나는 책이 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2006년 시작해 모두 49권으로 나온 20세기민중구술 열전 시리즈를 하면서 인류학 하는 분들의 학문하는 자세인 ‘판단하기 전에 기록하라’는 것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2005년 6월에 나온 ‘그들이 본 한국전쟁, 항미원조-중국인민지원군’을 두고 사회학 하는 분들이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주 주체적인 관점으로 사진편집을 해서 책을 냈다는 평가해 준 것이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눈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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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나온 주요 사진집 <격동한국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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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나온 주요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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