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마을] 청각장애 학생 사진 가르치는 손대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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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부산배화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바늘구멍 사진기를 들고 촬영실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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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아침 9시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부산배화학교 2층 그래픽실에 13명의 학생이 모여 앉았다. 교실 앞에 선 선생은 사진가이자 사회적 기업인 사진놀이문화공간인 <복 짓는 사진관>의 대표인 손대광씨다. 손씨는 올해 3월부터 이 학교에서 ‘사진과 나, 사진과 우리’ 수업을 시작했고 매주 화요일마다 오전 내내 진행되는 이 수업은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이며 모두 35주짜리다. 봄 학기 동안 수업을 해왔으니 학생들과 교사는 서로 낯설지는 않지만 수업의 초반을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교사 손대광씨의 옆에는 이 학교 교무부장인 이동화 선생이 수화통역을 하고 있었다. 배화학교는 청각장애학생 교육 특수학교이며 손대광씨의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도 대부분 청각장애인이다. 학생들은 손씨의 입술과 이동화 선생의 수화를 번갈아 보며 수업을 했다.
손대광씨가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지난 1학기 동안 선생님과 수업을 해왔어요. 지금 기억나죠? 카메라를 만들었던 기억은 나죠? 카메라 어디 있을까?” 한 학생이 대답했다. “교실에 방치되어 있어요.” 교실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웃으면서 수업 시작의 긴장을 풀었다. 수업 내용이 만만치 않았다. 손씨는 교실 앞쪽의 화면에 지난 수업 때 만든 사진을 띄워 놓았다.
“소리 사진 찍으려면 어떻게 할까?”
한 학생이 “지금 조용한데요?” 했다
어딜 가면 들을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불룩한 담요 사진이 뭔지 물었다
여기저기서 각자 느낀 대로 말했다
고민이 있을 때 뒤집어 썼다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한 학생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가 나냐고 하니 “후루룩”
그런 소리를 찾아 운동장 흩어져
각가 만든 바늘구멍사진기로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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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민 학생이 수업시간에 바늘구멍 사진기로 찍은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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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차근차근
“지난 시간에 했던 포토콜라주입니다. 여러분이 포토숍으로 만든 거죠. 아주 오래 전에, 백 년도 더 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이미지를 가지고 놀았어요. 콜라주는 풀로 붙인다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에는 독일의 어떤 사람이 ‘다다’란 말을 만들었어요. ‘다다’는 그냥 ‘논다’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뭘 느꼈죠? 요즘엔 사진이라면 후보정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은 집에서도 포토숍을 하는 것 같아요. 아주 잘해요. 사진은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고 사진을 놀이를 통해 각자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에요.”
수업은 선생인 손씨 혼자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청각장애 학생들이니 대부분 어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선생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을 하곤 했다. 이 반의 유일한 여학생인 정민이는 “(콜라주를 위해) 잡지에서 사진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내가 직접 찍지 않아도 잡지책이라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어요. 골라내서 새롭게 조합이 되었고 만족을 느꼈어요”라고 했다. 화면이 바뀌어 다른 포토콜라주 작업이 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학생들은 “약간 슬픈 느낌이 있어요”, “화내는 모습이 무섭지만 슬픔을 웃기게 표현했어요”라고 반응을 보였다.
수업 진행은 물 흐르듯 매끄럽진 않았다. 주의력이 산만한 어떤 학생들은 계속 딴짓을 하거나 다른 소음을 냈다. 그럴 때면 이 교실의 규칙인 “박수 두 번!”으로 주의를 한 군데로 모으고 다시 이어나갔다.
“자, 지난 시간 복습에 이어 오늘 할 내용을 말하겠어요. 오늘 여러분은 카메라를 직접 만들고 운동장에 나가서 사진을 찍을 거에요. 오늘 찍어야 할 이미지는 소리가 들리는 사진입니다. 찬아,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찬이라는 학생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지금 조용한데요?” 웃지도 화내지도 않으면서 손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교실 말고 밖에 나가서 찾아봅시다. 어딜 가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런 느낌이 나는 이미지를 찍을 수 있을까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아무 답이 없다. 어떤 이야기를 던졌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면 그것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 선생은 어떻게 대처할까? 손씨는 화면에 다른 사진을 띄웠다. 방 안에 담요가 불룩하게 서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 본 적이 있나요? 이게 뭘까요?”
이번엔 여러 반응이 나왔다. “생일선물”, “강아지가 담요를 뒤집어 썼어요”, “서프라이즈 같아요.” 자칫 싸늘해질 뻔 했던 수업 분위기를 살리는 데 성공한 손씨는 “사실 이 안에는 선생님이 들어가 있어요. 내가 모델입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고민이 있을 때 바깥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때 이렇게 담요를 뒤집어 쓰고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어릴 때 야단맞거나 숙제 같은 것을 하기 싫을 때 이렇게 담요를 뒤집어 썼더니 평온해졌어요. 그걸 사진으로 표현해 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우 있죠?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학생들은 말없이 공감을 표했는데 한 학생이 “라면을 먹어요”라고 해서 또 교실이 즐거워졌다. 손씨는 “라면 오케이. 그런데 지금 라면이 없잖아요? 그럼 우리 학교 안에서 라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사진으로 찍어보면 어떨까요? 라면을 먹을 때 어떤 소리가 나지요?” “후루룩.” “그래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은 것을 찾아서 찍어보면 좋겠네요.”
차임벨이 울리고 한나절 같았던 첫 시간이 끝났다. 학생과 선생 사이에 대단한 밀당이 일어났고 긴장과 조화를 위한 노력이 대단히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저러나 쉬는 시간은 한국의 모든 교실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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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배화학교 그래픽실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손대광씨(왼쪽)와 수화통역을 하고 있는 이동화 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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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주춤 하는 아이에겐 일일이
2교시가 시작되면서 바늘구멍 사진기 조립에 앞서 손씨는 빛의 직진성을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름달이 뜬 밤에 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확 떴는데 벽에 그림자가 선명히 맺힌 것을 봤어요. 가만 보니 창문에 있던 화분이 달빛을 받아 비친 거예요. 이 사람이 수학, 철학, 예술 등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생각이 많았겠지요. 이게 바로 바늘구멍 사진기의 시작인데 빛은 직진으로 가요. 바깥에 큰 탑이 있어요. 이 탑 위의 빛이 구멍을 통과하려면 아래로 갈 수밖에 없고 탑 아래의 빛은 위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상이 거꾸로 맺히는 겁니다.”
그리고는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기 위한 키트가 모든 학생에게 나눠졌고 한동안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각자 종이로 된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었다. 작은 볼록렌즈가 하나 달린 이 바늘구멍 사진기는 구멍으로 들어온 상자 바깥의 이미지가 상자 안의 종이 스크린에 맺히게 한 다음 상자에 스마트폰을 삽입하여 찍게 되어있다. 2교시는 확연히 달라졌다.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 손씨의 말에 자신감이 실리기 시작했다. “자 다 만들었으니 운동장에 나가서 촬영 실습을 할 것인데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오늘 찍을 것은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사진입니다. 소리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귀에 들리지 않아도 눈으로 봐서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것을 찾아요. 반장, 책상에 손을 올려봐요. 자, 내가 이렇게 쿵하고 책상을 치니 어때요? 소리는 못 들었다고 해도 책상의 진동은 느꼈죠? 우리는 귀로 듣지 않아도 다른 감각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어요. 나갑시다.”
운동장에 흩어진 학생들은 제각각이었다. 곧잘 자신이 찍을 것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고 어떤 학생은 막연한 듯 자리에 서서 움직이질 못했다. 손씨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주차금지 표지가 저기 있네. 여기선 무슨 소리가 날까요?” 그러자 학생이 “여긴 주차금지니까 나가라는 방송이 나올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래 그거예요.” 손씨는 이렇게 한 학생마다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외로운 배롱나무에 바람이 다가온 느낌”
수업이 끝난 뒤 손대광씨에게,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소리가 나는 것을 찍어라는 게 가능한지 물었다. 손씨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며 “사진을 보고 연상을 할 때 누구는 색감에서 맛을 떠올린다. 특정한 요소, 형태, 색을 보고 자신만의 경험에 의해 자신만의 감각에 의해 소리를 느낀다. 누군가는 이 컵을 보고 맑은 소리, 혹은 둔탁한 소리를 느낀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물었더니 한 학생은 ‘스르륵’이란 표현을 했다고 한다. 배워서 아는 소리와 실제 소리는 다를 수 있다. 손씨는 “미미하게 들어도 학생들이 본인의 언어를 지어내더라. 언어는 생각하는 사람과 실체 사이의 장벽 같은 것이다. 그 장벽을 주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씨가 수업 뒤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리뷰하고 각자 한 장씩 골라 글로 적어오라고 했다. 그 중 차정민 학생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제가 배롱나무를 찍은 이유는 예쁜 색깔이 바로 한눈에 (저를) 사로잡게 했기 때문입니다. 실물과는 또 다르게 찍힌 배롱나무에 제가 느꼈던 것은 화창한 날씨에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배롱나무가 몸을 맡기듯 조용히 같이 움직이는 느낌, 혼자 외로웠을 배롱나무 곁에 바람이 다가와 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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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세 학생. 왼쪽부터 차정민(고3), 정찬(고2), 이원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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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쪽의 허락을 받아 학생 세 명과 인터뷰를 했다.
차정민 “배우는 게 너무 많아서 다 재미있다. 오늘 미처 못 찍은 것? 이동화 선생님의 귀걸이를 찍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날씨 좋은 날만 찍느냐고? 비 오는 날에도 찍는다. 느낌이 다르다. 화창한 날씨가 희망이라면 비 오는 날은 절망이고 우울하다. 그런데 비 오는 날에도 사진을 찍느냐고? 그건 내가 그런 감정을 많이 느껴봤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에도 사진을 찍어서 내가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렇다. 그러면서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정찬 “오늘 했던 수업은 이미지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1층에서 나무를 찍었다. 바람과 함께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봤다. ‘이거 괜찮겠다.’ 싶어서 찍었다.”
이원찬 “오늘은 나무와 학교, 그리고 친구를 찍었다. 책 많이 본다. 어린 왕자, 철학책, 그리고 학교에서 추천한 책도 본다. 제목이 막 기억이 안 나는데…. 인생에 대한 교훈을 조금 더 쉽게 푼 책이었다. 친구 도와준 거? 친구가 아프면 도와준다. 힘들 때 서로 돌봐주는 거다. 그게 친구다.”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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