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마을] 일본 도몬켄 사진상 수상 기념전 여는 양승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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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도몬켄상 수상 기념 사진전 ‘그날 풍경’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디프레스에서 양승우 작가가 포즈를 취했다.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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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거리는 성인업소들이 빼곡하고 그만큼 야쿠자도 득실거린다. 양승우(52)씨는 그 ‘살벌한’ 거리를, 사진을 막 시작한 학생 시절인 1998년부터 18년 동안 찍었다.
양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동네에서 놀다가 재미가 없어서” 1996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비자 문제를 해결할 겸, 일본을 알고 싶기도 해서 사진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1998년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에 들어갔고 2006년 도쿄공예대학교 미디어아트 박사전기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주 무대로 사진을 찍고 있다.
양씨는 <신주쿠 미아>로 2017년 4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사가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중 한 명인 도몬 겐을 기려 1981년 제정한 도몬켄상을 받았다. 외국인 수상자는 양씨가 처음이다. 한국인이 놓쳐버린 한국의 현대사를 수십 년 기록해온 구와바라 시세이가 2014년 수상하기도 한 그 상이다. 양씨의 수상 이후 일본에서는 오사카와 도쿄의 니콘살롱, 그리고 야마가타현에 있는 도모켄 기념관에서 각각 수상 기념 개인전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디프레스(070-8917-5113)에서 ‘그날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개막해 이달 2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 ‘그날 풍경’은 도몬켄상 수상작인 <신주쿠 미아>에서 추려낸 40여점과 2016년에 책으로 나오고 전시도 열었던 <청춘길일>의 40여점을 합하여 80여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전 개막일에 양승우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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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신주쿠 미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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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의 글과 그의 사진 모은 책도
양씨는 처음엔 그 거리가 무서웠다고 했다. 가부키초를 지나가다가 만난 5명의 야쿠자를 보고 얼어붙어 말도 못 붙였다. 집에 갔는데 잠이 안 왔다. ‘내가 왜 말도 못 붙였지?’ 싶었다. 며칠 뒤 또 그곳을 갔는데 그 5명이 그대로 있었다.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말을 걸었다. ‘나 사진 공부하는 학생인데 한 장만 찍읍시다’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찍고 학교에 달려가 사진을 뽑아 며칠 뒤에 사진을 건네주러 갔다. 마음에 들었던지 사무실로 놀러 오라고 했다. 사무실 가서 또 찍고 인화해서 주고 계속 그러다 보니 자기들의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불러서 찍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물론 일일이 다 허락을 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야쿠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엔 사건이나 사고를 위주로 촬영했는데 어느 날 이 어른들의 거리에서 어린아이가 종이상자에서 뜯어낸 골판지 위에서 자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가부키초가 달리 보였다. 야쿠자, 노숙인, 술집 여성들, 그 여성들의 아이들…. 이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다들 방황하는 사람들이었다. 꿈을 좇아 지방에서 도쿄로 왔는데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꿈이 깨져서 망가진 사람도 있다. 가부키초에 모여든 인간군상이 모두 미아였다. 사진을 찍는 자신도 미아였다. 그렇게 해서 낸 사진집이 <신주쿠 미아>다. 상을 받고 나니 야쿠자들도 ‘사진이 멋있다’고 했다. 책이 나와 몇권을 보스들에게 줬다. 나중에 들어보니 보스들이 개인적으로 많이들 구입했다고 했다.
양씨 자신도 그 거리에서 같이 노숙도 하면서 지냈다. 보통 금요일에 가면 일요일 아침까지 사진을 찍게 되는데 파친코 앞에 골판지를 깔고 잤다. 아침이 되면 파친코 직원이 나가라고 깨우는데 어느 날 노숙인 한 명이 양씨에게 글을 막 써서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여기서 잠을 자고 좋은데 세상에 멍청한 사람들이 일을 하네. 바보들.” 시처럼 휘갈긴,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양씨는 그 사람에게 “당신은 계속 시를 쓰라”고 했고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의 글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책이 나왔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곤타였고 책의 제목이 <너는 저쪽, 나는 이쪽>이었다.
마이니치신문사 제정한 사진상
외국인으로는 처음 상 받아
군대 다녀온 뒤 놀다가 재미가 없어
일본 건너가 사진학교 다녀
처음엔 가부키초 거리가 무서웠지만
야쿠자에게 맞을 각오로 사진 부탁
의외로 허락해 사진 뽑아 건네
사무실도 놀러가고 행사도 찍어줘
조폭, 노숙인, 술집여성 등 거리의 삶
스스로 골판지 깔고 노숙하며 기록
“향수가 아니라 사람냄새” 평 들어
언론도 주목하고 영화·다큐도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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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신주쿠 미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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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손가락 등 충격적 장면도 많아
일본의 사진계에선 양씨의 도몬켄상 수상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양씨는 “다들 ‘받을 사람이 받았다’라는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을 아무나 찍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부키초에서 제대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상을 시상하는 주최 쪽에서는 ‘사람들이 맡고 싶어하는 향긋한 향수 냄새가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사진이다’라는 취지의 평을 했다”고 말했다.
폭행을 당해서 쓰러진 사람도 찍었더라는 질문엔 “술 취해 있는 사람이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 사진을 보고 ‘너는 왜 그렇게 차갑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어찌 그렇게 찍느냐?’라고 하더라. 나는 ‘나는 싸움을 말리고 찍는다. 내가 더 따뜻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사진집 <신주쿠 미아>의 표지사진은 까마귀가 동전을 물고 있는 장면이다. 양씨는 “이 까마귀는 노숙하는 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다. 먹이를 던지면 물어오곤 한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동전을 던지면 물어와서 할아버지에게 주는 장면이다”라고 설명했다.
2016년 7월 사진집 <청춘길일>의 발간 즈음 만났을 때 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좀 어떤지 궁금했다.
“상을 받고 전시도 하고 지원을 좀 받아서 그나마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돈을 벌어야 한다”며 유전을 찾는 아르바이트도 몇 번 했다고 했다. 아프리카 콩고나 인도네시아의 정글 같은 데 가 30~50㎝ 정도 땅을 파서 토양 샘플을 채취해 미국의 연구소에 보내는 일이다. 한번 가면 한달에서 석달씩 일하는데 더운 곳이라 일이 힘들다고 한다. 오전에 반짝 일을 하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사진을 찍는데 제목도 정했다. ‘양승우의 돈 벌러 가는 일기’라는 콘셉트라고 한다. 봄이 오면 오차밭에서 일하고 호텔 로비 같은 곳에서 카펫을 까는 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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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신주쿠 미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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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신주쿠 미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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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양탄자 타고 나는 듯 둥둥”
이번 전시엔 일본인 부인 마오상과 같이 한국에 오지 않은 이유는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씨는“결혼하고 나서 가난하니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지난해 상을 받고 조금 형편이 좋아졌고 아르바이트도 조금 줄였다.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 7개월쯤 되었는데 딸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큰일이다. 아이가 나를 닮으면 어쩌나? 성격도 그렇고 얼굴도 엄마를 닮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집은 좀 팔렸다고 한다. 일본에서 나온 <청춘길일>은 1쇄 800부가 다 나갔고 <신주쿠 미아>도 많이 팔렸다고 했다. 언론의 주목도 받고 있다. 일본의 텔레비전 아사히가 양씨를 찍고 있고 한군데서는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한국도 한군데서 다큐멘터리로 찍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씨의 부인 마오상은 지지난해 눈빛출판사에서 양씨의 사진집 <청춘길일>이 나오고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를 받고선 눈물을 글썽였다고 했다. 남편이 사진을 하면서 한국에서 처음 받은 소중한 인세라서 감동했다는 것이었다. 도몬켄상을 받았을 때 부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때도 나는 밤새도록 카펫을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자려고 하는데 주최 쪽인 마이니치신문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웃음) 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였다. 이번엔 울지 않았다. 둘이 좋아서 밤새 웃었다. 흥분해서 잠도 못 자고 다시 일하러 갔다. 카펫을 까는 일을 하는데 마치 마법의 양탄자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둥둥 날아가듯 했다.”
인디프레스의 ‘그날 풍경’과 별도로 스페이스22에서도 양씨가 포함된 사진전시 ‘니혼 미라이센’이 이달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미래를 타는 열차라는 뜻의 이 전시엔 현재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일본 사진가의 단체전이다. 아리모토 신야, 무라카미 마사카즈, 히로세 고헤이, 사쿠마 겐, 양승우씨가 함께 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작품사진 인디프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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