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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김지연 관장이 서학동 갤러리안에서 사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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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전주 서학동사진관장】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진안 계남정미소 사 원형 그대로 살려
전시공간 꾸며 주민 삶 재조명
주민들 옛날 사진으로 아카이브전 열고
기획전 하며 막걸리와 농악으로 잔치도
연극학과 졸업 뒤 그냥 주부로 살다
나이 오십 줄에 사진에 꽃혔다
할머니 손잡고 간 기억 생생해
‘정미소’ 사진 찍어 첫 개인전 열어
6년 하다 힘이 부쳐 일단 문 닫고
전주 들렀더니 예술마을 부추겨
서학동에 예술인 70여명 북적북적
동네 할머니들 작품도 함께 전시
“사진문화 지방 파급된 전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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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김지연 관장이 서학동 갤러리안에서 사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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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주시 완산구 전주교대부속초등학교 후문 옆 거리로 들어섰다. 꽃집과 양복점을 지나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드문드문 벽화가 그려져 있으나 화려하진 않았다. 전봇대가 있고 기와지붕이 있는 골목 끝자락에 나무 대문이 한쪽 열려 있는 ‘서학동 사진관’이 있었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대문 옆으로는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고 집 맞은편에는 버들마편초꽃이 늦가을 늦은 오후에 보랏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집 오른쪽 담벼락에 걸려 있는 대형 포스터가 이곳이 사진갤러리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서학동 사진관과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를 운영하는 김지연(69) 관장이 다음날인 8일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사진전 ‘무빙데이’ 설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서학동 사진관은 2013년에 문을 연 사진갤러리 겸 카페이며 사진 발표의 공간이 없다시피 했던 전주에 새바람을 불러왔다.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는 김 관장이 2006년에 전북 진안에 있던 정미소를 인수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사진전시도 열었지만 동네 주민들의 소통공간 역할도 했다. “한 사진가의 도전정신으로 근대유산을 마을문화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최초의 사례”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김 관장은 서울예전 연극학과를 나왔으나 연극인의 길을 뒤로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한 매듭을 짓고 싶었고 어린 시절의 꿈도 실현하고 싶었다. 미술 등 시각예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사진을 택한 것은 “미술은 상대적으로 숙련이 필요한데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가 숙련도의 일정 부분을 해소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서”라고 했다. 김 관장은 “물론 사진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미술이든 사진이든 결국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어야 작가의 활동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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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동 사진관은 골목 끝자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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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무렵의 계남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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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구경·답사·견학 발길
1년반가량 김장섭 선생이 하던 서울사진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을 빼면 독학으로 사진을 시작했다는 김 관장은 2002년에 54살의 나이로 개인전 ‘정미소’를 열고 사진가로 데뷔했다. 첫 작업으로 정미소를 택한 것은 전통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쌀이 시사하는 의미가 남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 한 정미소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정미소가 하나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에 할머니 손을 잡고 당시 전남 광산군의 한 정미소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락을 거침없이 삼키고 흰 폭포처럼 위용 있게 쌀을 뿜어내는 정미소는 어린 나에게 정말 대단한 존재로 다가왔다”며 기억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2004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다큐멘트전’은 단체전이었는데 거기에도 정미소 사진을 걸었다. 그 후 <나는 이발소에 간다>, <묏동>, <우리 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진안골 졸업사진집>, <근대화상회>, <삼천 원의 식사> 등으로 사진집을 펴내고 사진전시를 열면서 왕성하게 사진 활동을 이어나갔다. 김 관장은 “처음엔 사진이 나를 이렇게까지 끌고 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라며 생각에 잠겼다.
계남정미소란 문화공간을 만든 것은 문화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김 관장은 “2002년 정미소로 데뷔하고 나서 둘러보니 옛날 정미소가 사라지고 있더라. 한 3년 정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보고 다녔다. 땅주인과 집주인이 다른 경우도 있고 계약까지 했다가 파기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안에서 계남정미소를 만났다. 방앗간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지역 주민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게 아마도 전국적으로 사실상 첫 시도가 아닌가 싶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계남정미소에서 열렸던 아카이브전, 기획전의 제목을 보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계남마을 사람들’, ‘작촌 조병희 선생을 기리며’, ‘지역 살리기와 공공미술전’, ‘잃어버린 장날의 축제’, ‘시어머니 보따리를 펼치며’, ‘낡은 잡지와 음악에 말 걸기’, ‘계남마을 주변 사람들의 삶과 흔적’….
첫 전시인 ‘계남마을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의 개인사를 담은 100여장의 옛날 사진으로 구성한 아카이브전이었다. 당시 정미소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사진전을 열 만한 공간이 아닌 것 같은데 신기했다고 한다. 그 후 기획전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막걸리도 내놓고 농악도 하고 그랬다. 온 나라에서 구경, 답사, 견학을 왔다고 한다. 주민자치단체와 행정기관에서 관심을 보인 것이다. 버스를 전세 내어 경상도, 강원도에서도 찾아왔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공동체 공간이 전국에 속속 생겨났다고 한다. 오롯이 김 관장이 혼자 끌어가던 계남정미소는 2012년에 “힘이 부쳐”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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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계남 정미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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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 기획전 ‘시절노래’가 열렸던 계남정미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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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에 대해 발언하는 작가 존중”
‘서학동 사진관’을 연 것은 2013년 3월이었다. 전주 서학동에 들렀더니 주변에서 예술인 마을을 만들자고 부추겼다고 한다. 정미소 공동체 박물관을 6년이나 이끌어온 김 관장의 저력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내가 무슨 일을 잘 벌이는 스타일이다. 현재 서학동 예술마을엔 모두 70여명 정도가 있고 그중에 25명 정도가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 미술, 도예, 조각, 사진 등을 하는 분들이 있고 서점도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김 관장은 예술인과 주민 간의 소통에 가장 주력했다. 올해 4월엔 ‘서학동에 산다’ 기획전을 열었다. 동네 할머니들도 같이 참가하는 마을 잔치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떡도 하고 막걸리도 돌렸다. 이 동네의 젊은 여성작가들과 동네 할머니들의 콜라보 전시였다. 그는 “저기 보이는 점토 조각들이 이 동네 할머니가 만든 것이다”라고 갤러리 문옆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계남정미소는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일까? 김 관장은 아직 살아 있다고 했다. “매입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팔지 않았다. 먼지가 쌓여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지난해에 젊은 사진작가들이 계남정미소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자발적인 고민과 시도들이 이어져 4년 만에 다시 전시를 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여름에도 전주 서학동에서 채집한 할머니들 사진과 개인 사연, 진안에서 수집한 글귀 등을 한데 모아 기획전 ‘시절노래’를 열었다.
대관료를 받는지 궁금했다. 김 관장은 손사래를 치며 “대부분 초대전이다. 대관료를 받게 되면 좋은 작품만을 전시할 수 없게 된다. 1년에 10명 정도인데 올핸 벌써 15번째 전시를 연다. 8일부터 개막하는 이승훈 작가의 ‘무빙데이’는 도시인들이 계속 이사를 하면서 떠도는 이야기다. 작가 선정 기준은 전적으로 작품성이다. 이 시대에 대해 발언을 하는 작가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첫 사진산문집 ‘감자꽃’ 기념전
이런 걸 왜 할까. 그가 처음 이곳 서학동 골목 안에 자리를 잡았을 때 동네 할아버지들이 따지듯 묻기도 했다. ‘돈 번다고 생각하느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그게 합리적인 생각이냐?’라며 몹시들 걱정해줬다.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들지 않았다. 김 관장은 “1년이 지나니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외지에 사는 이 동네 주민들의 자녀들이 명절 때 부모님을 찾아뵈러 와서 보고 ‘우리 고향 동네에 명소가 생겼네. 이거 좋다’라고 반색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어르신들이 흡족해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사진을 선정할 때 주민들의 반응을 고려하는지 물었더니 “주민들 눈높이에 굳이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저절로 문화공간을 사랑하게끔 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이 하루이틀 만에 되는 것이 아니다. 아, 이런 일은 있었다. 한 두어 번 골목 벽에 사람 얼굴을 걸었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조금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집에 갈 때마다 벽에서 사람이 째려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 걸린 것은 이승훈의 나무라서 아무 문제 제기가 없다. 하하하.”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는 “계남정미소와 서학동 사진관은 늦깎이 사진가이기도 한 김지연 관장의 사진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배어 있는 곳이다. 두 곳은 서울 중심의 사진문화가 지방으로 파급된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전통과 일상의 사진문화를 추구해온 김 관장은 한국 사진을 어머니처럼 품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지연 관장은 12월5일 서울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개인전 ‘감자꽃’을 연다. 전시는 김 관장의 일흔 평생 첫 사진 산문집 <감자꽃>(도서출판 열화당) 발간 기념행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전시 개막일에 작가 대담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전주/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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