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3개 대학 28명 졸업작품 분석해보니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 중에는 사진 전공자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스스로 작가라고 칭하지 않지만 진지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운데도 사진 전공자들이 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는 것이 사진을 찍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16년 말에 대학을 마치고 졸업식을 앞둔 사진 전공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분석했다. 백제예술대학교 사진과,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의 도움을 받아 모두 28명의 졸업작품을 입수했다. 백제예술대학교는 2년제이며 나머지 두 학교는 4년제다.
학생들의 사진을 분석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이들이 일반인들과 달리 전공자로서 어떤 주제를 잡았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둘째, 이들 사진 전공자들이 각자 5장에서 24장을 펼쳐 나가는 데 어떤 특별한 방식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이들의 사진에 자기 주관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였다. 첫번째는 왜 무엇을 찍었는지를, 두번째는 어떻게 찍는지를 보려는 것이고, 마지막은 사진이 담긴 개성을 살피려는 것이다.
주변 현실과 일상이 가장 긴급한 소재
가장 많은 학생들이 어떤 특정한 공간에 대한 기록을 주제로 잡았다. 백제예술대학교에선 남보현이 <홍대>를 통해 홍대 앞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박승범은 <서울역>에서 노숙인· 관광객· 시민 등이 공간과 어울리는 혹은 어울리지 않는 조화를 보여주었다. 같은 학교 박지환은 <경기도 평택시 미군기지촌>에서 이질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최형호는 <탑골공원>에서 노인과 노숙자의 복지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있으며, 홍진웅은 <이태원>의 특이한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중부대학교에선 김아영의 <초안산 내시묘역>, 조현호의 <여행을 떠나요-나의 분단지역 여행기>, 이경연의 <잠들지 못하는 도시, 서울> 등이 공간을 주제로 한 작업이다. 상명대학교 학생들 중에선 권순환의 <訊(물을 신)도시>, 권용을의 <능선>, 민태웅의 <하늘에서 본 세상> 등이 유무형의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모두 공간을 주제로 잡았지만, 이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달랐다. 조현호는 <여행을 떠나요-나의 분단지역 여행기>에서 천안함 전시장, 도라전망대, 임진각 등 안보관광지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분단과 통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권용을은 <능선>을 통해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악 지형임을 상기시키고, 건축물도 능선이 많은 이 땅의 특성에 따라 지어졌고, 결과적으로 능선의 모양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많은 학생들이 잡은 주제는 새로운 사회현상에 관한 고찰이다. 특히 중부대학교 학생들이 이 부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혜진은 <유커>라는 사진을 통해 중국관광객을 위한 관광상품의 품질에 대해 물음을 던졌고, 이지수는 <한복을 즐기는 사람들>에서 서울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도심 곳곳에서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밝게 조명하고 있다. 이하은의 <복고풍>도 유사한 트렌드를 보여준다. 기성세대들이 고등학교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관광지를 다니는 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이후 추억을 소비하는 세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박성용의 <일회용 삶>은 편의점, 주유소 등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을 유형학적으로 보여주면서 한 달 내내 일해도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연미의 <철가방과 함께한 배달의 민족>은 주로 중식당에서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하는 ‘철가방’의 노동현장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전문배달업체에 밀려나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의 고유한 식문화의 한 단면을 감정이입 없이 나열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정 공간 기록한 주제 가장 많아
새로운 사회현상 초점이 뒤잇고
이슈 등 사회담론은 극소수
트렌드라는 유형학 눈에 많이 띄고
사진 두 장 나란히 배치하는 딥틱
드론으로 촬영한 작업도
가장 까다로운 지대가 주관과 개성
뻔한 것을 다르게 찍는 능력인데
시간 탓인지 큰 성과 엿보이지 않아
다양성 혼종성 양면성 등
반듯한 학구적 테마 높이 살 만
공간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은 다수였지만, 특정한 이슈나 사건을 다룬 학생은 극소수였다. 백제예술대학교에선 이충연이 <미증유>라는 제목으로 촛불정국을 다루었고, 이재호가 <소녀상>을 다뤘을 뿐이다. 상명대학교 학생들 중에서 김민수가 <102보충대 이야기>를 통해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에 입소한 장정들의 3박4일을 포착했다. 지난해 9월 마지막 입영식을 끝으로 102보충대는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너무 광범위하면 작업 자체가 힘들어지고 또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 조태형은 〈News〉를 통해 2016년 뉴스 중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뒤에 일어난 시민들의 반응을 사진으로 보여줬고, 동성애 반대 집회 현장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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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사진 전공자들의 접근이란 것이 눈에 쏙 들어왔다. 다양성, 도시의 디아스포라, 미군기지와 미군기지 때문에 생긴 문화의 혼종성, 전쟁기념물의 의미, 개발과 파괴의 양면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은 모두 우리 사회의 담론에 대한 고민이니 아주 정상적이고 반듯한 학구적인 테마였다. 한때 사진과 전공 학생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유랑극단 같은 것을 찍는 데 몰두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소재가 좋으니 사진을 찍는다는 이른바 소재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사실 사진작가나 일반인이나 사진 전공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현실과 일상이 가장 긴급한 소재다.
원본성과 정체성 없는 유형학 경고
어떻게 보면 일반인들에게 가장 궁금한 관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진을 학문으로 삼아 전공했다면 대단히 놀라운 비법이라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기껏 1주일에 두 시간씩 10주나 6개월을 문화센터나 교육원에서 배우는 것과는 판이하게 전공자들은 거의 매일 체계적으로 사진 이론과 실기를 배운다. 당연히 사진 역사에 등장하는 사조나 방향성, 그리고 동시대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학생들 사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형태가 있다. 기법이라고 부를 순 없겠고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유형학(Typology)이란 것이다. 백제예술대학교 박용훈의 <화분가족>, 오송지의 〈A Mixed Marriage〉가 차렷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고전적인 인물 유형학 사진에 속한다. 유형학에서도 조금 다른 유형이 있다. 중부대학교 권녹환의 <스모킹 에어리어>, 김아영의 <초안산 내시묘역>은 사람이 아닌 공간의 유형학이라 하겠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성 사진작가들의 사진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유형학이다.
이 시점에서 유형학 사진에 대해 일별할 필요가 있다. 2006년에 방한했던 독일 포토그라피 포룸 프랑크푸르트(FFF)의 예술감독 셀리나 런스퍼드가 사진잡지 <포토넷>에서 밝힌 견해를 인용한다. 런스퍼드는 유형학이 세계적 트렌드가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실시간으로 교류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작가나 학생의 유형학 작업 중에는 정체성이 결여된 것이 많다며 독일 유형학의 핵심은 역사적 원본성인데 현재는 원본성이 결여된 모조품이 많은 것이 확실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나라의 원본성과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유행처럼 독일의 유형학을 추종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었다. 1960년대 설립된 독일 사진학교인 베허스쿨의 유형학은 그 나라 유형학의 역사에 기반을 둔 것인데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작가들이 터무니없이 모방하는 것에 대한 일갈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각적으로 재미가 없는 유형학이 난무하고 있다. 천편일률의 유형학으로 찍으면 “저건 작가 사진이다, 전공자들의 사진이다”라고 인정받는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형학적 사진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쏠림 현상을 우려한다. 김아영의 <초안산 내시묘역>은 흔한 유형학이 아니라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기법은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여 하나로 만드는 딥틱이다. 중부대학교 박성용의 <일회용 삶>이 대표적이다. 그는 오락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착하면서 왼쪽엔 노동자가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을, 오른쪽엔 동전을 찍은 사진을 붙였다. 또 극장 아르바이트생을 다룰 땐 오른쪽에 팝콘 사진을 배치했다. 이경연의 <잠들지 못하는 도시, 서울>은 같은 공간을 낮과 밤에 따로 찍어 경계선을 흐릿하게 합성하여 붙였다. 전형적인 딥틱 기법이다.
드론(무인기)으로 촬영한 작업이 둘 있다. 중부대학교 이성희의 〈Age Document〉와 상명대학교 민태웅의 <하늘에서 본 세상>이다. 단순히 하늘에서 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성희는 주거공간의 변화를, 민태웅은 개발과 파괴의 양면성을 보고 있는데 둘 다 드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그 외, 기법으로 분류할 것은 아니지만 방식에서 개성을 보인 작업은 꽤 많았다. 백제예술대학교 임정훈의 <전쟁동상>이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였다. 늘 그곳에 서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동상 사진은 외형적으로 다르게 찍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많이 들여 어울리지 않는 존재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게끔 했는데 재치도 있고 생각도 있다. 시각적 발랄함이라 부를 만하다. 상명대학교 김민수의 <102보충대 이야기>는 가장 정공법적으로 포토스토리를 꾸민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보는 앞에서 입영하는 장정들의 다양한 심사를 교과서처럼 그려냈다. 강약 조절, 설명과 묘사, 시각적 위트까지 두루 보여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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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아직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찍는지에 이어 가장 까다로운 지대가 다르게 찍기다. 남과 다르게 찍는 방법은 드론 같은 다른 수단을 활용해 찍는 게 아니다. 가장 뻔한 것을 다르게 찍을 수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생각을 깊이 하고, 보이는 것 이상을 보려는 노력이 담겼냐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2~4년 동안 사진을 전공하지만 결국 졸업하는 해의 학기에 집중적으로 찍었을 것이니 시간적 제약이 크다. 참신한 주제도 별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관광객을 다룬 백제예술대학교 신한슬의 <유커>는 그런 점에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이 다섯장뿐이라 확신이 서진 않지만 유커가 늘어나는 현상을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의 말대로 “2016년 오늘 유커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를 글이나 통계가 아니라 사진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연우의 <정전> 역시 전쟁기념관 등 전쟁기념물을 보여주는 사진인데, 같은 소재를 다룬 기존 작가들의 작업과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한 게 드러났다. 단순히 기념물을 비스듬하게 찍는 것 말고, 전쟁기념관을 찾은 사람들을 기념물과 같은 크기로 포착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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