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손대광 사진전 ‘광민탕: 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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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부산시 수영구 수영로 606번길 광민탕 여탕에서 시작된 <광민탕: 다 때가 있다> 전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사진을 구경하고 있다. 왼쪽 둘째가 광민탕 안주인 문연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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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2월22일, 부산직할시 남구 광안동 122-33번지에 광민탕이 문을 열었다. 부산시 목욕탕업 허가증 39호, 당시로서는 작지 않은 대중목욕탕이었다. 안주인 문연희씨는 “바씨어른(시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목욕탕 신축공사를 일본에서 건축하던 분에게 맡겼는데 ‘왜 이렇게 크게 짓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벽도 두껍게 해 겨울에 난방을 제대로 안 해도 춥지 않았고, 정화조도 뚜껑 여섯 개짜리로 했는데 듣기엔 당시 부산에서 정화조를 원칙대로 시공한 것은 어떤 군부대 한 곳과 광민탕이 유일했다고 한다.
문씨는 남편 이귀동(70)씨와 함께 20여년 전에 시아버지로부터 광민탕 운영권을 이어받아 올해 7월까지 운영했다. 42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광민탕은 7월27일 마지막 손님을 받고 문을 닫았다. 영문을 몰랐던 손님들은 “와 탕이 문을 안 여노?”라며 셔터가 내려진 광민탕 앞을 기웃거리다가 폐업을 알리는 ‘광민탕-주인백’의 자그마한 알림을 보고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3대 걸쳐 100년 넘은 토박이 집안
폐업한 지 17일 만인 지난 13일, 닫힌 여탕 문이 다시 열렸다. 8년 전부터 광민탕 단골손님인 사진가 손대광씨가 최근 3년간 광민탕 남탕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직 목욕탕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여탕에서 <광민탕: 다 때가 있다>라는 이색 사진전을 연 것이다. 드러머이기도 한 손씨는 스틱을 들고 ‘콩나물음악단’과 같이 기념공연에 나섰다.
사진을 둘러보던 안주인 문씨는 “씨할아버님(시할아버지) 때부터 광안동에서 살아온 100년 넘은 토박이 집안이다. 바씨어른이 물려준 이곳을 40년 넘게 했는데, 여기서 문을 닫게 되어 조상님께 너무 죄송스럽고 동네 분들에게도 죄송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어느새 목욕탕 전시장엔 관객들이 몰렸다. 절반 이상이 동네 사람이자 광민탕의 단골손님이다. 문채연(67)씨는 “내가 1990년부터 이 집 단골이다. 두 군데 대형 호텔 사우나 멤버십 회원인데 그런 곳에 잘 안 가고 날마다 여기 온다 아이가. 술 먹고 우리 집엔 안 가도 목욕탕엔 매일 왔다”고 말했다. 목욕비 싸고 동네 지인들과 만날 수 있는데다, 구수한 분위기가 좋아 자주 찾았단다.
“40년 동안 다른 목욕탕은 딱 두 번 가봤다”는 단골 황계순(76)씨. 그는 “아마 가장 많이 사진이 걸린 것은 우리 할아버지일걸. 목욕탕이 생겼을 때 막 우리도 이사 왔으니 탕하고 나이를 같이 먹은 거지. 목욕탕 사장님이 편찮으셔서 더 못 하고 문을 닫았다고 들었다. 어쩔 수 없제”라며 아쉬워했다. 목욕탕집 큰아들 이병희(44)씨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목욕탕이 생겼고, 난 목욕탕에서 살았다. 우리 집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느닷없이 사진기를 들이대면 뺨 맞아도 싸다
근데 이 남자 앞에서는 가림이 없었다 자신도 단골로 다니며 허물을 벗고 장수사진부터 찍고 3년을 기록했다
42년 동네 ‘알몸 사랑방’이던 곳이 문을 닫자 아쉬웠다
주인의 흔쾌한 허락을 얻어 시설 그대로 살려 전시를 꾸렸다 자신이 드러머인 악단 공연도 함께
처음부터 단골이었던 분도 왔다 잊고 잃어버린 일상이 되살아났다
때를 빡빡 민 것처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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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손대광씨가 자신의 작품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위) 전시중인 작품 중 광민탕 손님들이 목욕하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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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가장 편한 자세와 소리로
손대광 사진가는 광민탕 시설을 그대로 살리는 전시를 꾸렸다. 사물함 문짝, 사물함 속에도 사진을 붙였다. 때밀이 기계, 샤워실에도 사진을 걸었다. 어른 너덧 명이 들어갈 만한 물이 가득 찬 탕에는 대형 사진 한 장을 연꽃과 함께 띄웠다.
손씨는 2005년 이 동네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광민탕과 인연을 맺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 목욕탕을 다닌 기억에 이끌린 그는 대중탕을 좋아했고, 목욕료가 2천원인 광민탕 단골이 됐다. “2천원을 받고 어떻게 장사할까 싶었다. 또 시설은 낡았는데, 불편을 감수하고 손님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목욕탕에 대한 사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에서 카메라를 꺼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부러 탕에 올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 목욕탕에 온 사람들이 생판 남처럼 느끼지 않고, 카메라 자체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던 손씨의 카메라 앞에 처음 선 사람은 동네 연탄집 사장님이었다. 탕에서 옆 손님 때도 밀어주고, 뭘 떨어뜨리면 먼저 주워주기도 하는, 항상 웃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목욕탕 안주인께 탕에 오시는 연세 드신 분들의 장수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의했다. 연탄집 사장님은 흔쾌하게 응했다. 장수사진도 한 장 찍고, 탕에서 상반신을 벗은 상태에서 예쁘게 빗질을 하는 모습도 찍었다. 손씨는 “연탄집 사장님을 찍고 액정으로 보여드렸더니 허허 웃으시면서 잘 나왔다고 하셨다. 큰 용기를 얻었고, 그 뒤로는 일이 쉽게 풀렸다”고 말했다. 그 뒤 손씨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단골들은 ‘오늘 쟤가 누굴 찍을 모양’이라고 당연스레 생각했다. 하지만 대중탕엔 항상 낯선 손님 몇명은 드나들기 마련이다. 그땐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치를 살폈다.
그가 목욕탕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나름의 진리가 있다. ‘누구나 자기 분야의 선수이고, 저마다 각별하게 돌볼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목욕탕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욕을 한다. 관찰해봤는데 무슨 의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분은 같은 행동을 세 번 이상씩 꼭 한다. 쌀집 사장님은 냉탕에서 운동을 많이 한다. 쌀가마를 많이 져 아픈 어깨를 목욕으로 달래는 의식이다. 중국집 사장님은 하루 종일 면을 뽑으니까 저렇게 기도하듯 동작을 취하면서 몸을 푼다.”
목욕탕에서 내는 소리도 제각각이란다. “연세 드신 분들은 어허… 하는 소리, 구음을 내는 분이 많다. 말 그대로 뜻 없이 흥얼거리는데 자기 성대에서 가장 편한 음을 내는 것이다. 목이 편안한 소리, 몸이 편한 소리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딱 맞는 멜로디와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하고 가장 어울리는 것을 가장 편한 자세에서 ‘어허……’ 하신다.”
전시 끝나면 헐리고 빌라로
손씨가 목욕탕 철거를 예상하고 사진을 찍어온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역사가 100년 넘은 목욕탕 여주인이 자부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저기 선풍기는 메이지 몇년이고 저 나무틀은 몇십년이고…”라고 하는 말을 들었던 그는 “우리도 동네 목욕탕이 있고 광민탕은 40년이 넘었으니 이런 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고독한 미식가>로 한국에서도 알려진 일본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는 최근 동네의 오래된 목욕탕을 순례하는 내용의 신작 수필 <낮의 목욕탕과 술>을 발표했다. 목욕탕을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하나의 문화체험 이야기로 풀었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부러웠다.
그런데 두 달 전 광민탕 안주인 문씨로부터 폐업 계획을 들었다. 너무 아쉬웠던 손씨는 목욕탕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문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사진전 ‘광민탕: 다 때가 있다’는 예술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우리가 급속히 잊고, 잃어버리고 있는 일상을 돌보는 사진작업이다. 그래서 전혀 낯설지 않다. 때를 밀고 난 것처럼 시원하며 소중하다.
광민탕 사진전은 오는 19일까지 열린다. 딱 일주일이다. 반응이 좋으면 전시가 조금 연장될 수도 있단다. 전시가 끝나면 광민탕은 헐린다. 그 자리엔 빌라가 들어선다. 하지만 손대광씨의 ‘광민탕 작업’은 12월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12월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 스페이스22에서 ‘개관 3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열릴 예정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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