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06 14:53
수정 : 2016.07.06 15:28
[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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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매커리가 2014년에 쿠바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면 원래 왼쪽에 있던 남자와 교통표지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서 미처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보인다. 파올로 빌리오네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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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계의 거장 스티브 매커리가 최근 ‘포토샵 의혹’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1985년 6월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에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초상사진이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국제적인 보도사진가 집단인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가이기도 하다. 논란은 올해 4월 이탈리아 사진가 파올로 빌리오네가 자국에서 열린 매커리의 사진전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조잡하게 후보정이 된 사진’을 발견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매그넘 사진가인 매커리 사진전
어설프게 손댄 사진으로 발칵
“스튜디오 기술자의 실수
뭔가 더하거나 빼면 안돼” 해명
해명에도 논란 이어지자
“나는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비주얼 스토리텔러
심미·구성적으로 뭔가 하고 싶었다
후보정은 최소한으로 줄이겠다”
국내 사진계도 필수로 여기지만
지우거나 만들어 넣는 건 동의 안해
‘과도한 후보정’ 잇달아 들춰내
그 사진은 교통 표지판 기둥의 일부를 ‘클론 스탬프 툴’로 붙여 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당시 빌리오네는 매커리를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사진·카메라 전문 블로그 ‘페타픽셀’에 보도됐고, 이 포스팅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후 한 달 넘도록 세계 사진계를 흔들어놓은 논쟁의 단초가 되었다.
네티즌들은 스티브 매커리의 다른 프린트에서 추가적으로 “과도한 후보정을 한” 흔적을 속속 찾아냈다. ‘페타픽셀’에서 의혹에 대한 반론과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몇몇 블로거가 이 내용을 인용하여 알리며 자신의 의견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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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에 온 스티브 매커리가 판문점을 둘러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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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커리는 “(전시장에 걸린 사진 프린트 작업에서) 실수를 저질렀던 스튜디오 기술자는 더 이상 나와 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술자의 실수였고, 그를 해고했다는 것이다. 매커리는 5월27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토샵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포토샵으로 색깔을 보정하거나 여러 가지 샤프니스를 주기도 한다. 이 정도는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법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나는 (포토샵으로) 뭔가를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과도한 후보정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회견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매커리가 자신은 어떤 매체에 소속된 사진가가 아니었고 자신은 상업사진도 많이 해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것 같은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후보정 논란은 매커리가 5월30일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단독 인터뷰로 일단락된 상태다. 이 인터뷰에서 매커리는 “나는 비주얼 스토리텔러이지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니다”라면서도 “앞으로 포토샵 사용을 통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아직도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느꼈을 혼란스러움을…”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니라는 입장은 고수했지만, 보도사진가로서 매커리를 존경하던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던 ‘후보정’은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를 존경하고 그의 사진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여론에 밀려 매커리가 일종의 백기를 든 셈이다.
프리랜서로 상업사진도 찍어
이 과정에서 짚어볼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의 정체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커리를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고, 포토저널리스트라면 뭔가를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매커리의 사진 십여 장에서 사람이나 배경에 있는 어떤 것들을 지운 것을 발견하고 큰 실망을 느꼈다. 또 하나는 후보정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후보정을 해도 되는 것인지, 한다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먼저 스티브 매커리는 어떤 사진가인지 보자.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신문사에서 2년 일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걸프전 등 분쟁지역 사진을 찍었고 ‘로버트 카파 메달’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한편으로 상업사진도 열심히 했고, 2013년엔 세계적 사진가만 작업한다는 ‘피렐리 달력’도 찍었다. 세계 각지의 토속적인 장면을 화려한 색감과 완벽한 구성으로 포착했고, 특히 불교 테마에 관심이 많아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사진도 많이 발표했다. 때문에 상업사진계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그 스스로 분쟁지역 사진이 드물어진 현시점에선 예술 사진에 더 관심을 두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그를 포토저널리스트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그를 보도사진가로만 규정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가 찍은 사진을 뉴스매체에서 사용하면 보도사진가로, 광고에 쓰면 상업사진가로도 보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매커리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팬들에 의해 보도사진가적 정체성에 더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너무 유명해지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신세가 된 셈이다.
카메라 이미 보정 기능 들어 있어
두 번째 논점인 후보정에 대한 기준점을 찾기 위해 아마추어 사진가, 전업 사진가, 보도사진을 가르치는 교수, 전시 기획자 등에게 의견을 들었다. 매커리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전제한다면 “있는 것을 지우거나 없는 것을 넣는 후보정을 해선 안 된다”라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 외의 후보정에 대해선 대부분 “필수적이거나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화려한 색감이 강점 중의 하나인 사진가 임재천씨는 “촬영 이후 보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이라 믿는다.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스캔을 거치면서 디지털 이미지화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색, 명도와 채도가 현저히 떨어지므로 보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시 기획자인 송수정씨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 과거 암실의 도징과 버닝에 해당하는 자연스러운 색보정까지만 선호했다. 하지만 그냥 작가라면 의도만 설득력이 있다면 그보다 더 강한 후보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사진가 남인근씨도 “후보정 자체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방법의 차이일 뿐 이 과정을 지속해왔다. 다큐멘터리를 찍더라도 필름이나 필터 선택, 세팅된 픽처스타일이나 후작업의 포토샵이 다 같은 보정이며, 암실이 컴퓨터 앞으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가들 대부분이 후보정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들도 더 이상 후보정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겠다. 그렇다고 있는 것을 지우거나 없는 것을 붙여넣는 후보정까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일도 아니다. 이미 카메라에 보정 기능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넣거나 있는 것을 지우는 후보정은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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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아래 사진처럼 후보정하면서 자전거 뒤편에 있던 4명이 2명으로 바뀌었고 오른쪽 배경의 전봇대, 좌판, 사람 등이 없어졌다. ‘페타픽셀’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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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아래 사진으로 후보정하면서 왼쪽 뒤편 아이가 사라졌고 오른쪽 끝에 있던 팔 하나가 사라졌다. ‘페타픽셀’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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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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