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을’ 다르게 찍기 나무편
나뭇가지·나무옹이 등
대체로 일부 보여주며 전체를 표현
다른 물체 함께 재해석도 좋은 방법
나무와 빈의자 찍어 휴식 뜻할 수도
나무만 찍고 작가 해석 강요는 안돼
수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린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이 하루 3억장에 이른다. 이들이 모두 작품활동을 한다고 볼 순 없다.
사진 월간지 <포토닷> 5월호에 소개된 국내 사진전시 일정을 세어보니 40개가 넘었다. 단체전도 있으니 대략 100명 넘는 사진가가 작품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은 ‘다르게 찍을 수 있다’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을 찍을 자격이 없다. 남이 찍었던 것을, 어제 내가 찍었던 것을 왜 오늘 내가 다시 찍는단 말인가? 자존심의 문제다.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세상에서 아무도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도 아니고 작품을 발표할 것도 아니라면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또 찍어도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그걸 발표한다면? 찍는 것은 자유지만 남들이 볼 수 있게, 혹은 남들이 보라고 사진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의미든 발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감히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지금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또는 열릴 예정인 사진전 중에 새로운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2일 <한겨레>사진 웹진 사진마을에서 ‘나무-다르게 찍기’ 이벤트를 했다. 모두 41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온라인 투표 결과 1위는 김성훈씨, 2위는 김만평씨, 3위는 이동준씨가 차지했다. 이와 별도로 사진마을 촌장 곽윤섭 선임기자가 두 장을 선정했다. 1위 이다경씨 작품, 2위 김남기씨 작품이다.
|
곽윤섭 선임기자가 뽑은 1위 이다경씨 작품.
|
|
곽윤섭 선임기자가 뽑은 2위 김남기씨 작품.
|
1839년 사진기술이 발명·공표된 직후엔 복사기처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오는 것 자체가 경천동지할 일이었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차원에선 그대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 둘 사이엔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었다. 탄생 직후부터 사진은 ‘보는 그대로’를 넘어서고 싶어했다.
다르게 찍는 방법을 말하기에 앞서 강조할 것이 있다. ‘다르게 찍기’와 ‘다르게 만들기’는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다. 나무를 다르게 그리는 것은 나무를 다르게 찍는 것보다 훨씬 쉽다. 다르게 찍는 방법의 처음은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처럼 보이면 안 된다. 그 마지막은 나무가 있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한다고 나무가 아닌 것을 찍어선 안 된다.
|
온라인 투표 1위 김성훈씨 작품.
|
|
온라인 투표 2위 김만평씨 작품.
|
가장 흔히 (흔하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쓰는 방법은 제유적인 접근이다. 전체에서 부분만 따내 전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무의 일부분만 보여주면서 나무를 표현하는데 그 일부를 어디서 따오는지에 따라 나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많은 참가자가 이 방법을 썼다. 촌장이 선정한 2위 김남기씨의 작품은 나무옹이를 찍어 얼굴처럼 보이게 했다. 투표에서 1위를 한 김성훈씨와 2위를 한 김만평씨뿐 아니라 절반 이상의 참가자가 나무의 특정 부분만 찍었다. 눈여겨볼 것은 많은 참가자가 제유법 한 가지만 사용한 게 아니란 점이다. 제유법과 다른 방법을 같이 사용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유법은 전체에서 부분을 따오는 사진의 속성과도 같다.
|
온라인 투표 3위 이동준씨 작품.
|
반영 혹은 투영의 방법도 있다. 물에 비친 나무는 물결의 흐름이나 투명도에 따라 나무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투표에서 3위를 한 이동준씨가 비닐우산을 통해 본 나무를 찍어 큰 호응을 끌어냈다. 그 외에도 여러 반사체 혹은 투사체의 재질에 따라 재미있는 재해석이 가능하다. 반영을 통해 실루엣 처리도 가능하고 색깔이나 좌우를 바꿀 수도 있다.
비교를 통한 재해석, 혹은 의미 확장도 유력한 방법이다. 은유적 방법의 예를 먼저 들겠다. 나무와 빈 의자를 같이 찍었다고 하면 휴식을 뜻하는 빈 의자의 상징성에 의존해 ‘나무=휴식’이라는 의미를 강조할 수 있다. 만약 ‘나무=휴식’이 아니라 ‘나무=세월’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빈 의자 대신에 다른 것을 곁들여 찍을 수도 있겠다. 어떤 식이든 나무 자체만 덜렁 찍어놓고 자의적으로 휴식이니 세월이니 여름이니 인생 같은 것을 떠올리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폭압적이다. 촌장이 1위로 선정한 이다경씨 작품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흑백으로 표현했다. 이씨는 “그루터기에 기대어 생각의 뿌리를 내리네”라고 짧은 작가노트를 썼다. 나무는 잘려나갔지만 사람이 나무를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어떤 해석이든 우선 나무와 사람이 같이 찍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오래된 아파트와 나무, 떨어진 꽃잎과 나무, 바위틈에서 싹을 틔운 나무, 나무 벽화와 나무, 우산과 나무는 각각 다른 해석을 불러올 수 있다.
확장하여 예를 들자면 나무에 묶어놓은 전깃줄, 나무에 달려 있는 개를 찾는 전단, 나무에 새겨놓은 ‘철수 ♡ 영희’라는 문자 등도 비교에 의한 나무의 재해석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럴 때 나무가 아니라 나무와 곁들여진 그 무엇이 더 강조되거나 주요소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무를 수단으로 이용한 다른 테마라면 그럴 수도 있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목적이 나무의 재해석이라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닮은꼴 배우’를 등장시켜 나무를 약화하는 것이다. 둘이 서로 비슷할수록 혼동을 불러오게 된다. 누가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인지 헷갈리게 하여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를 더 강조한다. 수가 많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전우치가 분신술로 수없이 많은 전우치를 만들어내 진짜 전우치를 못 알아보게 한다면 성공적이다. 이로써 다르게 표현하기가 활력을 얻는다.
‘숨바꼭질’의 방법도 좋다. 나무를 숨겨 독자가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특정하지 않은 여러 요소를 많이 등장시키고 나무는 그중의 일부로만 존재하게 한다. 비교가 될 만한 강력한 대항마가 아니라 수많은 보조출연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교와는 다른 방법이다. 숨바꼭질의 방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깊숙이 숨겨둬 끝내 찾을 수 없는 경우다. 숨바꼭질의 묘미는 꼭꼭 숨어서 술래가 찾기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숨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 숨는 사람이 술래를 남겨두고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있다면 술래는 숨은 사람을 찾아낼 수 없다. 숨겨두되 사진 안에 있어야 한다. 숨바꼭질은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생각된다.
이런 방법 중에서 하나를 쓰든, 모두를 쓰든 상관없이 그 결과물은 여러 의미에서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5월22일까지 서울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리자 링클레이터의 ‘쿠바의 컬러’는 쿠바에 가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으로 보인다. 특별한 사진이 별로 없다. 6월10~28일 인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열리는 김수수 사진전 ‘숨바꼭질’은 다르게 보긴 했는데 너무 깊이 숨었다. 뭘 찍었는지 찾을 수 없다. 5월24일~6월7일 인천 한중문화관에서 열리는 최용백 사진전 ‘대청도, 모래사막’은 사막을 다르게 보려고 애썼고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사진들이 꽤 있다.
|
도서출판 ‘휴’에서 제공하는 신간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
|
6월 ‘다르게 보기’의 테마는 ‘문’이다. 대문, 현관문, 숭례문 등 어떤 형태의 문이든 상관없다. 기존에 찍은 사진도 괜찮다. 6월12일까지 사진마을 참여마당(photovil.hani.co.kr/participation)에 ‘문-다르게 보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리면 된다. 1인당 2장까지. 독자의 투표와 촌장의 심사를 통해 모두 5장을 선정하고 6월 말 사진마을과 <한겨레>지면을 통해 촌장의 촌평을 곁들여 발표할 예정이다. 도서출판 ‘휴’에서 제공하는 신간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를 보내드린다. 이 책은 김인숙 수녀님의 글과 남민영 수녀님의 시로 구성돼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