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가족전’ 기획 유감
바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
기획자들의 과도한 재해석 탓
이중인화·충격적·희귀한 사진 가득
주체를 꿰뚫는 ‘작품’ 좇던
그의 철학과 동떨어진 전시 아쉬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와 아키텐 지역 현대예술기금과 공동주최한 것으로 두 프랑스 기관의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워커 에번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윌리엄 클라인, 디앤 아버스, 제프 쿤스, 신디 셔먼 등 거장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1916~1980)의 탄생 100주년을 같이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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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어머니와 아이. 안드레스 세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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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시장에서 만난 사진들은 바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전시 의도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시장 3층에 있는 3부 ‘보이지 않는 이들(카메라 루시다 사진첩)’에는 작업 속에 기독교적 도상을 주로 넣어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안드레스 세라노의 ‘부다페스트, 어머니와 아이’가 걸려 있다. 바르트가 이 사진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충격적인 사진’은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는다고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전시장 곳곳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사진부서의 책임을 맡은 파스칼 보스, ‘롤랑 바르트 전문가’ 마갈리 나체르갈 등 3명의 프랑스 사진계 인사가 공동으로 기획을 맡았다. 전시 내용도 바르트의 저서 중 <신화론>과 <카메라 루시다>에 기반하여 ‘신화를 해체하기’, ‘중립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카메라 루시다 사진첩)’, ‘자아의 허구’, ‘에필로그’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에서 보이는 기획상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가족이란 개념을 끌고 온 것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란 점이다. 기획자 중 한 명인 마갈리 나체르갈은 전시 심포지엄 에세이 ‘사진의 정치학’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바르트가 이제는 어머니도 잃고 <카메라 루시다>에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생각을 할 순 있겠으나 바르트 저서 <카메라 루시다>는 가족에 대한 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카메라 루시다>를 쓰게 된 것은 충격을 받은 바르트가 어머니의 유품, 특히 사진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애도하기 위해 다시 어머니의 본질을 찾아가면서 독자적인 사진론을 전개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그 과정에서 당대 작가들이 찍은 24장의 사진을 예로 들었는데 사진의 본질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진의 본질에 대한 그 어떤 기존의 연구도 바르트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사진체계를 세우게 된 것이 책의 1부에 해당한다. 스투디움 사진과 푼크툼 사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은 <카메라 루시다>의 핵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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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와 낙엽. 에두아르 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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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사진전의 내용이다. 바르트의 이름을 빌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걸린 사진들이 바르트가 책에서 ‘해체’시켰던 종류의 것들이 대부분이란 점이다. 전시 주최 쪽은 “<카메라 루시다>에 담긴 사진론에 기반한 전시”라고 설명하지만 많이 빗나갔다. 교양이나 정신집중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스투디움 사진인데 “유감스럽게도” 스투디움 사진에 대해 바르트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이는 어머니의 사진들 중에 바르트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담은 사진들이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바르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어머니의 어느 일부만 보여줄 뿐 어머니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수많은 스투디움적 사진을 ‘해체’시켜 나간다. 희귀한 사진, 순간 포착, 빠른 셔터속도의 사진, 이중인화 같은 기법에 의존한 사진은 바르트를 설복시키지 못했다. 책 6장에서 바르트가 대놓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혐오하는 순간들이 있다. 외젠 아제의 고목 사진, 피에르 부셰의 누드 사진, 제르멘 크륄의 이중인화 사진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전시장엔 동성애자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과 디앤 아버스의 지적장애아들 사진이 걸려 있다. 전시 기획 의도는 “바르트는 동성애자, 거리의 아이들, 지적장애인, 사형수 같은 소수자들을 그의 사적인 이미지의 역사 안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류가 아닌 비가시적인 인물로 이루어진 사진첩을 만들어 그들을 조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 <카메라 루시다>엔 루이스 하인의 ‘어느 학교의 지적장애아들’이란 사진이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괴물 같은 머리와 가엾은 옆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세부 요소이며 소년의 옷에서 커다란 당통식 칼라이다.” 바르트가 이 지적장애아 사진을 넣은 것은 ‘보이지 않는 자들(소수자)’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세부 요소, 즉 푼크툼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푼크툼은 비의지적으로 화살처럼 날아 들어와 (나를) 찌르고 상처를 주는 것이다. 바르트가 최종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진은 어머니의 다섯살 때 사진이다. 이 온실 사진의 소녀는 (바르트가 태어나기 전의 어머니이니) 바르트가 알아볼 수 없다. 그래서 바르트는 “어머니는 나를 위해 최초의 모습이었던 본질적인 아이와 결합되면서 나의 소녀가 되었다”고 반기면서 그 사진 앞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론을 굳이 읽어낸다면 사진의 여러 속성 중 “그것은 거기 있었음”이 핵심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소위 예술사진이 아닌 사진이 더 예술적이라고 책에서 직접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장엔 바르트가 외면했던 ‘예술사진’이 넘친다.
<카메라 루시다> 20장에서 안드레 케르테스가 찍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선율’ 사진을 예로 들며 바르트는 직설적으로 그리고 쉽게 설파했다. 그 사진에서 바르트의 관심을 끈 것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배경으로 찍힌 흙길이었다. “어떻게 케르테스가 흙길과 그곳을 지나가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분리할 수 있었겠는가?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것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도 특히 사진가는 (오르페우스를 모방하면서) 사진가가 이끌고 있는 것, 나에게 제시되는 것을 보기 위해 뒤돌아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사진가들이 보고 의도하고 찍었던 내용과는 전혀 뜬금없는, 다시 말해 찍다보니 우연히 따라온 지엽적인 것에 바르트는 주관적으로 관심을 보였다는 뜻이니 사진가들은 엉뚱한 주장을 하지 말고 가만히 앞으로 가라는 이야기로 읽힌다. 뒤돌아보면 하데스로 떨어진다. 푼크툼이란 개념을 끌어내기 위한 서술이자 바르트가 세상 대부분의 사진을 배제시키고 있는 과정이다. 바르트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부 묘사의 푼크툼에 도달한다.(책은 2부에서 시간의 푼크툼으로 건너갔다.)
세 번째 문제는 5부 ‘에필로그’에서 “롤랑 바르트가 <신화론>에서 비판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컨 기획의 1955년 <인간가족>전의 대안”이라고 전시되고 있는 현재의 사진들이 당시의 <인간가족>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바르트의 비판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구성”되었다는데 비판적 시각에 바탕을 둔 사진이 별로 없다. 바르트가 살아서 지금 이 전시를 본다면 똑같이 비판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보인다. 바르트를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면 ‘바르트을 위한 오마주’라도 되어야 하는데 이 전시는 1955년 전시된 ‘인간가족’의 스핀오프 정도로 보이니 바르트를 다시 분노하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이다. 5부 에필로그가 열리는 일우스페이스는 대기업인 한진그룹이 설립한 곳이다. 바르트가 그토록 깨고 싶어했던 것이 권력, 권위, 자본이 만든 코드였음을 생각하면 무척 흥미롭다.
롤랑 바르트는 세상을 떴으니 그의 이름을 건 전시는 전시기획자의 책임이다. 좋은 전시가 되려면 기획자는 관객에게 롤랑 바르트를 제대로 전달시켜야 하고 그에 걸맞은 사진들을 걸었어야 했다. 전시 기획자의 과도한 재해석으로 인해 바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는 바르트의 사진철학은 보이질 않는다. 기획자들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바르트는 “‘글쓰기의 영도’와 ‘저자의 죽음’을 통해 저자 대신 독자 중심적 철학을 제안”했다. 이 전시를 생산한 것은 기획자다. 바르트는 없고 기획자만 남았다. 관객은 길을 잃는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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