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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4 18:48 수정 : 2016.03.24 18:48

사진마을
독창적 사진 찍는 작가 3인

순수하지 않은 ‘순수사진’도 있고 기록이 빠진 ‘다큐멘터리사진’도 있다. 대학교의 사진학과에서 전공을 세분화하면 순수파트와 다큐파트도 들어간다. 이 구분은 딱히 정의를 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혼용되고 있다.

필립 퍼키스는 명저 <사진강의노트>에서 “사진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불쾌한 추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록(Documentary)’사진과 ‘순수예술(Fine Art)’사진을 따로 갈라서 구역을 정해 놓은 것이다. 모든 사진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사진은 사진가가 결정을 내린 순간 찍히기 때문에 얼마간 사진가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세 명의 사진가를 소개한다. 2016년 갤러리 브레송의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3번째 작가로 선정된 이영욱은 30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인전 ‘텅 빈 의미-Obtus’를 열고 있으며, 스페이스22 오픈콜 선정자 가운데 한 명인 조현택의 ‘빈방’은 28일부터 4월9일까지 스페이스22에서 열리며,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게 된 김승구는 올해 안에 ‘시티라이프’ 사진전을 열기로 예정되어 있다. 사진의 외형적인 관점에서 하늘과 땅만큼 다른 세 사진가를 한꺼번에 소개하는 것은 기자가 ‘순수’하게 자의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순수예술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을 구분하여 부르고 대학에서 전공을 구분하여 가르치는 것은 사진의 역사와 사진의 본질적인 속성에서 유래하였다. 어떤 그림보다 더 정교한 묘사가 가능한 사진이 탄생하여 회화를 해방시켜 인상주의의 태동이 촉발되었다. 그랬던 사진이 다시 회화가 이미 장악하고 있는 예술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회화와 유사한 사진”인 ‘회화주의사진’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셔터를 눌러 찍는 사진이 아니라 겹치거나 합성하거나 덧붙이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만드는 사진”이 소위 ‘순수예술사진’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와 대척점에서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찍는 사진을 스트레이트사진 혹은 다큐멘터리사진으로 부른다.

‘순수예술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스트레이트사진은 너무 뻔해 작가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아 작풍을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서 ‘다큐멘터리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진이 가지는 기록의 속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라면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사진가는 다르게 찍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남들과) 다르게 찍지 않으면 사진가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여기 소개하는 3인의 사진가는 이런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부조화로 이야기하는 ‘이영욱’
지난 20년간 찍은 독립 사진 50여점
낱장 또는 여러장 조합해 ‘코드 깨기’
갤러리 브레송서 이달 30일까지 전시

대상과 침묵의 접촉, 1998 이영욱

갤러리 브레송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영욱의 ‘텅 빈 의미’는 1995년 ‘자유공원’ 연작부터 2015년의 ‘집이다’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모든 작업이 총망라되어 있다. 넓다고 할 수 없는 전시공간이지만 이영욱은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크기가 다양한 50여점을 선택하여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르게 보여주기 위해 이영욱은 트립틱(세 장의 독립된 사진을 이어서 구성하는 방식)부터 시작했다. 트립틱 자유공원 연작 중 하나는 자유의 여신상, 비둘기집, 맥아더 장군 동상이 왼쪽부터 나열되어 있다. 각각의 자유공원과 비둘기집, 동상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지만 세 장의 배치는 전에 없던 구성이다. 외형적인 구성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의미 발생에서 완전히 독창적이다. 프랑스가 만들어 미국에 가져다 놓은 자유의 여신상을 본떠서 만든 조각상이 자유공원에 있다. 가운데 자유의 상징 비둘기집이 있고 오른쪽에 목이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간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다.

2008년 작업 ‘불확실한 여행’은 한 장 안에서 부조화를 보여준다. 키친타월과 검은색 우산과 유리판과 빨래건조대가 같이 들어 있다. 1998년 작업 ‘대상과 침묵의 접촉’도 부조화를 보여준다. 기념사진을 찍어주려고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앉았는데 이건 전화를 받는 것인지 카메라를 들었는지 엉거주춤하다.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는 ‘이영욱론’에서 길게 썼는데 “사진으로 하는, 사진에 대한 신화 깨기 작업” 정도로 귀결된다. 사진 전체가 아니라 일부의 사진에 대해 롤랑 바르트가 잘 정리해둔 이야기, 즉 “사진은 코드로 이루어진 신화”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된다. 이영욱은 한 장이든 여러 장의 조합을 통하든 사진 속에서 코드 깨기, 신화 깨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게 어떤 코드인지 신화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별건이고 관객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작가나 평론가가 ‘왼손처럼’ 거들 뿐이다.

빈방을 옵스큐라로 만든 ‘조현택’
전남 나주·함평 등 빈방 79곳에서
벽의 구멍 통해 맺힌 이미지 찍어
스페이스22에서 28일부터 전시

나주시 금계동, 2015 조현택

스페이스22에서 곧 개막될 조현택의 ‘빈방’은 독특한, 그렇지만 여전히 셔터를 눌러서 찍는 촬영기법으로 시선을 잡아챘고 (남들과) 다른 사진을 만들어냈다. 물론 외형적으로만 성공한 것은 아니고 사진을 찍는 의미도 살렸다.

조현택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남 나주와 함평과 광주 등지 빈집의 빈방을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었다. 카메라가 방이란 뜻이고 방을 밀폐시켰으니 ‘옵스큐라’가 되었다. 창문이나 방문이 있었던 쪽의 벽에 바늘구멍을 뚫으면 맞은편 벽에 창밖(바늘구멍 밖)의 풍경이 영화처럼 재현된다. 거꾸로. 조현택은 그 빈방(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 벽과 벽에 맺힌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어 냈다. 일종의 설치작업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스트레이트사진인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현택 자신이 자기 사진을 “순수니 스트레이트니” 규정한 적이 없고 찍고 나서 후보정 작업을 한 것도 아니다.

나주시 금계동에서 찍은 유채꽃 핀 풍경은 촬영 정보를 보니 4월이다. 이 방이 빈집이 되기 전엔 사람이 살았을 것이다. 어느 해 4월이든 방 앞마당엔 유채꽃이 피었을 것이니 방에 살던 사람이 창밖으로 바라본 유채꽃을 이제 빈방이 되어 곧 철거되기 전 상태의 벽면에 투사한 것이다. 다른 데서 찍어 온 영상을 슬라이드로 비추고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집 마당, 그 집 창밖 풍경을 바늘구멍 창을 통해 비치게 한 것이다. 조현택은 그동안 79곳의 빈방에서 이런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순다. 집들이 보여주는 느낌은 제각각이었고, 사람이 떠나 비어 있는 집들에서 어느 순간 다양하고 묘한 유기체적인 지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어 있는 방 안에 마당의 풍경을 들여와 마지막일지 모를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빛을 차단한 어두운 빈방을 ‘카메라 옵스큐라’ 삼아 촬영을 하면서 마치 거대한 카메라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상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면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현택의 사진을 거꾸로 보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도시의 인공 조형물 찍는 ‘김승구’
2008년부터 ‘시티라이프’ 프로젝트
유원지·축제 등 현대사회 자연 담아
“자연풍경과 인공적 풍경 대비할 것”

홍제천, 2015 김승구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을 다시 전공한 김승구는 전화인터뷰에서 “비유하자면 한국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용어에 갇힌 느낌이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사진이란 용어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기술적으로 사진찍기를 더 배울 것은 아니었다. 사진에서 벗어나, 사진을 뛰어넘어 폭넓은 흐름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형예술을 전공했다”고 대답했다.

2014년에 송은아트큐브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 작가가 된 그는 2015년에 송은아트큐브에서 ‘풍경의 목록’으로 전시를 열었다. 풍경의 목록은 그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시티라이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사진작업을 글로 설명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무모할 수 있다. ‘시티라이프’의 하위 범주 제목은 진경산수, 밤섬, 리버사이드, 축제, 이동갈비, 유원지 등이다. ‘홍제천’ 사진을 보면 왼쪽편에 폭포, 진달래, 소나무, 벚꽃이 만발한 동산이 있고, 그 앞으로 홍제천이 흐르고, 그 앞으로 한 무더기의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또 한 무더기는 막바지 조경작업을 하는 모습이 한 장 안에 들어 있다. ‘이동갈비’ 사진엔 고기를 굽는 불판이 식당 탁자에 보이고 그 뒤 통유리창 너머로 인공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창덕궁 후원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어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우리 집 정원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생각난다.

김승구의 시티라이프는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인공적인 조경물, 축제의 조형물, 공원의 설치작업 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현대사회는 자연을 소유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와지붕이 있는 펜션 마당에 마련된 거대한 풀장 사진 같은 것은 다른 사람도 찍을 수 있는 작업이며 게다가 건축가나 조경가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창작물이니 사진가의 작업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김승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몇 번이나 미술상, 사진상 면접에서 떨어질 때 ‘왜 스트레이트를 고집하느냐, 왜 정면에서 소재를 반복으로 보여주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낙선했다. 시티라이프의 프로젝트에서 낱장의 사진을 떼어놓고 보면 다른 사람이 찍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를 묶어서 나열하는 방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범주화, 맥락화가 중요하다. 한두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작업하면서 시대적인 범주에 따라 엮으면 개념을 획득할 수가 있게 되고 이 정도 되면 남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리버사이드 연작 중의 한 장은 비가 많이 와 범람 직전까지 간 한강에서 사람들이 태연하게 낚시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바로 코앞에 턱밑까지 차오른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마치 이 남자의 집 마당 연못에 심어둔 정원수처럼 보인다. 작가는 “어색하게 뒤섞이는 사물과 풍경들”이란 표현을 썼다. 이 작업을 9년째 뚝심 있게 이어오면서 김승구 작가도 (다른 사람의, 다른 사진과) 다르게 보여주기에 성공했다. 그는 “올해 가을쯤 열릴 전시에는 자생적인 자연풍경과 인공적인 자연풍경의 대비를 좀더 친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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