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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1 14:55 수정 : 2008.10.21 15:03

“내가 준 바나나가 더 맛있어” - 12일 오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 문을 연 유인원 테마공간 ‘프렌들리 몽키밸리(Friendly Monkey Valley)’에서 한 어린이가 바나나 탑 앞에서 흰손긴팔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고 있다. (연합뉴스)

[조홍섭 환경칼럼]
단일품종 약점, 치명적 병충해 땐 몰살

 올들어 8월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어치운 바나나는 19만t으로 낱개로 치면 약 15억개에 이른다. 전 국민이 매주 하나꼴로 바나나 껍질을 벗긴 셈이다. 수입한 과일 가운데 오렌지, 파인애플, 포도를 제치고 가장 양이 많았다.

 요즘 바나나는 ‘몸짱·웰빙 식품’으로 꼽힌다. 특히 장시간 운동을 하는 마라토너, 골퍼, 테니스 동호인들에게는 신속하게 열량을 공급해 주는 맞춤한 먹을거리다.

 게다가 값도 다른 과일보다 싸다. ㎏당 소매가격은 바나나가 1900원, 포도 5600원, 오렌지 7400원이어서, 같은 돈으로 바나나는 다른 과일보다 3~4배 많이 살 수 있다. 국산 사과도 바나나보다 5~10배 비싸다. 이 때문에 한때 사치품이던 바나나는 서민 장바구니의 단골 품목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에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열대 동남아나 남미에서 시퍼런 상태로 수입해 갑자기 익혀먹는 것도 마땅치 않거니와 운반 과정에서 농약을 많이 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바나나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직업병에 고생하는 농민의 모습도 지울 수 없다. 조금 비싸도 ‘공정무역’으로 들여오거나 유기농으로 재배한 바나나를 찾기도 한다.

열대과일인 바나나는 대륙을 건너다니는 대표적 과일이다. 수천㎞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덜익은 과일을 따서 최종 판매지 근처에 있는 가스시설에서 에틸렌 가스로 인공으로 익힌다. 자료사진

 그런데 이런 바나나가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보전생물학회가 내는 온라인잡지 <보전> 최근호에서 과학 저술가 프레드 피어스는 바나나의 비극적 운명을 소개하고 있다.

 연간 전세계에서 수천억개가 소비되는 바나나는 거의 모두 ‘카벤디시’라는 한 품종이다. 인류는 지난 빙하기 말 동남아 밀림속에서 우연히 씨가 없고 과육이 부드러운 야생 바나나의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씨앗이 없어 불임인 이 바나나품종은 뿌리줄기를 나눠 번식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의 모든 바나나는 한 뿌리에서 나온 복제품이어서 치명적 병충해가 돌면 몰살할 위험에 놓여있다.

  1950년대에 첫 재앙이 찾아왔다. 당시까지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전세계 바나나는 모두 그로스 미쉘 품종이었는데, ‘파나마 병’이란 토양곰팡이에게 맥없이 무너졌다.

 1828년 한 영국인 식물학자가 중국 남부에서 찾아낸 카벤디시는 그로스 미쉘보다 맛은 떨어졌지만 곰팡이에는 잘 견뎠다. 하지만 전 세계로 퍼져나간 새 바나나 품종을 곰팡이가 내버려둘 리가 없다. 세계 어느 농작물보다 많은 한 해에 40번의 농약 세례를 받으며 재배하는 바나나지만, 1980년대에 신종 파나마 병 곰팡이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카벤디시가 몰락하는 건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그 때가 오면, 새로운 품종의 바나나를 찾아내야 한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아마 전혀 다른 맛의 바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유전자 조작이다. 곰팡이에 견디는 형질만 따붙인 ‘카벤디시 2.0’을 개발하면 된다. 이 때는 맛이 아니라 선택이 문제다. 아무리 혀가 좋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유전자를 먹는 게 께름찍하다고 두뇌가 거부하면 그 품종개발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바나나의 몰락은 다른 수많은 과일이나 농작물의 단작재배가 빚은 과오를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병충해나 가뭄에 잘 견디는 등 다양한 형질을 지닌 토종 과일들은 맛은 좋지만 허약한 체질을 농약으로 지탱하는 상업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파인애플, 사과, 땅콩 등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일랜드인 100만명을 아사시켰던 감자바이러스는 단일품종 작물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가난에 찌든 아일랜드인들은 남미에서 감자가 도입된 뒤 인구가 급증했다. 1846년 이 단일 감자품종에 치명적 잎마름병이 돌기 시작했다. 불과 3년만에 인구 여덟에 한 명꼴로 사망했다. 이 재앙은 남미 아즈텍에서 잎마름병에 걸리지 않는 야생 감자를 들여와서야 끝났다.

 그나저나, 바나나가 없어지면 서민들은 무슨 과일을 먹어야 하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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