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0.01 16:24 수정 : 2008.10.02 10:29

힘 센 물범이 암초를 먼저 차지한다. 빈 자리를 노리는 다른 물범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환경현장] 주민 참여 국내 첫 출범
자연 보전·지역경제 활성화 ‘두 마리 토끼’
추억의 고기잡이 ‘대후리’ 복원 재미 두배

“물범이 웃고 있어요.” “와! 귀엽다.”

지난 28일 백령도 동쪽 하늬바위 근처의 해안초소에서 아이들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환호성을 올렸다. 전날 배를 타고 물범바위에 접근했지만 물때가 맞지 않아 물속에 잠긴 채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을 먼발치서 봤던 터였다.

경기 군포시 수리동에서 가족과 함께 온 나민주(11) 양은 “가까이서 보지 못해 아쉽지만 처음 본 물범의 실제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날 백령도에서 물범 생태체험관광을 한 사람들은 가족 단위 참가자와 환경단체 활동가, 동물 전문가 등 20명이다. 이 행사는 국토해양부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가 주최하고 녹색연합이 백령면이장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올 들어 두 번째 시범사업이다.


생태관광은 주민참여 아래 자연을 보전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유력한 대안으로 지자체마다 꼽고 있지만, 이를 구체화하기는 국내에서 백령도가 처음이다.

그물 속에 걸린 물고기까지 먹는 등 영리해 


백령도 연안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점박이물범이 서식한다. 28일 물범바위의 암초 위에는 5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들이 바위에 올라 쉬고 있었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물범들은 통통한 몸집에 작은 앞다리를 붙인 채 커다란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거나, 지느러미로 바뀐 다리와 머리를 하늘로 뻗어 몸을 활처럼 휘는 독특한 모습으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늘어진 귀와 얼굴표정이 토종 강아지 인상이다.

그러나 어민과 물범의 관계가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중국 발해만에서 번식한 점박이물범이 백령도로 몰려드는 까닭은 이곳에 우럭과 놀래미 등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인데, 수산자원을 잃는 어민들이 반가울 리 없다.

김진원 진촌3리 이장은 “가뜩이나 중국 어선이 고기를 쓸어가는 마당에 물범까지 고기를 마구 먹어치워 피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어민들은 영리한 물범들이 그물 속에 걸린 물고기까지 훔쳐가고 그 과정에서 그물을 뜯어놓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지난달부터 이곳에서 물범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박태건 고래연구소 박사는 “아직 정확한 연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어민들 주장처럼 물범이 물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물범이 하루에 30㎏나 되는 물고기를 먹는 것은 사실이지만 며칠에 한 번 먹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30%쯤 덜 먹는다”고 말했다.

물범 얘긴 꺼내지도 말라던 어민들 차츰 맘 돌려

생태관광을 위해 옹진군의 지원을 받아 어민들이 10여년만에 부활시킨 전통어법 ‘대후리‘. 해안에서 그물을 맨손으로 당겨 멸치, 학꽁치, 전어, 조기 등을 잡는다.
 

나선 참가자들이 선박에서 물범바위 주변을 헤엄치는 점박이물범을 관찰하고 있다. 선박을 타고 가더라도 물범을 가까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주민들도 생태관광과 물범 보존의 필요성에 차츰 마음을 열고 있다.

2006년부터 물범조사를 해 오고 있는 녹색연합의 김경화씨는 “처음엔 주민들로부터 ‘물범 얘기 꺼내려거든 다시는 들어오지도 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엔 주민대표들이 제주도 예래동 생태관광마을을 견학하기도 했다.

물범 관찰은 생태관광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주민들은 전통어법인 ‘대후리’를 복원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얕은 해변을 2㎞ 길이의 반월형 그물로 막은 뒤 여러 어민들이 손으로 그물을 당겨 멸치, 학꽁치, 조기, 숭어, 고등어, 돌가자미 따위를 적지 않게 잡아냈다.

진촌리 주민 김영남(58)씨는 “생태관광을 한다기에 10여년 만에 올해 다시 시작했는데 잡는 재미도 쏠쏠하고 방문객도 좋아 한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기잡이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모습이었다. 특히 사라졌던 조기들이 입에 멸치를 문 채 더러 잡히자, 바다가 살아나는 조짐이라고 기대를 걸기도 했다.

김경화씨는 “생태관광이 성공하려면 주민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며 “지역 내부에서 물범을 안내하는 전문가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경숙 국토해양부 해양생태과 사무관은 “생태체험관광을 통해 희귀한 해양동물 보전과 지역개발을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며 “백령도의 관광자원과 연계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물범 관찰대와 안내판 설치 등 관광인프라를 갖추는 사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령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점박이물범은?

한국에 서식하는 유일한 기각류로 천연기념물
불법포획 등으로 개체수 줄어 멸종위기종 지정

물범바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점박이물범들. 이 바위는 낚시꾼과 미역 등 해조 채취를 위한 어민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뒷다리가 수중생활에 적응해 지느러미 모양으로 바뀐 기각류 동물 가운데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서식하는 종이다. 11월이면 바다가 어는 중국 발해만으로 이동해 유빙 위에서 새끼를 낳아 기른 뒤 일부는 중국 산둥반도에, 일부는 4월께 백령도로 온다. 백령도 물범은 다시 서해와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고래연구소는 지난해 동해 강릉 해안에서 점박이물범 3마리를 관찰했고, 이 가운데 어선과 충돌해 사망한 개체의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서해 집단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했다.

황해의 점박이물범은 1940년대만 해도 8천 마리에 이르렀으나 중국 발해만에서 만연한 불법포획과 서식지 파괴로 1980년대 2300마리로 줄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00~2002년 조사에서 해마다 최대 340마리만이 목격됐다. 가장 많은 수의 점박이물범이 백령도에 찾아오는 9월 고래연구소가 관측한 수는 2006년 273마리에서 지난해 188마리로 떨어졌다가 올해에는 약간 늘어 8월 말 현재 213마리가 관찰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1년생은 3~4마리에 그쳐, 번식개체가 늘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고 고래연구소는 파악하고 있다.

백상아리가 천적이지만 백령도 근해에서만 연간 3~4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는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번식지인 유빙이 사라지는 것도 장기적으로 치명적이다. 천연기념물 제 331호이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법정 보호종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조홍섭의 물, 바람, 숲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