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8.20 10:01 수정 : 2008.08.20 13:38

원시림에 가까운 면산 정상 근처에 선 조범준씨.

[한국의 자연주의자들] 야생동물 지킴이 조범준씨
1년 300일 밖에서 자며 백두대간 제집처럼
서식지 조사와 모니터링 국내 최고 전문가

자연을 향한 애착은 수렵·채취가 인류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의 유전자 속에 살아있다.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생존과 종족번식뿐 아니라 정신적, 심미적 만족을 위해서도 자연을 필요로 한다며,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생물에 대한 애정’(바이오필리아)을 꼽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전문가를 넘어서는 경지에 이른 아마추어 자연연구자 등 남다른 자연사랑을 삶의 방편으로 삼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목격담 생생…무인센서 카메라 설치, 증거 확보 나서  

“표범! 표범을 봤어요….”

양병국 국립환경과학원 박사의 전화기를 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두대간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야생동물을 조사해 온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사무국장(47)의 목소리가 떨렸다.

조씨는 2006년 8월11일 경북 봉화군 삼방산에서 면산을 거쳐 강원도 태백시 쪽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센 날이었다. 오후 2시께 평소처럼 신갈나무 거목 밑에서 숨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마치 톱날을 줄로 가는 듯한 컥컥하는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본능적으로 맹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겁이 더럭 나 지니고 있던 막대기로 나무 둥치를 쳐 소리를 냈지요. 나무 밑 움푹 패인 바위틈에 있던 표범이 놀라서 건너편 산등성이로 빠르게 사라지더군요.”


지난 12일 조씨와 함께 표범을 목격했던 면산(해발 1245m)을 찾았다.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 경북 봉화군의 경계에 위치한 이 산은 전문가들이 ‘남한에 표범이 살아있다면 비무장지대 아니면 이곳’이라고 꼽는 대규모 산악지대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혹시 그가 본 것이 삵은 아닐까. “놀란 상태였지만 매화무늬의 반점과 사람 허리 높이로 나무를 지나가는 모습을 분명히 봤습니다. 삵보다 훨씬 컸지요.”

이튿날 국립환경과학원 연구팀이 와 이 일대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했다. 조씨는 증거도 없이 허튼소리를 한다고 할까 봐 몇몇 이들을 빼고는 목격담을 말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표범이 산다는 증거는 확보되지 않고 있다.

“표범을 평생 연구하는 사람도 표범과 직접 대면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워낙 조심스런 동물이라 사람을 만나기 전에 피해 버리기 때문이죠.”

그는 이 경험을 울진~삼척~봉화 산림의 야생동물을 지키라는 계시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동차 1년에 6만㎞ 달리고 등산화는 6개월마다 밑창 갈아

멸종위기동물인 노란목도리담비가 올무에 걸려 죽은 모습. 팔, 다리는 다른 동물에 뜯어먹혔다. 사진 조범준씨 제공

1994년부터 백두대간보전회 환경부장으로, 1999년부터는 야생동물연합 사무국장으로 일해온 조씨는 시민운동가이지만 정부 전문가들도 ‘선생’으로 부르는 야생동물 서식지 조사와 모니터링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이다.

또 어린이를 위한 야생동물 생태학교를 열거나 방송사의 야생동물 취재를 지원하는 교육·홍보 활동과 밀렵도구 제거 등 감시활동에도 바쁘다. 그는 “1년에 300일 가까이 집 밖에서 잔다”고 말했다. 그의 자동차는 1년에 6만㎞를 달리고 등산화는 6개월마다 밑창을 간다.

발로 현장을 뛰지 않고 입으로만 야생동물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전문가와 운동가를 그는 믿지 않는다. 산양이 깎아지른 절벽에만 산다는 믿음이 그렇다. “사람 접근이 힘든 비무장지대 근처 농경지와 소양호·파로호 물가 등에서도 산양의 흔적이 관찰된다”고 그는 말한다. 반대로 산양 서식에 적합한 환경일지라도 사람의 간섭이 빈번하면 산양은 자취를 감춘다.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늘어난 것도, 그의 현장지식으로는, 개체수 증가가 아니라 살 곳이 줄어든 결과이다. “경기도 수원의 광교산 멧돼지가 시내로 나온 것은 서식지였던 수지지구가 개발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먹이제공틀 근처 무인센서카메라에 찍힌 산양(왼쪽)과 산양의 배설물. 산양은 일정한 장소에서만 배설을 해 배설물 상태 등을 통해 몇 마리가 근처에 사는지 알 수 있다. 사진 조범준씨 제공

그는 산속을 다닐 때 동물이 자주 다녀 난 길을 이용한다. 배설물과 발자국을 확인하고 밀렵꾼들이 놓은 올무나 덫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동물길을 따라가면 힘이 들지 않아요. 동물들은 평지를 가듯 산등성이를 비스듬히 넘는 최단 코스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씨의 산양 모니터링에 따라나서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뼘 폭의 산양 통로를 따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토끼가 뜬눈으로 죽어가던 모습 보고 삶의 방향 정해

조씨가 울진~삼척~봉화 일대 산악지역의 야생동물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치한 무인센서카메라는 모두 40대이다. 거의 원시림 수준인 이곳을 매달 방문해 필름을 수거하고 배터리를 갈아주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일반용도로 쓰지 못한다’는 안내문을 붙여놔도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 “지금까지 20여대를 분실했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올무를 걷어내는 조범준씨. 일반인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동물들이 다니는 길은 동물, 밀렵꾼, 야생동물 지킴이가 차례로 밟는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조씨는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고한에 와 자랐다. 그가 야생동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류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생물교사로부터였다. 그러나 그의 삶을 방향지운 것은 “어릴 때 누군가 밀렵으로 잡은 토끼가 눈을 뜬 채 죽어가던 모습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생생한 기억 때문에 육식을 하지 못한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환경운동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눈앞의 개발이익보다 야생동물을 앞세우는 그가 곱게 보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크게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은 지역 유지의 승용차에서 시트로 깔아놓은 산양 가죽을 벗겨내기도 했다. “만일 개인 이익 때문이었다면 벌써 맞아 죽었겠죠.”

사람이 개발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오지 구석까지 개발 광풍이 부는 요즘 같아서라면 야생동물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그는 걱정한다.

“동물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고독해서 못 삽니다.” 그가 좋아하는 어느 인디언 추장의 말이다.

삼척·태백/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오지 중의 오지’ 울진~삼척~봉화 생태자연 1등급
곳곳 산양 흔적…멸종위기종 포유류만 6종이 서식

석개재에서 강원도 삼척시쪽 자연림 지대의 모습. 울진-봉화-삼척 산악지대의 북쪽이다.

지난 12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가곡자연휴양림은 휴가절정기인데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아연광산의 광물 찌꺼기가 홍수 때 쓸려 나왔기 때문이다. 휴양림 옆 가파른 산비탈을 15분쯤 오른 꼭대기에 산양을 위한 먹이공급대가 설치돼 있었다. 숫산양이 영역표시를 하느라 나무 밑동을 비벼대 껍질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휴양림 안쪽으로 들어가면 1994년 폐광된 국내 최대 아연광산이던 영풍광업 제2연화광업소가 있다.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폐광 터널 들머리에서 ‘피서’차 들른 산양의 발자국을 확인했다. 터널 옆 절벽 위에서는 산양의 배설물 무더기가 3곳에서 발견됐다.

산양은 곳곳에 있었다. 이곳처럼 산양이 많은 곳은 비무장지대 일대밖에 없다.

환경부는 2004년 울진~삼척~봉화 산림지대를 정밀조사한 결과 이 일대 396㎢에 약 150마리의 산양이 사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의 산림 규모는 설악산국립공원에 맞먹는다. 전체 면적의 88%가 생태자연도 1등급일 만큼 자연성도 높다. 여기엔 이밖에도 사향노루, 수달, 하늘다람쥐, 삵, 담비 등 멸종위기종 포유류만 6종이 서식한다.

이 지역 산림이 보전될 수 있었던 까닭은 ‘국내 최대의 오지’라는 이름처럼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산림지대를 관통하는 도로는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에서 석개재를 넘어 경북 봉화군 석포리로 이어지는 편도 1차선 포장도로가 유일한데, 이마저 결빙기엔 통행이 두절된다.

이 지역에는 밀렵이 성행한다. 산양이 잘 다니는 길에는 갖가지 올무와 덫이 설치돼 있다. 2000년 이후 밀렵된 산양만 4마리가 발견됐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밀렵감시활동 이외에 뾰족한 단속대책은 없다.

환경부는 2004년 울진~삼척~봉화의 산양서식지에 대한 자연환경 조사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핵심구역 219㎢을 야생동식물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산림청의 반발에 부닥쳐 지정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산림청이 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을 뿐 실질적인 생태계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숲 가꾸기와 벌채가 생태적 고려가 아닌 숲관리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척/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조홍섭의 물, 바람, 숲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