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3 17:42
수정 : 2008.08.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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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물무리골의 전경. 과거 농경지로 쓰였으나 자연 습지로 복원돼 희귀 동식물이 다수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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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현장] 영월 물무리골 자연습지
석회암 지대 희귀 동식물 낙원 “동강 못잖아”
멸종위기종 분포실태 조사도 없이 공사허가
산작약, 백부자, 삵 등 희귀 동·식물이 다수 분포해 있는 천혜의 자연습지가 생태학습장 공사로 위협받고 있다.
지난 7일 찾은 물무리골은 단종 능이 자리 잡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의 장릉 북쪽 300m 지점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샘물이 흘러들어 달뿌리풀이 키높이로 우거진 바닥엔 발이 푹푹 빠지는 자연습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는 보기 힘든 자생란인 잠자리난초가 여기저기서 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지가 손꼽을 정도로 적은 좀개미취, 거센털지치, 물쇠뜨기, 진퍼리잔대, 까치수영 등 희귀식물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배수로·방부목 등 이미 훼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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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2급인 산작약. 약초채취꾼 등이 무분별하게 캐가 자생지 유지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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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은 "멸종위기종 2급인 산작약은 최근 새로운 분포지가 발견되기 전까지 이곳이 유일한 자생지였고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백부자의 큰 집단도 여기에 있다"며 "석회암 지대의 드문 자연습지인데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종들이 적지 않아 보존가치가 동강 못지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원주지방환경청은 자연파괴 논란이 일고 있는 물무리골을 현장 조사한 결과 사업지구 안에서 산작약 7개체와 참작약, 닭의난초 등을 확인했다. 사업지구에서 20m쯤 떨어진 산에서는 백부자 군락도 발견했다.
산작약 자생지는 5년 전 물무리골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강원도에서 2곳이 더 발견됐으나, 약초채취꾼 등이 무분별하게 캐가 자생지 유지가 위태로운 형편이다. 산작약은 훌쩍 큰 키에 분홍색의 예쁜 꽃을 달고 있어 쉽사리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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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파헤친 곳에 나있는 고라니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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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도 매우 다양하다. 이대암 영월곤충박물관장은 "최근 물무리골에서 팔랑나비과의 신종 후보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다른 미기록 곤충도 여럿 있을 수 있는 곳을 조경위주로 개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사무국장은 "잠깐 둘러보았는데도 멸종위기종인 삵을 비롯해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의 발자국을 확인했다"며 "부근 숲에서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모여드는 좋은 서식 여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3월 착공한 생태학습원 조성공사로 이미 습지 일부는 훼손되고 있다. 습지로 흘러드는 계류를 따라 바닥을 고르고 방부목으로 호안을 하는 배수로 공사가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현 박사는 "희귀한 습지식물이 계류 주변에 많았는데 상당수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조 국장은 "배수로가 양서파충류의 이동로를 차단하고 방부목의 중금속에 의한 장기적 오염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공사인 화승건설㈜ 관계자는 "훼손된 잡초는 1년만 지나면 다 복구된다"고 말했다.
논란 일자 일단 공사 잠정 중단
영월군이 20억원의 사업비(국비 10억원)를 들여 추진하는 물무리골 생태학습원 조성사업은 문화재인 장릉과 연계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하자는 의도로 지난해 시작됐다. 7만5617㎡의 터에 관찰데크, 산책로, 야생초 화원, 애련지, 생태연못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안백운 영월군 문화재관리계장은 "습지에 외부식물이 들어오는 등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고 숲이 너무 어수선해 산불 위험이 있어 탐방객을 위한 최소한의 정비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영월군은 물무리골의 보전가치 논란이 일자 지난달부터 잠정적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으로부터 현상변경허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법적으로 공사를 중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물무리골은 도시계획구역 안에 위치해 사전환경성검토를 받을 필요도 없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업대상지의 현상변경을 허가하면서 배수로 정비계획을 세울 것과, 자연생태계와 습지가 잘 보전된 지역이기 때문에 인위적 이식을 최소화할 것 등의 조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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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리골로 흘러드는 실개천을 정비하고 방부목으로 호안을 쌓은 하천 정비가 이미 진행돼 습지를 훼손하고 있다. 생태학습원은 산책로 조성, 탐방용 덱 설치, 연꽃 연못 조성 등의 내용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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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화재청과 영월군은 물무리골의 멸종위기종 분포실태 등 제대로 된 생태조사는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생태학습장 조성계획을 보면, 연꽃 5340촉, 찔레 6천주 등 이곳에 없는 식물을 심을 예정이고 습지 주변에 1357m 길이의 산책로를 설치하는 한편 습지 안에 881m 길이의 데크를 설치할 예정이어서 습지의 교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진오 박사는 "물무리골의 희귀 동식물은 이 지역에 관광객 유입 이상의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며 "적어도 1년간 공사를 중단하고 생태조사와 저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월/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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