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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4 14:45 수정 : 2008.08.04 19:27

디즈니·픽사의 입체 애니메이션 〈월·E〉

[환경통신] ‘인간 없는 세상’ 판타지
애니메이션 <월·E>, ‘쓰레기 지구’ 묵시록 그려
사람의 책임·자연과의 공존 지혜 빠진 편견 엿봬

 닥치는 대로 많이 만들어 쓰고 버리는 생활이 극한에 이르자, 인류는 마침내 쓰레기더미로 변한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기로 한다. 무슨 이유에선지(아마도 엄청난 기후변화 탓이겠지만) 지구는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폐허로 바뀌어버렸다. 이곳에 홀로 남겨진(혹은 버려진) 태양광 충전식 지능로봇 ‘월·E’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라는 입력된 명령을 묵묵히 수행한다.

 

선택 받은 자들만 우주로 피신해 풍요 누리며 귀환 꿈꿔 

 오는 7일 개봉될 디즈니·픽사의 입체 애니메이션 <월·E>(감독 겸 각본 앤드류 스탠튼)는 이렇게 시작된다. 무려 700년 동안 청소에만 전념하던 월·E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건이 발생한다. 인류의 우주도피기지인 ‘엑시엄’이 파견한 지구 식물조사 로봇 ‘이브’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인류는 지구에 다시 식물이 자라는 때를 귀환시점으로 잡고 모니터링을 계속해 온 터였다.

 월·E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식물 한 포기를 발견하고, 이를 가지고 복귀하는 이브를 따라 액시엄으로 가 벌이는 모험이 이 영화의 뼈대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캐릭터 상품 출시를 노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수많은 기발한 로봇들의 행진이 아니라 이 영화가 지구환경 문제를 보는 시각이다.

 처음 40분 동안 사람의 모습은커녕 대화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쓰레기 지구’의 묵시록적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였겠지만, 왠지 차갑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아름답고 따뜻하기까지 한 로봇 이야기로 넘치면서도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인간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망가진 지구에서 고통스럽게 석기시대 이전의 비참한 삶을 꾸려가다 죽어간다는 따위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간단히 생략한다. 흥미진진한 로봇 이야기를 위해서 불가피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사람의 책임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초국적기업 ‘바이 앤 라지’가 만든 우주기지 액시엄에 피신한 사람들(아마도 선택된 몇몇 부자들)은 식물의 힘으로 지구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면서 자기들은 예전보다 더 풍요로운 최첨단의 삶을 꾸려간다.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영화는 로봇의 시중을 받아가며 비만이 유일한 걱정인 우주기지의 삶을 그리면서 미국식 생활방식을 야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들은 월·E를 따라 식물을 들고 아직 쓰레기더미인 지구로 돌아온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인류의 자취로 남는 것은 전파

 

인간없는 세상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2만3천원)도 지구상에서 사람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뒤의 세상을 그렸다.

 신종 바이러스나 나노입자, 초신성 폭발 등 지구의 다른 생물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아니라 신흥종교의 ‘휴거’처럼 어느날 인간만 몽땅 사라진 상황을 가정했다. 인간의 압박에서 해방된 자연은 어떻게 반응할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은 어떻게 될지 등을 실제로 무인상황이 된 한국의 비무장지대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 등을 방문하면서 추론했다.

 이런 종류의 상상은 <월·E> 처럼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넘친다. 사람이 없어진 이틀 뒤 제일 먼저 뉴욕 지하철이 물에 잠긴다. 지하수를 퍼내지 못하기 때문이다(똑같은 일이 서울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사람의 품에서 번성했던 애완동물은 고양이를 빼고는 억센 자연에서 모두 멸종할 것이다. 5백년이 지나면 온대지방의 교외는 개발 이전의 원시숲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능이 자연상태로 돌아가려면 25만년을 기다려야 한다. 인류가 남긴 플라스틱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흔적으로 남겠지만, 이것도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출현하면서 수백만년 뒤에는 없어진다.

 마지막까지 인류의 자취로 남는 것은 전파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150억년 전 대폭발의 흔적을 우주배경복사로 관측할 수 있는 것처럼 인류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로 쏘아보낸 전파는, 비록 약해지더라도 빛의 속도로 우주로 퍼져나가고 있다.

 와이즈만은 이 책에서 인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이유를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생물을 더 분명히 보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

 

자연 보호 빌미로 사람 내쫓는 미국 환경론자들의 이데올로기 

 이런 문제의식이 흥미롭긴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사람과 자연을 떼어놓고 생각하려는 편견이 엿보인다. 인간이 사라지면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서구, 특히 미국의 환경론자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인간을 자연에서 떼어내, 문화와 자연을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뿌리깊은 발상이다.

 1872년 세계 최초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지정할 때 미국인들은 자연과 공존해 수천년 동안 살아오던 수많은 인디언들을 공원구역 밖으로 쫓아냈다. 사람이 손님일 뿐인 ‘야생’은 미국을 이루는 주요한 이데올로기의 하나다. 서구의 원조를 받아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한다며 원주민을 몰아내, 결국 밀렵꾼으로 만든 것도 마찬가지 논리였다.

 인간이 생물계의 일원이라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오래된 지혜는 동물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것이다. 전통지혜로 잘 가꾼 개펄이나 다락논, 정원에서 자연은 ‘야생’ 상태보더 더 풍요로울 수 있다. 사람이 없는 자연을 그리는 상상력이 불편한 이유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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