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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8 18:29 수정 : 2008.07.20 15:06

지난 14일 오후 10시께 경남 통영시 국도 남서쪽 17마일 해상에서 대형선망어선 제115금성호(129t)가 친 그물에 대형 범고래 3마리가 걸려 숨졌다. 연합뉴스

[환경통신]
언론 보도는 어김 없이 ‘시가 얼마짜리 대박’

광주항쟁의 기억이 아직도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던 1983년 5월21일 <경향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설악산에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총에 맞아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밀렵꾼의 총탄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 설악산 마등령 부근까지 와 쓰러져 있던 10년생 암컷 반달곰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뒤 끝내 숨졌다.

야생 반달곰의 비극적 최후 관심 뒤엔 뱃속 웅담

언론은 이 비극적인 반달곰의 최후를 이례적으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반달곰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기술했다. "호흡이 가빴고 눈동자도 흐려졌다. 오전 11시40분쯤 약 보름 동안을 죽음과 싸워온 이 반달곰은 뒷다리가 뒤틀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숨소리가 멎었다. '웅웅'하던 신음도 들리지 않았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이런 야생동물 보도의 배경엔 일반인의 높은 관심이 놓여 있었다. 남한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마지막 대형 야생포유류의 존재보다는 그 동물의 뱃속에 들어 있는 웅담이 사람들에게 더 관심거리였다. 설악산 반달곰의 최후를 기록한 신문도 부검과정에서 어른 주먹 크기의 쓸개가 나왔고 그 무게는 180g이라는 자세한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언론은 이 반달곰의 웅담과 살코기가 경매에 부쳐져 거액에 팔리는 과정도 지켜봤다. 당시 <로이터>는 이를 보고 "한국인은 건강이나 장수, 혹은 보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쓰기도 했다.

환경부가 2004년부터 지리산에 풀어놓기 시작한 반달가슴곰 가운데 6마리가 올무에 걸리는 등의 이유로 폐사했다. 하지만 당국의 발표자료는 물론이고 어느 언론도 죽은 반달곰의 쓸개를 거론한 적이 없다. 야생동물에 대한 환경의식이, 적어도 반달가슴곰에 관해서는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일 지리산에서 폐사한 채 발견된 1년생 반달가슴곰. 환경부 제공.

우리 의식은 아직까지 ‘고기’에만 머물러


하지만 우리의 의식이 아직까지 야생동물을 '고기'로 간주하는 데 머무르는 대상이 있다. 바로 고래다.

지난 14일 경남 통영시 앞바다에서 길이가 6m나 되는 대형 범고래 3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선장은 범고래가 그물 속 물고기를 먹으려다 걸렸고, 이들을 풀어주려 했으나 2~3시간 몸부림치던 고래는 죽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범고래는 불법포획이 아닌 우발적 '혼획'(混獲)이란 검사의 판정을 받아 부산어시장에서 팔려나갔다.

이 범고래 가족의 비극을 다룬 언론의 시각은 한결 같다. '바다의 로또'가 또 터졌다는 것이다. 아직 사법당국의 판정이 나오지도 않았고 경매도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노컷뉴스>는 "시가로 3마리 모두 합쳐 3천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대박'의 액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에서 혼획되는 고래가 주로 밍크고래인데 범고래가 잡힌 것은 드문 일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했지만 "4천만원에 경매됐다"는 중요한 팩트를 빠뜨리지 않았다.

와이티엔은 한 걸음 나아가 '바다의 로또, 고래 때문에 울상'이란 기사에서 4100만원에 범고래가 팔렸지만 그물이 찢겨 고등어를 놓치고 장비도 손상을 입어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는 어민의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

바다에 친 그물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우리나라 해안을 몇 번 감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다엔 그물이 많다. 고래가 그물에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고래 혼획이 많은 나라로 꼽힌다. 지난해 517마리, 올해에도 벌써 200마리 넘게 그물에 걸려 비명횡사했다. 돌고래가 많고 그 다음으로 밍크고래가 주 희생물이다.

어민들은 고래가 늘어 수산물을 먹어치우고 그물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한다. 텅 빈 연안바다에서 물고기를 두고 어민과 고래가 경쟁하고, 그러다가 그물에 걸려 가뜩이나 생활이 어려운 어민의 그물을 망가뜨리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고래가 불어나기나 했는지, 그들이 먹어치워 수자원이 감소했는지, 고래들이 넓은 바다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등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 정부도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물에 걸리는 고래가 늘고 있고, 그것이 일부 어민들에게 짭짤한 부수입이 되고 있고, 또 일부는 혼획을 위장해 고래를 잡아 팔다가 해경에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과의 우정 그린 장편 다큐 영화, 가슴 울려

지난 5월 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장편 다큐멘터리 의 한 장면. 환경재단 제공.

이번에 죽음을 맞은 범고래는 다른 고래를 습격하는 '킬러'이지만 서구영화를 통해 인간과 우정을 나누는 고래로 알려져 있다. 10여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관에서 상영된 소년과 고래의 우정을 그린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이 바로 범고래이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환경영화제 경선부문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범고래 루나 구하기>가 있었다. 캐나다의 수잔 치스홈과 마이클 파핏 감독이 2007년 만든 이 장편 다큐멘터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밴쿠버 섬에서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어린 범고래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가 영원히 떠나가기까지의 기록이다.

특이하게도 이 고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함께 놀기를 원했다. 내민 손에 얼굴을 문지르고, 나뭇가지나 부표를 가지고 놀았고 물을 뿜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꼬리로 수면을 치는 장난을 즐겼다. 느린 배를 끝없이 따라다니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야생동물이 인간의 마음에 다가오는 색다른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 당국은 다른 생각을 했다. 사람과 익숙해지면 결국 사람이나 재산에 해를 끼치거나 고래가 프로펠러에 치명적 부상을 입을 것이라고 믿었다. "루나와 놀지 말라"는 왕따 결정이 내려졌다. 루나를 만지면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나중에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이 영화는 루나의 일방적인 사랑과 관심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선명하게 대조시킨다. 원주민과 일반 시민은 루나와의 우정을 자연상태에서 유지하길 원한 반면, 당국은 생포해 수족관에 '보호'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시민들의 반발로 루나는 수족관에 갇히지는 않았지만 결국 배의 스크류에 목숨을 잃고 만다. 우정을 맺은 지 4년만의 일이었다.

다시 통영 앞바다로 돌아오면, 루나와 우리의 범고래는 너무나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마도 새끼가 그물에 먼저 걸렸고 이를 구하려다 부모가 함께 걸렸을 통영 범고래는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익사했을 것이다. 이 둘의 죽음이 같은 죽음이라고 할 것인가. 이 죽음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큰 차이가 난다. 루나를 보낸 시민들은 종의 벽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값진 경험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로또가 터졌을 뿐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범고래 루나 구하기> 예고편 동영상 보기 http://www.gffi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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