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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5 15:27 수정 : 2008.06.30 07:41

끄리의 모습. 먹이가 달아나지 않도록 구부러진 입 형태가 독특하다. 이완옥(중부 내수면 연구소 박사)씨 제공

[환경 현장] ‘토종 외래어’ 끄리 
낙동강·남강 점령…오순도순 ‘원어종’ 몸살
고향 떠나 더 난폭, 움직이는 건 뭐든 공격

지난 20일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한 하천. 물에 스치듯 날던 노랑배잠자리를 노린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가 물살을 일으키며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길이 30㎝가량의 큰 몸집에, 머리와 지느러미 끝이 붉게 물들고 얼굴에 돌기가 잔뜩 돋아난 번식기 수컷 끄리였다.

낙동강이 '토종 외래어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강한 포식성을 지닌 토종 민물고기인 끄리가 애초 서식지가 아닌 낙동강에 유입돼 외국산 외래어종인 배스나 블루길보다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한 마리도 없다가 6년만에 2위로 껑충

이날 채병수 국립공원연구원 박사팀은 경북 군위군 소보면 복성리에 위치한 낙동강 지류인 위천 중류에서 어류 조사를 했다. 장마로 물이 불어 채집이 쉽지 않았지만 투망에 피라미, 참몰개, 모래무지, 참마자 등과 함께 끄리가 걸려 나왔다. 채집한 10마리 가운데 2~3마리가 끄리로, 피라미 다음으로 많았다.

1년생의 손가락 만한 끄리지만 큰 머리와 굴곡진 입 모양을 보니,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조리 공격한다는 포식성을 느낄 수 있었다.

채 박사가 1995년 이곳에서 조사했을 때 끄리는 한 마리도 없었고, 확인된 15종 가운데는 멸종위기종 1급인 흰수마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조사 때 끄리는 피라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종으로 뛰어올랐다. 환경파괴와 수질오염 영향도 있겠지만, 끄리 등장 이후 어종은 9종으로 줄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의 하나인 흰수마자도 자취를 감췄다.


끄리가 낙동강 물줄기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96년 임하댐에서였다. 채 박사는 "임하댐에 동자개 등 양식어종에 섞여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후 끄리는 무서운 속도로 번져, 2000년께엔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 대부분으로 퍼졌고 곳곳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종이 됐다.

환경부의 2005년 전국자연환경조사 때 경북 칠곡군과 대구시 달성군의 낙동강 본류에서는 15개 조사지점 가운데 7곳에서 끄리가 우점종(가장 지배적인 종)으로 나타났다. 이 포식종은 전체 채집 개체수의 42%를 차지했다.

경남 진주 남강 수계에서는 끄리의 비중이 68%에 이르렀다. 배스와 블루길을 합친 비중은 14%에 그쳤다. 훨씬 이전부터 들어온 악명높은 외국산 외래종을 끄리가 간단히 제압한 것이다.

여울 타넘는 등 기동력 뛰어나…식용 꺼려 더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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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침입자이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끄리는 기동력이 뛰어나 외국산보다도 생태계에 끼친 악영향이 크다.

외래어종인 배스와 블루길은 도입된 뒤 20~30년이 지난 뒤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났지만 끄리가 낙동강을 점령하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끄리의 확산 속도가 빠른 이유를 채 박사는 "배스와 블루길이 고인 물을 좋아해 인위적으로 옮기지 않으면 확산에 시간이 걸리는 반면 끄리는 여울을 잘 타넘는 등 혼자 힘으로도 쉽게 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낙동강의 수심이 얕고 바닥에 모래가 깔린 평탄한 지형도 끄리에게 천혜의 서식여건을 제공했다. 애초에 어류학자들은 이런 하천에 끄리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 할 정도였다.

일본인 학자 우치다는 1939년 끄리가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큰 강에 분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행동범위가 넓고 투망이나 자망 등에 쉽게 걸리는 이 물고기가 그 후 전혀 출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잘못 기록된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또 과거에도 낙동강에 끄리가 있었다면 최근 폭발적인 증가를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끄리가 어업 대상으로 인기가 없는 점도 확산을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어부들이 의도적으로 잡지 않을 뿐더러 잡히더라도 놓아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임진강 청평호 든 원서식지에서 5% 미만

낙동강 지류인 영강에서 채집한 끄리의 모습. 김수완(전북대 생물학 박사과정)씨 제공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끄리는 원래 서식지에서 숫자가 많지 않다. 최근의 조사를 보면, 끄리의 비중은 임진강에서 5.5%, 청평호 1.8%, 대청댐과 한강 하류에서 3% 미만이다.

끄리의 비중이 낙동강에서 유독 높은 이유는 뭘까. 채 박사는 "배스와 블루길이 고향인 미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강한 포식성을 보이는 것처럼 끄리에게 '식성의 생태적 해방'이 나타났고, 먹이가 되는 어종이 도망치는 습성을 미처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동작이 느린 납자루아과 어류나 흰수마자, 여울마자, 기름종개 등 강바닥 어류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위천 옆에서 20년째 매운탕 집을 하고 있는 박태금(53)씨는 "끄리가 들어온 10년 전쯤부터 피라미 등 물고기가 눈에 띄게 덜 잡힌다"고 말했다.

이완옥 국립수산과학원 중부내수면연구소 박사는 "끄리나 강준치처럼 특정 수역에만 살던 어종이 다른 하천으로 이동하면 그곳 고유종을 잡아먹거나 경쟁상대가 되기 때문에 하천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은 외국에서 온 외래종과 다를 바 없다"며 "원래 서식하지 않던 어종의 방류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끄리’는 어떤 물고기?

몸길이 20~40㎝까지 자라는 포식성 어종이다. 피라미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집이 크고, 특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도록 구부러진 큰 턱이 험상궂은 인상을 풍긴다. 강의 중·하류나 대형 호수에 살며 피라미를 즐겨 잡아먹는다. 한강, 금강, 임진강 등 서해로 흐르는 하천에 분포하나 강원도 삼척시 마읍천과 낙동강에 이식됐다. 헤엄을 잘치고 속도가 빨라 하천과 호수의 넓은 범위에 걸쳐 활동한다.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에도 비슷한 종이 산다.

군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수십만년 어류 진화과정 순식간 무너져

무분별한 어종 도입의 위험성

채병수 국립공원연구원 박사가 지난 20일 낙동강 지류인 위천에서 채집한 치어 가운데 끄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군위/조홍섭 기자
1996년 낙동강 수계의 안동댐과 합천댐에서 외래종을 조사하던 연구자들은 치리가 우점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물살이 느린 표면을 떼지어 헤엄치며 씨앗이나 수서곤충 등을 먹는 이 물고기는 서해와 남해로 흐르는 하천에서만 살 뿐 낙동강에는 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원래 서식지에서는 소수이다가 도입된 하천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끄리와 비슷했다.

채병수 박사는 “치리의 사례는 포식성이 강한 어류가 아니라도 도입된 하천에서 번성할 수 있으며, 무분별한 어종의 도입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어류 분포는 수만~수십만년 전 빙하기 때 고립된 종이 분화해 다른 종으로 진화하면서 이뤄졌다. 무분별한 도입과 방류는 이런 진화 과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끄리와 치리 말고도 낙동강 수계에 없던 도입 어종은 동자개, 대농갱이, 눈동자개, 중고기 등이 있다.

동해로 흐르는 하천에는 서·남해로 흐르는 하천과는 다른 독특한 어류상을 간직해 왔지만, 이곳에도 피라미, 참갈겨니, 퉁가리, 미유기, 꺽지, 흰줄납줄개, 각시붕어 등 전에 없던 어류들이 발견되고 있다.

반대로 동해 하천에만 살던 산천어는 한강 상류 등에 양식장 등의 형태로 도입되고 있으며, 또다른 양식 어종인 빙어는 전국의 저수지와 대형 댐에 풀려나갔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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