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왕시루봉 꼭대기 부근에 자리잡은 예배당 건물.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인 1962년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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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현장]
반달가슴곰 서식지며 생태 가치 높은 특별보호구
관리공단 퇴거 요청…개신교단 문화재 지정 추진
전남 구례군에 자리 잡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왕시루봉(해발 1243m) 일대는 아직 이른 봄이었다. 지난 2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내로 찾은 이곳엔 고산지대에 적응해 작달막해진 신갈나무와 소나무 숲 밑에 각시붓꽃, 얼레지, 노랑제비꽃 등이 한창이었다.
산 9부 능선에 접어들자 동남쪽에 군 막사처럼 생긴 낡은 콘센트 건물이 나타났다. 벽에 '1962 채플(예배당)'이라고 새긴 나무 팻말이 달려 있었다. 현관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지만 세면도구와 땔나무, 위성안테나 등에서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왕시루봉의 개신교 선교유적이 철거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부터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쪽에 선교사 수양관의 철거를 요청해 왔다. 공단은 이 시설을 "외인별장(수양관)"이라고 부른다. 서울대는 2004년 2월로 사용허가가 끝났다며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소장에게 "무단점유 국유재산에서 퇴거"할 것을 요청했다. 4대째 한국에서 선교사를 해온 인요한(본명 존 린튼)의 집안은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북한에서 결핵 퇴치 사업을 벌였다. 인 박사는 1984년부터 이 시설을 개인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개신교쪽은 이에 맞서 지난해 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회를 설립하는 한편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등 지리산의 선교유적지 복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배당 건물에서 50~100m 간격으로 나무판자 벽에 슬레이트나 양철판 지붕을 댄 작은 건물 12채가 흩어져 있었다. 건물의 양식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쇠락해 대부분 곧 쓰러질 듯 보였다. 건물 내부에는 벽난로, 탁자, 침대 등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방치돼 있었다. 예배당 뒤에는 올챙이들만 헤엄치고 있는 수영장과 풀이 무성하게 자란 테니스장 터가 남아 있다. 주변엔 콘크리트 탁자와 나무가 삭은 벤치가 놓여 있다.
선교사들의 수양관으로 쓰이던 건물 12동 가운데 하나다. 개신교 쪽에서는 수양관의 건축양식이 문화재 가치가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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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왕시루봉이 지리산국립공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데 있다. 이 일대는 반달가슴곰의 주 서식지이며 생태적 가치가 높아 특별보호구로 지정돼 있다. 1997년부터 일반인의 출입도 금지하고 있다. 김병채 지리산남부사무소 탐방시설팀장은 "일반인은 들어오기만 해도 과태료 50만원을 내야 하는 곳에 휴양시설을 복원할 수는 없다"며 "왕시루봉의 고유경관과 야생동·식물 보호를 위해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인 박사는 "전쟁 뒤 민둥산이던 왕시루봉에 와 잣나무와 전나무를 심어 녹화했고 서울대도 수양관이 산림보호에 기여했음을 인정해 왔다"며 수양관을 산림훼손 원인으로 보는 시각을 불쾌해 했다. 수양관 시설은 자연보존지구 안에 위치해 개축이 불가능하다. 관리인에 의한 땔감 사용, 화장실, 쓰레기 문제도 있다.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는 길은 문화재로 지정받는 것이다.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12채의 개신교 수양관 가운데 한 건물의 내부. 쓰지 않는 집기 등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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