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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8 11:05 수정 : 2008.05.02 15:46

아프리카코끼리 모녀. 도살이 벌어지면 어미와 새끼 또는 무리가 분열되면서 코끼리들이 큰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촌 지킴이] 남아공·케냐, 과잉으로 도살 논란
적정수 7천인데 1만7천까지…연간 6~8% 늘어
초원 ‘생산자’ 구실도 해 동물보호론자 반발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 다섯 가지를 일컫는 ‘빅 5’에는 사자, 코뿔소, 물소, 하마, 아프리카코끼리가 포함된다. 몇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사파리 공원에 갔을 때 코끼리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레인저는 “놔두면 공원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 몇 마리만 풀어 구색을 갖춘다”며 “아예 풀어놓지 않는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왜 아프리카코끼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을까.

아프리카코끼리는 ‘숲의 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다. 마른 풀에서 나뭇잎, 열매, 나무줄기와 껍질까지 하루 200㎏의 다양한 식물을 먹는 코끼리는 숲의 파괴자이다. 비싼 돈을 들여 몇 십 년 동안 가꿔놓은 바오바브나무나 아카시아를 코끼리가 뿌리째 뽑아놓는 것을 달가워할 농장 주인은 없을 것이다.

샘 찾는 귀신…코끼리가 만든 물구덩이 다른 동물들 생명줄

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끼리는 없어서는 안 되는 ‘파괴적 생산자’이기도 하다. 초원은 내버려 두면 햇볕을 좋아하는 나무가 차츰 늘면서 숲으로 바뀐다. 코끼리는 잡목림을 초지로 바꿔주는 사바나 생태계에서 귀중한 구실을 한다. 코끼리가 없으면 초원에 사는 누, 영양, 얼룩말의 거대한 무리도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바오바브나무에는 칼슘과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는데, 코끼리가 수십 년 동안 나무에 축적된 이 영양분들을 다시 초원으로 돌려보내 순환시키는 일도 한다.

사실 코끼리가 생태계에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는 아주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 코끼리가 사라지자 물도 없어져 다른 동물이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는 그 한 예이다. 코끼리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을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이들이 다녀 다져놓은 길은 샘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 이 통로는 빗물이 샘으로 흐르는 물길이기도 하다. 물장난을 즐기는 코끼리는 물구덩이에 드러누워 진흙목욕을 하면서 물구덩이를 점점 크게 만들고, 동시에 거대한 몸집으로 바닥의 빈틈을 메워 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만든다. 이 마르지 않는 물구덩이는 건기에 다른 동물들의 생명줄이 된다.

코끼리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커지자 원주민들은 코끼리가 기피하는 고춧가루를 줄에 발라 농작물을 보호하고 있다.
사람의 터전이 넓어지면서 코끼리와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장거리를 이동하던 이 동물들은 이제 보호구역 안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좁은 보호구역 안에서 코끼리의 파괴적 본성은 훨씬 도드라진다. 상업적 농장주뿐만 아니라 다른 희귀식물과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국립공원 관리자들에게도 코끼리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게다가 국립공원 주변 농민들은 코끼리가 농작물을 짓밟고 때론 인명까지 앗아가면서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영리한 코끼리는 울타리를 손쉽게 무너뜨리고 맛좋은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무너진 울타리로 빠져나간 물소는 가축에게 치명적 구제역을 옮겨놓는다.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 당국은 최근 늘어나는 코끼리를 도살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나라 크루거 국립공원의 코끼리 수는 국제적 환경단체의 압력으로 도살이 중지된 1995년 수준의 곱절인 약 1만7천 마리로 늘었다. 남한 면적의 5분의 1이 넘는 2만㎢ 면적의 이 국립공원에 적정수준은 7천 마리로 알려져 있다. 코끼리는 연간 6~8%의 증가율을 보여 10년마다 배로 늘 기세이다.

동료 죽으면 묻어주고 해마다 찾아와 참배하는 ‘사회성 동물’

1960년대 큰 가뭄으로 약 9000마리의 코끼리가 죽었다.
그렇지만 동물보호론자들은 코끼리 도살 가능성에 벌써부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동물복지연맹(IFAW)은 “도살을 재개한다면 남아공의 야생동물에 대한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나라의 주요한 외화수입원인 야생동물 관광을 보이콧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들은 코끼리가 고래나 영장류에 못지않은 지능을 지녔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성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동료가 죽으면 나뭇가지와 잎으로 ‘묻어 주고’ 애도하며, 몇 년씩 그곳에 찾아와 ‘참배’하는 행동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 간 또는 집단내 유대가 강해, 도살이 이산가족과 정신적 외상을 낳는다는 사실도 밝혀져 있다.

이미 10여 년 전 국제적 압력을 당해본 남아공 당국도 신중하다. 도살은 이주, 피임 등 다른 방법을 다 쓴 뒤의 마지막 수단이며, 심리적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을 채택하는 등 윤리적 배려를 하기로 했다.

저명한 고인류학자이자 코끼리 보전론자인 케냐의 리처드 리키 박사는 최근 <비비시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도살은 역겹지만 일리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보호구역 안팎의 코끼리들이 점점 더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며 “코끼리의 수를 줄여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론자들은 “코끼리 눈에 들어있는 티끌보다 우리 눈의 들보를 봐야 한다” “도살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등 반발했지만, 리키 박사는 아마도 과거의 실패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게 가장 잘 보전되는 게 아니라는 사례로

아프리카코끼리의 분포 지역(녹색부분).
케냐의 차보국립공원은 1960년대에 세계 최대 아프리카코끼리 보호구역 가운데 하나였다. 무려 5만 마리의 코끼리가 있었지만 1960년대 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1980년대엔 5천 마리로 격감해 세계적인 코끼리 보전운동을 촉발시켰다. 그 원인으로 상아와 고기를 노린 밀렵이 흔히 꼽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가뭄이 닥치자 일부 생물학자들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코끼리 3천 마리를 도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상아와 코끼리 고기의 새 시장이 생길 만큼 많은 숫자여서 그 때까지의 밀렵방지 노력과 충돌한데다, 자연에 내맡기면 가장 합리적으로 조절해 줄 것이라는 다른 생물학자들의 견해가 우위를 점했다.

굶주린 코끼리들은 2만㎢의 거대한 국립공원을 “달 표면 비슷하게” 황폐화시켰고 무려 9천 마리가 아사했다. 이 사례는 생태학 교과서에 자연을 그대로 내버려둔다고 가장 잘 보전되는 게 아니라는 사례로 실려 있다. 물론 어디까지 사람이 개입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올지는 여전한 숙제이다.

케냐 정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도살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집단이주는 1마리에 8천 달러나 들고 게다가 종종 이주시킨 코끼리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부작용이 있다. 불임법도 그럴 듯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 사는 코끼리에게 인구유지는 몰라도 줄이는 효과는 거의 없다. 케냐 정부는 현재 도살 시행 여부를 공론에 붙여놓고 5월1일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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