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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7 19:54 수정 : 2008.05.09 16:12

회사 동료들은 정말 악당일까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Q 회사 동료들은 정말 악당일까요?

이제 막 5개월차에 들어서는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돈을 번다는 일의 치사하고 더러움에 대해서는 모두들 공감하시겠죠. 그런데 저는 이런 이해 불가능한 온갖 것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듭니다. 물론 직장생활에 대한 핑크빛 로망을 가지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아닙니다. 절대 자랑이 아니라 백수 백만시대에 남들 부러워하는 외국계 금융회사에 입사해서 높은 연봉 받고 일하지만 정말 퇴근할 때마다 청계천에 코박고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의 극치입니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고 더 노력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구성원 사이 비연대감, 무한 이기주의 등 제가 지금까지 관계 맺었던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 중 최악의 상황만 모아놓은 이곳이 살 떨리게 무섭습니다. 인간적인 배려나 이해심, 존중은 완전히 배제한 채 함께 일한답시고 멀끔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사이코 같기도 하고, 저 역시도 그런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어설픈 양심적 생각이 더욱 미치게 만듭니다. 당사자의 의도가 아님에도 부득이하게 생기는 업무적 갈등과 인간 자체를 모욕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일을 지켜보고 때로는 저도 휘말리면서 긍정적인 제 자아가 점점 무너져감을 느끼는 엄청난 상실감과 모멸감은 높은 연봉으로도 위로받지 못합니다.

직장은 놀러나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애정으로 뭉친 집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도의 상처만 주고받으며 하는 직장생활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겁니까? 일만 하고 인간적인 정과 관계는 기대도 시도도 말자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까? 제가 아직 대학생 마인드로 사회생활을 하는 겁니까?

A ‘대학생 마인드’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마인드를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인 건 분명한 거 같네요. 퇴근 때마다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게 상담 질문 쓰다가 흥분해서 과장한 거라면 몰라도 진짜 그런 상태라면 우울증 증세로 볼 수도 있으니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길 바랍니다. (근데 정신과 상담은 보험이 안 돼서 엄청나게 비싸요. 연봉 높고 미혼이고 상황이 심각하다면 질러 볼 만도 하지만 말입니다.)

질문 내용으로만 미뤄 본다면 평범한 대학생활을 마치고 그리 오래 있지 않아서 취직이 된 거 같으니 20대겠네요. ‘지금껏 관계를 맺어 온 인간관계 중 최악의 상황’이라 했는데, 얼마나 여러 종류의 관계를 맺어 왔을까요? 기껏해야 가족과 학교 혹은 동아리 정도? 학생과 ‘직딩’(직장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을 ….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질 않죠. 학교는 돈을(그것도 대부분 부모님 돈을) 쓰는 곳이고 직장은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타내야 하는 곳이니까요. 최악의 상황만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모여 있는 구성원들의 목적이 학교 때와는 많이 다르니까요.

백수 백만시대에 높은 연봉 받으며 빵빵한 회사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일이 맘에 안 들고 사람 맘에 안 든다고 툴툴거리는 게 아니라는 거 알아요. 마음이 굉장히 여린 분 같아요. 좋게 말하면 많이 순수한 거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순진무구한 거죠.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순수하다는 건 자랑이 될 수 있지만 과하게 순진해서 직장생활이 부대낄 정도라면 문제의 원인이 꼭 ‘바깥’에만 있지는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만 백수 청년들이 취업을 원하는 이유가 구성원 사이 연대감도 좋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오순도순 지내면서 연봉도 훌륭한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서일까요? 아니 그런 회사가 있기나 할까요? 놀러오는 곳이 아니니 인간적 애정으로 뭉친 집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안다고 말씀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많이 동일시했던 거 같아요. ‘상처’ 받았다고 느꼈다면 ‘잘못된 기대’를 했기 때문이거든요.

질문에 등장하는 회사 동료들은 정말이지 악당도 그런 악당들이 없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저는 왜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로 느껴지지가 않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이 당신을 따돌리고자 단체로 작정을 하고 그렇게 비인간적으로(당신이 느꼈다는!)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인이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씩이나 나온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여전히 열다섯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살아오면서 사람한테 해코지 당하신 일도 없고, 그야말로 ‘곱게’ 자랐다면 충분히 별일 아닌 일로 절망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할 거예요.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하지만 맘에 상처가 좀 큰 것 같아 다 신경 끄고 돈만 벌라고 말씀드릴 순 없네요. 연봉 같은 건 아예 없지만 공동체의 선을 위해 모여 일하는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 정의를 실현해 보는 건 어때요? 그런 곳은 당신이 원하는 인간적 유대관계나 배려·이해심·존중 그런 거 느껴가며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살아가는 목적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아님, 아직 젊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당신 가슴이 시키는 일, 영혼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당신의 꿈은 뭐였나요? 높은 연봉으로도 위로가 안 된다면 대안을 찾아야죠. 참! 그 대신 지금 당신의 자리는 연대감이고 뭐고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절실히 찾는 다른 청춘을 생각해 바통을 넘겨주고 가는 건 잊지 마세요.

오지혜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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