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4.23 19:28 수정 : 2008.04.27 14:55

제 자신이 너무 찌질한 것 같아 돌아버리겠어요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Q 제 자신이 너무 찌질한 것 같아 돌아버리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를 이제 2년째 다니는 고딩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 저의 고민은, 제가 너무 돌아버릴 정도로 지질하다(이하 찌질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왕따라는 것도 아니거든요. 제 주위에는 멀쩡한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 또한 저를 꽤 좋아하거든요. 그렇다면 뭐가 고민이냐? 제가 너무 소심해서 스스로 찌질하게 굴어요. 친구들 보면 어디 시내 가서 옷 같은 거 사 입으면서 멋도 내는데 저는 한번 멋이라도 내볼까 하고 생각하면 혹시 누군가가 저한테 ‘열라 어울리지도 않게 웬 간지 챙겨?’ 하면서 핀잔이라도 줄까봐 그냥 엄마가 어떨 때(아주 가끔) 사오시는 옷이나 입고 다녀요.

길 가다가도 여자들하고 눈을 마주치기도 정말 힘들어요. 여자애들이 절 보면서 속으로 ‘어유 … 후져라’ 할까봐 눈도 못 마주치겠어요. 근데 그렇다고 제가 토 나오게 생긴 것도 아니거든요. 여자애들한테 고백도 몇 번 받아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정신병자가 되고 있고, 공부라도 잘하면 다행인데, 뭐 공부도 지진아반에 안 들어갈 정도로나 하고 있으니….

제 스스로 생각해 봐도 너무 찌질해요. 날마다 저의 이 찌질한 모습을 보시면서 잔소리하시는 부모님의 말도 이제는 ‘토’ 나올 정도고요, 차라리 날라리처럼 아예 대놓고 까지든지 아니면 범생이처럼 공부를 끝장나게 잘하든지, 이도저도 아니고, 어중간한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 아니면 그냥 제가 찌질하게 사는 게 창피하지 않게 큰 영혼(?)을 가지고 싶어요. 아무튼 고민이 너무 많아서 두서가 없네요. 제발 도와주세요.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A 일단 당신의 글은 토 나올 정도로 재미없지 않았어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당신은 심각한데 웃어서 미안해요. 비웃는 거 아니에요. 만나보진 못했지만 글을 통해 만난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웃었어요. 하!하!하! 실제 당신 모습 또한 토 나오게 생기긴커녕 아주 귀여운 친구일 것 같아요. 보통 남자들은 고딩 시절 한번도 받아보기 힘든 여학생으로부터의 고백을 ‘몇 번’이나 받아보셨다니, 와우!! 자랑 작렬이신데요? 공부는 잘하는데 여자한테 인기 없는 인생보다 공부는 좀 못해도 여자한테 인기 있는 인생이 훨씬 멋진 거라고 믿는 저로서는 일단 축하를 드리고 싶네요.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한 명도 빠짐없이 ‘자뻑’을 에너지로 삼아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지 않을 것 같나요? 목사님이나 스님들은 안 그러실 것 같다고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 양반들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일 뿐 신이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는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답니다. 천 번을 읽었을 성경과 불경을 매일 읽고 또 읽고 하는 건 그 자뻑이 생각대로 잘 다스려지지가 않아서예요. 물론 그건 교만 혹은 자만과는 다른 것이에요. 제가 말씀드린 자뻑이란 바로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죠.

저는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사랑하는 건 사람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먼저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큰 영혼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을 지니셨다면 이미 당신은 반은 가지신 거예요.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시기만 하면 되는 거죠. 당신을 제대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도 아니고 앞으로 만나게 될 여친도 베스트 프렌드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랍니다. 이 모든 사람들과는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지만 당신 자신만큼은 당신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테니까요. 그러니 이제부터 여리디여린 당신의 영혼과 친해 보도록 노력해보세요.

노력을 대신해 드릴 순 없지만 다른 친구들의 상황은 어떤지 살짝 귀띔해 드릴 순 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는 누구인가요?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부모님도 부자이고 운동도 잘하고 여자도 잘 꼬시는 그야말로 울트라나이스캡짱인 친구를 생각해 보세요. 물론 이 조건 중 반만 갖춰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겠죠. 그러나 그 친구의 일기장엔 온통 고민투성이일 거예요. 믿을 수 없으리 만큼 당신의 고민과 거의 흡사하게 말이죠. 항상 일등만 하는 친구는 당신처럼 일등 자리를 고수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는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고(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또 언제나 학교짱 자리를 차지하는 날라리는 자신의 상처받은 삶을 저주하며 당신처럼 평범한 친구들을 부러워한답니다. 네. 당신이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요.

다른 사람 인생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참 후져진다는 거 명심하세요.(토 나올 정도로 말예요.) 지구 위에 당신 같은 사람은 당신 하나밖에 없어요. 태어난 이유가,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멋진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예요. 그 이유까지 제가 찾아 드릴 순 없어요. 여행을 떠나 보세요. ‘길’이 그 이유를 가르쳐 줄 거예요. 책을 많이 보세요. 책도 ‘길’이 돼 드릴 거예요. 일기를 써 보세요.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스스로 답을 줄 거예요. 틀림없어요.

참! 길 가다 모르는 이성이랑 눈이 마주칠 때 자신 있게 눈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어요. 그거 약간 맛이 간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아셨죠? 그러니까 관심의 대상을 ‘남’이 아닌 ‘나’로 바꾸세요.

오지혜 영화배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오지혜의 오여사 상담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