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08 19:55
수정 : 2008.12.08 21:55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이준구칼럼
유달리 긴 것처럼 느껴진 한 해였다. 그렇게 느낀 것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초 인수위 시절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한 달이 멀다 하고 터져 나왔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뿐만 아니라 갖가지 내우에 외환까지 겹쳐 어두움이 가실 때 없는 한 해였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더 오래 이 어두운 골짜기를 헤매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곧 빠져나갈 희망이 보이면 그리 두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총체적 난국은 언제나 되어야 그 수습의 가닥이 잡힐지 그저 막막하기만 한 실정이다. 경제만 어려운 게 아니다. 온 사회가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 정부의 가장 큰 불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허물을 모두 덮어버리는 편리한 핑곗거리도 될 수 있다. 그들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어 보라. 아무리 능력 있는 정부라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말이다. 큰소리로 그렇게 외치고 싶겠지만 차마 체면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으리라.
이게 맞는 말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이전에도 숱한 실정으로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줏대 없는 오락가락 정책 때문에 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금융위기의 불길이 우리 경제에 옮아붙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는 총체적 경제위기 진화 과정의 마지막 매듭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는데도 이에 대한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시스템의 위기가 문제의 핵심인데, 고작 토목공사로 경기부양을 할 생각이나 하고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에 틈만 나면 대운하의 망령이 고개를 든다. 유가가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공직자 승용차 홀짝제로 경제를 살리자고 떠드는 것을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언제나 그렇고 지금처럼 어려울 때는 더욱 그렇지만, 국민의 가장 간절한 바람은 민생의 안정이다. 지난 대선에서 왜 국민이 그런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을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길 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민생의 안정에 온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쓸모없는 일에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국민의 광범한 이익을 대변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 이념집단의 대표 노릇을 하는 실정이다. 당장의 끼니가 급한 서민에게 ‘역사 바로잡기’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하다. 좌파의 잔재를 쓸어낸다는 것도 극소수 이념가들의 관심사에 불과할 뿐이다.
양극화에 맞서 싸워야 할 정부가 불난 데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종부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억울한 납세자를 구제해 준다는 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런 핑계로 서민들 주머니 털어 부자들 주머니에 넣어주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놓고 부자를 위하는 정책 탓에 사회통합의 기반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는 좀더 밝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나날이 쪼그라들어 가는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 있는 기적을 바라고 싶다.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우리에게 참다운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줄 겸손하고 현명한 지도자를 보고 싶기도 하다. 길고 어두운 한 해를 보내면서 간절히 빌어보는 소망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