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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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칼럼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가 보다. ‘나를 배우라’고 으스대던 미국이 서브프라임 미사일 한 방에 맥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투자은행은 미국호의 침몰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시장의 자율을 부르짖던 미국 정부가 다급해지자 서슴없이 7천억달러 돈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동안 애오라지 미국 모델을 본뜨려고 노력해온 우리로서도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할까? 시장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진단이다.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시장의 힘찬 고동은 다시 전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만능은 아니라는 점 하나만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시장과 정부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란 문제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나라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 모델이 마차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양 그저 베껴 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미국 모델이 가진 한계가 명백해진 이상 그것을 베껴 오는 전략에도 근본적 수정이 필요해졌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잘 지적했듯, 금융위기를 통해 시장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잘나갈 때는 정부 간섭을 뿌리치다가 다급해지면 정부의 도움을 구걸하는 위선 말이다. 시장의 탐욕은 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오고,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납세자의 몫이 된다. 정부가 시장의 고삐를 놓쳤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한 줄기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시장근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시장을 갖다 앉히면 그게 바로 개혁이라는 맹목적 논리는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시장의 자율 못지않게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통제도 중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규제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데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와중에서 필요한 규제까지 떠내려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몇몇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음을 보지 않았는가? 이 점에서 볼 때 금산분리 완화 방침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의 확산을 더 빠르게, 더 광범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우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구에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들여 쌓았던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다. 이것만 막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부동산경기 부양책쯤으로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런저런 부양책을 내놓아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패닉의 홍수 앞에 부양책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둑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패닉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있다. 이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지금 우리 경제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응 능력을 시험 받고 있다. 이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무능력과 소통 부족으로 우리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을 따름이다. 이 리더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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