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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8 19:34 수정 : 2008.05.28 19:34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석 달도 안 돼 20%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국민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닌가 보다. 대통령 자신도 당혹스럽겠지만, 더욱 딱한 것은 큰 기대를 걸고 그를 찍어준 국민이다. 요즈음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희망은커녕 짜증이 가득 찬 표정이다.

사실 지지율 급락은 인수위 시절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갖가지 설익은 정책으로 국민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부터 무언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이에 이은 인사 파문과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민심의 이반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나갔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총선이 치러졌다면 여당은 과연 몇 석이나 차지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지지율 급락의 원인들을 구구하게 나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데서 온 과도한 자신감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웬만한 허물과 실책은 적당히 눈감아 줄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가 생겨났다. 또한 자기가 추진하는 모든 일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착각이 만들어졌다.

대중스타의 열렬한 팬은 그의 모든 점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웬만한 잘못을 저질러도 오히려 그것을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을 발휘한다. 그러나 아무리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해도 대통령은 한낱 정치인일 뿐 대중스타가 아니다. 정치인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기를 찍어준 사람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지난 대선은 오직 경제 살리기 공약 하나로 결판이 난 게임이었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의 압승을 그의 모든 측면, 그가 내건 모든 공약에 대한 조건 없는 지지라고 보기 어렵다. 그 반대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이란 조건부적 지지가 대선의 승패를 좌우했다고 보는 게 맞다. 조건부적 지지를 맹목적 지지로 오인한 데서 수많은 실책이 빚어졌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기세 좋게 나섰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물러선 사례가 벌써 한둘이 아니다. 철저한 검증작업과 여론수렴 없이 설익은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정책화하려 든 탓이었다. 그런 국정운영 방식까지 너그럽게 보아줄 맹목적 지지자는 별로 없다. 민심의 동향에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가 20%대 지지율이라는 굴욕을 불렀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 바닥을 친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앞으로 지지율을 한층 더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들이 잠복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동안 새 정부가 교육분야에서 시도한 섣부른 실험들은 머잖은 장래에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부작용이 가시화하면서 지지율은 또다시 하향곡선을 그릴 수 있다.

여론에 순종하겠다는 겸손한 태도로 돌아가지 않는 한 지지율 상승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겸손함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운하 문제가 그 단적인 예지만, 여론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고집이 아직도 여전하다. 도대체 대운하 반대 여론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높아져야 그 허황한 꿈을 접을까?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위해서라도 분발해 지지율을 높여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임기 초에 호된 시련을 겪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른다.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고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이 20%대 지지율에 담긴 국민의 바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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