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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9 21:04 수정 : 2008.05.14 21:59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새 정부가 미처 출범하기도 전에 난데없는 영어 몰입교육 파동으로 온 사회가 큰 홍역을 치렀다. 이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이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문제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수업’이란 또다른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영어의 중요성이 날로 커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가 앞장서 영어교육 제대로 시켜 보겠다는데 공연한 시비를 걸 사람도 없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영어교육의 과도한 강조는 교육개혁의 우선순위를 흩뜨리고 교육 전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영어교육과 관련한 혼란의 와중에서 훨씬 더 시급한 교육의 현안 과제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지금 우리 교육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어교육보다 훨씬 더 시급한 과제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쌓여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영어교육 강화가 마치 지상과제라도 되는 양 떠드는 모습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새 정부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공교육 충실화를 위한 획기적 방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어낼 유일한 희망은 바로 공교육 충실화다. 그런데도 이를 위한 그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해 우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대학입시 자율화하고 자사고 많이 만들면 공교육이 저절로 충실해지리라고 믿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공교육의 충실화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과연 어떤 사람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먼저 찾아 놓아야 한다.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쓸모없는 지식의 단순암기, 반복학습에 불과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것이 공교육 충실화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런 근본적 성찰 없이 영어교육 같은 지엽말단에 목을 거는 모습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영어교육 강화는 공교육 충실화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그 본질이 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영어교육을 강조하면 할수록 공교육 충실화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차원에서는 서민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 또한 엄청나게 중요한 과제다. 무거운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서민들의 허리가 휘는 부조리는 어떻게든 시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 문제를 두고 깊이 고민한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학입시 자율화, 자사고 대량 설립, 영어교육 강화 등 추진하는 정책들이 모두 사교육 의존도를 크게 높일 것들뿐이다.

이런 정책들이 본격화되면서 온 사회가 엄청난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게 될 것이 뻔하다. 머지않아 사교육은 부유층의 사치품이 아니라 전 국민의 필수품으로 바뀌어 버릴 것이다.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가정마저 자식 사교육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엇을 믿고 사교육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영어교육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을 버리고 교육 전반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영어교육에 쏟아부을 천문학적 규모의 자원을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런저런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는데 한가하게 영어교육 타령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루빨리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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