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노총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2년여 전부터 ‘일터에서 당신의 권리’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 캠페인은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을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사진은 2005년 멜번에서 열린 노총 주최의 대중집회 모습. 사진제공 오스트레일리아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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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패밀리=일하는 가정
진화하는 세계의 진보/ 4. 오스트레일리아 노총 “후퇴하는 노사관계법, 가족의 미래와 연결”교육·의료 타격 가능성도 부각…노동당 압승으로 ‘워킹 패밀리’(working familyㆍ일하는 가정) 지극히 평범하기만 한 두 단어가 지난해 11월24일 오스트레일리아 총선에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일간 <오스트레일리안>은 “11년만에 이뤄진 정권교체의 ‘숨은 주역’”이라고 극찬했다. ‘일하는 가정’의 행복한 미래를 앞세운 노동당의 캠페인이 선거에서 압승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노동당 안팎에선 그 공을 오스트레일리아노총(ACTU)에 돌린다. 이미 2년여 전부터 ‘워킹 패밀리’를 부각시킨 그들의 캠페인이 사회 전역에서 큰 반향을 몰고왔기 때문이다. ■ ‘워킹클래스’ 대신, ‘워킹패밀리’로 지난 7월1일 찾아간 시드니 중심부의 뉴사우스웨일즈 노조 사무실은 지난해 선거 캠페인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한 면을 가득 채운 벽화 속에는 임신부와 어린 아이들까지 참여했던 캠페인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재연돼 있었다. 마크 레논 뉴사우스웨일즈 노조 사무부총장은 “일생을 자유당에만 투표했던 50대 여성이 노동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했을 때, 실로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이끈 자유ㆍ국민 연립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87석의 하원 의석을 갖고 있던 연립당은 65석을 갖는데 그친 반면, 59석만 갖고 있던 노동당은 83석을 획득했다. 전국적으로 4.7%의 유권자가 자유당에서 노동당으로 ‘표심’을 바꿨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노총이 전략적 타깃지역으로 선정한 24곳의 지역구에선 7.1%가 마음을 바꿨다. 노조 활동가들의 캠페인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조의 캠페인은 존 하워드 전 총리가 2005년 도입한 새 노사관계법(워크초이스법)에서 촉발됐다. 이 법안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도 없이 사장과 직원이 1대1로 협약을 맺도록 해,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늘렸다. 새 법안에 따라, 해고되거나 임금이 줄어드는 사례가 속출했고, 전통적으로 유지돼온 단체협약의 기반마저 휘청거릴 위기에 봉착했다. 법과 제도의 후퇴를 막기 위해선, 2년 뒤 있을 총선에서 정부를 심판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작업장’ 안의 노조원에 국한된 ‘관성적’ 캠페인으로는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조성할 수 없었다. 캠페인의 핵심 화두였던 ‘워킹 패밀리’는 이런 ‘절박함’에서 나왔다. 오스트레일리아노총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민심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40년간 미국 민주당의 선거 캠페인 전략을 이끈 빅 핑거헛을 컨설턴트로 영입해 머리를 맞댄 것도, 노조로선 보기드문 실험이었다. 뜻밖에도 여론조사에선 오스트레일리아 유권자의 75% 이상이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워킹 피플’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인 이엠시(EMC)의 토니 더글라스 이사는 “지난 선거에서 연봉 6만달러(약 5400만원) 이하의 30살~55살 직장인들은 가장 중요한 타깃층이었다”며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비참한 수준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무너지기 쉬운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가족’으로 타깃층을 확장시킨 캠페인은 그대로 적중했다. 새 노사관계법은 물론이고, 보수정부 집권기간 동안 교육 및 의료제도의 공공성이 크게 후퇴하면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은퇴한 할아버지는 손자의 미래를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보게 됐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부모들은 자녀들의 삶이 어떤 곤란에 처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대에서 만난 피터 셸던 교수(경영학)는 “‘워킹 클래스’(노동계급)가 아닌, ‘워킹 패밀리’에 맞춘 선거 전략이 민심을 끌어 당겼다”고 분석했다. ■ ‘민심’ 파고든 전방위 캠페인 발상의 전환은, 캠페인의 방식도 바꿔놨다. 줄리아 길라드 오스트레일리아 부총리는 지난해 선거 캠페인이 한창일 때, “하워드 총리가 재선을 위해 전화녹음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평범한’ 선거운동을 벌일 때, 노총은 유권자들의 근심거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선거의 이슈로 끌어올리는 적극적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자유당이 우세했던 곳들로 선정한 전략지역구에서 노총은 조합원과 그 가족들에 밀착한 전방위 캠페인을 벌였다. 총 5223명의 지역 활동가들이 ‘워킹 패밀리’를 타깃층으로 한 캠페인에 투입됐고, 9만3047가구를 방문한 대대적 ‘도어 노킹’(Door Knocking)이 이루어졌다. 레논 부총장은 “‘도어 노킹’이 9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인터넷 블로그와 전자우편,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유선전화 등 당대에 통용되는 모든 미디어 수단이 총동원됐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피크닉 장소나 거리의 공연장, 각종 종교단체들의 모임과 원주민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오렌지색’(캠페인의 상징색깔)이 가득찼다. 이런 노력으로 애초 상위 10위권 내의 정치적 아젠다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노사관계 이슈는 지난해 선거에선 의료보장에 이어 두번째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수 있었다. 케빈 러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지난해 선거 직후 노동당의 압승이 확정되자, “가장 위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노조운동의 성과”라고 공을 돌렸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뉴질랜드 노조는 이미 벤치마킹을 시작했다. 시드니/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시드니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즈 노조 건물 안쪽에 그려져 있는 벽화. 노조는 ‘워킹 패밀리’를 부각시킨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시드니/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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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법 반대 38%→64% ‘30초 텔레비전 광고로 승부한다’ 지난해 존 하워드 전 총리의 새 노사관계법에 맞선 ‘워킹 패밀리’ 캠페인은 30초짜리 텔레비전 광고에서 절정을 이뤘다. 9만여 가구를 직접 찾아다닌 캠페인 활동이 ‘지상전’이라면, 텔레비전 광고는 ‘고공전’에 가깝다. 광고에선 끊임없이 ‘자유당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워킹 패밀리의 미래가 얼마나 암울할지’를 보여줬다. 새 노사관계법으로 임금이 줄어 삶이 팍팍해진 사람들, 아이를 돌볼 시간을 얻지 못해 해고된 여성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은 광고의 주인공들이었다. 광고 제작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노총(ACTU)은 조합원들로부터 1인당 연간 5.5달러(약 4860원)의 특별기금을 3년간 거뒀다. 노총 차원의 기금모금 외에, 산하 조직별로 자발적 기금 마련도 이어졌다. 통신전기배관공 노조(CEPU)의 경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주당 특별기금을 1달러(약 884원)씩 걷기도 했다. 마크 레논 뉴사우스웨일즈 노조 사무부총장은 “3천만달러(약 265억원)에 가까운 돈이 캠페인에 투입됐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광고비로 쓰였다”고 말했다. 연출되지 않은 광고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총은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조합원과 그의 가족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수 있도록 동의를 구하고 설득했다.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광고들은 광고상을 받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노총은 광고업계가 모시는 ‘브이아이피(VIP) 광고주’가 됐다. 존 하워드 정부도 파급효과가 큰 광고를 제작하는 데 인색했던 건 아니었다. 노조 관계자들은 당시 정부가 ‘새 노사관계법에도 고용안정은 지켜질 것’이라며 하루에 100만 달러(약 8억8천만원)씩, 모두 2억달러(약 1767억원)를 광고비로 썼다고 전했다. 사용자단체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노조를 위협적인 자객으로 묘사하는 등 공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결과는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의 ‘브랜드’를 크게 손상시키는 걸로 끝났다. 피터 셸던 뉴사우스웨일즈대 교수(경영학)는 “다양한 선거 캠페인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노총과 노동당의 텔레비전 광고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는 이런 사실을 입증했다. 지난해 노총이 제작한 첫 두 편의 텔레비전 광고가 나가기 전만해도 새 노사관계법에 반대하는 비율은 38%에 그쳤다. 그러나, 광고가 나간 뒤 조사에선 64%가 반대했다. 시드니/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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