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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지난 4월19~20일 행정수도인 캔버라의 국회의사당에서 1천명을 초청해 ‘2020 서밋’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2020년 국가의 미래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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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밋’에서 1천명 ‘국가 비전’ 난상토론
각종 정책 정부에 건의안…‘새 민주주의 실험’
진화하는 세계의 진보/ 4. 오스트레일리아
지난 7월3일 회기가 끝나 관광객들로 북적인 캔버라의 국회의사당. 잇따라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의사당 구석구석에선, 오랜 의회정치의 역사가 와 닿는 듯 ‘엄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존 포크너 정무장관은 “오스트레일리아 국회의사당의 문턱은 그 어느 곳보다 낮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19~20일 ‘2020 서밋’이 열리던 날, 의사당을 가득 메웠던 1천명의 시민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전했다. 이날 국회의사당의 주인은 시민들이었다. 기업인과 대학교수, 노조간부, 운동선수, 영화배우, 원주민 등 다양한 부문의 대표자들은 의사당 카펫 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하면서,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를 주제로 ‘난상토론’(브레인스토밍)을 벌였다. 생후 6일밖에 지나지 않은 아들을 품에 안고 의사당에 들어서는 영화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2020 서밋’은 오스트레일리아판 ‘국민과의 대화’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부를 겨냥한 일방통행식 질의응답보다는, 일반 시민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정부가 국가의 ‘장기적 비전’을 국민과 함께 수립한다는 취지가 담긴,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천명의 참가자들은, 선발권을 부여받은 운영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뒤 8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이들은 경제, 교육, 예술, 건강, 가족 등 10개 분과위원회로 소속돼 토론을 벌인 뒤, 정부에 최종 건의안을 전달했다. 건의안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시스템을 2010년까지 공화국 체제로 바꾸자는 거대 담론부터, 비만의 주범인 패스트푸드에 ‘지방세’를 적용하자는 등 생활 속 정책들도 담겼다. 정부는 앞서 열린 15~24살의 청년층이 참가한 ‘유스(youth) 서밋’의 제안을 포함해, 연말까지 공식적인 답변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2020 서밋’에는 더는 정부가 정책을 ‘독점’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포크너 장관은 “정권을 잡았다고 정부가 늘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선을 2008년이 아닌, 2020년에 맞춘 것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동안 정부 정책이 선거주기(3년)로만 맞춰진 탓에 장기 과제에 소홀했다는 반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이끈 자유당의 패배는 민심을 거스른 독단적 정책 집행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케빈 러드 총리는 선거 캠페인에서 “지난 11년 동안 하워드 총리가 이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워킹 패밀리’는 완전히 잊혀진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해,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책이 오스트레일리아의 공공 의료보장 제도 등을 점차 무너뜨리자, 서민층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공정무역·투자 네트워크’(AFTINET)의 퍼트리샤 래널드 박사는 “하워드 정부가 사립병원과 민영보험을 활성화시킨 탓에, 여전히 공립병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서민들은 최대 12시간까지 진료를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정부는 2008~2009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변화’를 예고했다. 웨인 스완 재무장관은 당시 “워킹 패밀리의 생활비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550억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워킹 패밀리에 대한 세금 감면에 467억원이 책정됐고, 자녀들의 교육비에 대한 세금 환급에 44억원이 책정됐다. 반면, 연봉 15만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에 대해선 출산 수당 등의 혜택에서 제외시켰고, 민영의료보험 가입자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도 없앴다. 현지 언론들은 스완 장관에게 ‘로빈후드’란 별명을 붙여줬다. 캔버라의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에서 일하는 랑카 비데노빅(40)은 “수입의 절반 이상이 주택비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버겁다”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들을 새 정부가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를 지낸 맥 윌리엄스 호주·한국재단 이사는 “하워드 전 총리가 경제지표에 연연하는 현실안주형 정책을 구사했다면, 러드 총리는 국민과 함께 ‘장기 비전’을 제시하려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평했다. 한국의 정치사정에도 밝은 그는 “집권 뒤 반년여가 지나서도 새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것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캔버라/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의무선거제’로 청년·여성 등 투표소 이끌어
선거인단 명부 등록 안하면 벌금
“투표를 자율적 선택에 맡기면, 주로 청년층과 여성, 저소득층 등이 선거에서 배제된다.”
이언 매캘리스터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정치학)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난 7월3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캘리스터 교수는 “이들을 모두 투표장으로 이끈다면, 진보색채의 정당(노동당)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층과 여성은 존 하워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바꾼 새 노사관계법으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보게 되는 계층으로 꼽혔다. 매캘리스터는 과거 20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유권자들의 표심을 분석해 온 정치학자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24년에 의무선거제도를 도입했다. 퀸즐랜드주에서 1915년 처음 도입됐지만, 연방 차원으로 확대된 것은 이 무렵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민들은 18살이 되면, 반드시 연방 선거인단 명부에 등록을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고 50달러(약 4만5000원)를 내야 한다. 이런 제도로 말미암아, 투표율은 늘 90%를 웃돈다. 지난 11월 총선에서도 투표율은 94.76%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62.9%에 그쳤던 것에 견주면 엄청난 수치다.
지난해 선거인단 명부를 확정하는 기간을 단축한 자유·국민당 연립정부의 시도는 의무선거제도가 보수 성향의 정당에 불리하다는 것을 그대로 자인한 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노총(ACTU)은 당시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선거일이 공표되는 날 바로 선거인 명부를 확정해, 젊은 층을 투표에서 배제하려 했다”고 밝혔다.
캔버라/황보연 기자
“아동에 공평한 교육기회 등 지역구 주민 변화 갈망 읽어”
지역구서 하워드 전 총리 격파 ‘파란’ 매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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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신 매큐 연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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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시드니의 그래스빌에서 만난 맥신 매큐 연방(사진) 하원의원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의 지역구(베널롱) 사무실은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구석구석에선 ‘워킹 패밀리’(Working Family)라는 문구가 담긴 홍보물과 정책설명서 등이 눈길을 끌었다. <에이비시>(ABC) 텔레비전 앵커 출신인 매큐 의원은 지난해 11월 하원의원 선거에서 존 하워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를 누르고 당선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현직 총리가 낙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자유당의 ‘무풍지대’였던 곳에서 그가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노동당 후보에게 불리한 지역구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해 케빈 러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자신의 선거 캠프에 참여하라고 했을 때, 나는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베널롱 지역구 출마를 결심했다.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지역구 주민들이 갈망하는 ‘변화’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갈망은 미국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선 후보에게 보내고 있는 지지와도 비슷하다.”
-당선을 예상했나?
“주변에선 존 하워드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선거 기간 내내 보라색(맥신 매큐 후보 진영의 색깔)이 거리에 넘쳤다. 하워드 전 총리는 지난 선거에서 수백만 달러를 썼지만, 민심을 파고들지 못했다. 과거 자유당 지지자 가운데 5% 이상이 노동당에 투표했다. 과거 자신의 ‘치적’만 강조한 하워드가 이들을 놓친 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약속했나?
“교육혁명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양질의 교육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3~4살의 미취학 아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5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원주민이나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나이가 어릴 때부터 시작돼야 한다.”
시드니/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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