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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5 14:37 수정 : 2008.09.05 14:45

창간 20돌 기념 연중기획
다시 그리고 함께 [4부] 진화하는 세계의 진보

복지예산 삭감·이라크전쟁 등 민감한 이슈 ‘입김’
네티즌 기부금으로 수십명이 자원봉사 형태 운영
국내 정치적 이슈 떠나 환경·국제문제에도 목소리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다. 먼저 연단에 나와 있던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그를 맞이한다. 둘은 가볍게 포옹한 뒤 악수 대신 서로의 주먹을 장난스럽게 맞댄다. 이때 방송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테러리스트들의 악수인가요?” 잠시 뒤 화면이 꺼지고 자막이 뜬다. ‘여러분, 뭔가 해야겠습니다!’

‘폭스, 오바마 헐뜯기를 그만둬!

(FOX, Stop smears!)’라는 제목의 방송 광고다. 극우 성향의 케이블 방송 <폭스>를 공격하는 이 광고는 미국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그린워드가 만들었다. <폭스>는 오바마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악수 대신 흑인들의 인사법인 주먹 맞대기를 자주 하는 것을 “테러리스트의 악수”라고 비아냥거려 인종차별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폭스>는 오바마의 이름을 ‘오사마’(오사마 빈 라덴)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의 부인 미셸의 말실수를 부각시키는 등 연일 ‘오바마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운동단체인 무브온(moveon.org)은 지난 7월10일 320만명에 이르는 회원 전원에게 이 광고를 퍼날랐다. 이와 함께 <폭스>에 오바마 때리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해달라는 전자우편도 보냈다. “<폭스>가 인종차별주의까지 동원해 오바마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2만8천여명이 서명을 했는데, 50만명이 넘으면 이 청원을 <폭스> 방송사에 전달할 겁니다. 그러면 언론이 이를 기사화할 것이고, 폭스에 광고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광고주들이 곧 깨닫게 될 겁니다.”

무브온 운영자가 전자우편에 남긴 이 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무브온은 지난 10년 동안 많은 캠페인을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 가운데는 주정부나 연방의회를 움직인 것도 많다. 공화당이 2007년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과 시위를 벌여 삭감 규모를 크게 줄인 것과, 2006년 테러방지법(패트리어트 액트) 재개정 반대운동을 펼쳐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법안을 손질하도록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2006년 펜실베이니아 주정부는 가석방된 재소자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려고 시도했다가 무브온의 반대운동에 부닥쳐 실패했다.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마리오(40·왼쪽)와 폴(32·가운데), 비제이(26)가 지난 6월22일 오바마 이름이 적힌 연을 날리려고 미국 워싱턴 기념비 앞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인터넷 운동단체인 무브온의 열성 회원이기도 하다. 워싱턴/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네오콘 출신의 존 볼튼 전 미 국무부 차관의 유엔대사 ‘낙마’에도 무브온의 입김이 작용했다. 부시 미 대통령이 그를 유엔 대사에 지명하자, 무브온은 회원들한테 연방 의원들에게 그의 인준을 거부하도록 압박하는 전자우편을 보내도록 했다. 무브온의 압박에 의회가 인준을 거부하자,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휴회에 들어간 사이에 그의 임명을 강행하려 했으나 정치적 부담을 느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무브온은 1998년 실리콘밸리의 두 명의 벤처기업인이 클린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벌인 것을 계기로 탄생했다. 무브온은 이후 이라크전쟁과 의료보험 개혁 등 민감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무브온의 주된 활동은 의회나 정부, 언론사 등을 상대로 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이다. 자원봉사 형태로 일하는 수십명의 운영자들이 이 운동을 조직하고 전개한다. 하지만 청원 운동이 효과가 적을 때는 직접 거리로 나선다. 운영자들이 회원들에게 시위 계획을 전자우편이나 무브온 사이트를 통해 알리면 각자 주거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가한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사이트에 우편번호만 입력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언제 시위가 열리는지 알 수 있다. 시위는 대개 열 명 미만의 소규모로 열린다. 시위가 끝난 뒤에는 참가 후기를 사이트에 올리도록 해 참가자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무브온의 또다른 동력은 모금에서 나온다. 무브온 사이트의 ‘기부’란을 클릭하면 신용카드로 25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기부금을 낼 수 있다. 또 기업이 내는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이렇게 모은 돈은 이라크전 반대 광고나 각종 자료집 발간, 시위나 이벤트 행사 등에 쓰인다. 무브온은 지난 2005년 한해 동안만 900만달러를 모았다.

무브온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단체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을 위한 모금 활동도 자주 한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지나치게 당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무브온의 활동 범위는 정치적 이슈에만 머물지 않고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대체에너지 등 환경 문제와 미얀마 지진 피해 등 국제적 이슈에도 미친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무브온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존 뉴러 언론 담당 부서기관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확하지 못한 정보가 누리꾼들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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