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진보·개혁에 따져묻다 5. 의료복지
서비스 높일 재원마련 어떻게 ‘촛불’은 말한다. 미국도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은 대한민국 1%만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촛불’은 묻는다. 그렇다면 더 나은 대안은 무엇이냐고. ‘촛불’ 때문에 지면 게재가 늦어졌지만, <한겨레>는 지난 5월18일 시민패널이 진보·개혁 진영의 전문가들에게 따져묻는 형식으로 ‘건강과 의료 복지’ 분야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보 진영이 그동안 내걸었던 ‘무상 의료’라는 용어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에 대응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서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암 등 중증 치료비 부담 문제를 비롯해, 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토론자들 간에 심도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보험료 20% 인상·국고지원으로 10조 마련” 주장에“건보 효율화 뒤 점차 올려야 국민저항 줄여” 맞서
정부·국민·의료계 3자부담 ‘사회장치 강화’엔 공감 가족 가운데 한명이라도 암을 비롯해 중증질환에 걸리면 한 순간에 중산층에서 빈곤층의 나락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전문가 패널과 시민패널들은 서민 의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중증질환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국가재정 5조원 투입 및 보험료 20% 인상’ 안과, ‘건강보험 재정 우선 효율화와 단계적 보험료 인상’ 안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태수(이하 이태) 이명박 정부가 의료 산업화를 통해 국민 건강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진보 진영과 더욱 대립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이 국민건강과 관련해 갖고 있는 정책대안은 무엇인가?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암 등 중증질환 대책이다. 오건호(이하 오) 국민들이 의료의 핵심은 암이라고 본다. 집안에서 누군가 아프면 폭삭 망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지금은 민간보험이 이 부분을 맡고 있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이나 고액 본인부담 질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거냐가 핵심 문제인데, 공적 방식으로 중증질환의 보장을 가능하게 하면 건강보험 제도가 이기는 것이고, 그게 안되면 민간보험이 이기는 것이다. 배수정(이하 배) 중산층 입장에서 봐도, 나이 들어 암과 같은 질환에 걸렸을 때가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다. 김경애 중증 희귀 질환자의 경우 민간보험에서조차 밀려나 있다.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으면 민간보험 가입도 안된다. 사보험이 약속한 보험료를 100% 지급하지도 않는다. 암도 한번 걸리면 보험지급을 해주지만, 그 다음부터는 가입조차 안된다. 암이나 이런 질환은 재발이 됐을 때 더 큰 의료비가 지출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홍만형 저소득층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골다공증 주사 등 비급여 항목이 너무 많아 병을 키울 수 있다. 오 결국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다. 보건의료 노조에서 3~4년 전에 세대당 3만원만 더 내면 무상의료가 가능하다는 운동을 했다. 지금은 4만원이면 될 듯 하다. 예를 들어, 중증질환에 대해선 민간보험의 4분의 1 수준에서 본인 추가보험료로 ‘건강보험이 암을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던질 수 있다. 노동자가 추가보험료를 낼 경우 사용자 법적 부담금과 국고 지원액도 늘어나기 때문에, 가입자에겐 암보험보다 건강보험이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추가보험료 인상을 통해 3~4년 안에 건강보험 급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로드맵을 만들어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배 세대 당 4만원이라고 얘기하는데, 지금 저희 가족이 3명인데 월 30만원을 내고 있다. 건강보험료는 실제로 소득 대비 정율(%)로 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10만원, 20만원 더 내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하냐. 자칫하면 무상의료 개념처럼 선동이 될 수 있다. 오 건강보험료가 세대별 정율이라는 지적은 맞다. 한달에 4만원을 안내는 사람도 있고 20만원을 더 내는 사람도 있다. 정액으로 세대당 4만원을 내는 게 공평한 것인지, 소득의 몇% 정율로 하는 게 좋은지 논쟁을 해봐야 한다. 4만원은 평균치일 뿐, 결코 선동하거나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김병권(이하 김)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들 저항이 굉장히 셀 수밖에 없는데, 재원을 조달해 어디에 쓸 것인지 구체적으로 대응을 시키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중증질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면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제시하면 국민들은 충분히 동의할 것이다. 양재진(이하 양) 사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 중에서 건강보험 만큼 국민 지지도가 높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돈을 더 걷어 해결하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일의 순서는 먼저 내부 시스템을 개혁하고 잘 운영한 뒤,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국민을 설득해 조금씩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태 시스템 전환을 통해 수혜를 늘리겠다는 것인데, 지금 건강보험에서 그런 여지가 있나.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등 누수를 줄이면 최대 2-3조원까지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하는데, 건강보험 재정 규모가 25조원이다. 아무리 줄여도 중산층 이하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중증 질환이나 여러가지 의료 부담을 속시원히 해결해 줄 수 없다.
8
|
양 시스템 효율화 노력을 병행해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그래야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상이(이하 이상) 건강보험 재정을 25조원에서 35조원으로 덩치를 키우면 중증질환 보장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10조원 가운데 5조원은 정부가 다른 부분을 줄여 조세 재정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5조원은 국민들이 부담하면 된다. 그러면 건강보험료가 20%정도 오른다. 여기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하자고 공격적으로 제기하자. 이태 중증질환이나 비급여 부담을 보장하기 위해 10조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고, 보험료를 급진적으로 20% 더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가. 오 동의한다. 대신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저항감이 있으므로 지혜롭게 추진해야 한다. 처음엔 추가 본인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급여효과를 체감하게 하면 그 다음 단계부터는 순조롭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단계적으로 보험료를 올리면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아주 조금씩 올릴 수밖에 없게 되고, 국민들은 그 혜택을 잘 못느낀다. 단박에 25조원을 35조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공공 의료복지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3자 공동부담으로 해보자. 정부가 먼저 5조원을 재정에서 충당해 추가로 내놓고, 나머지 5조원은 국민들이 보험료를 20% 더 내서 해결하고, 의료계와 보험자는 군살빼기로 효율화하자. 양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그것을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고 진보의 화두로 삼자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보장성 강화운동으로 가야지, 보험료 인상운동으로 가면 안된다. 복지 선진국도 ‘보험료 인상’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이태 정리하면 보장성 강화는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점진적으로 내부 효율화를 통해 할 것인지, 전격적인 보험료 인상 및 국고 투입확대라는 사회적 합의방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조세 방식으로 국가 부담을 높여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저항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갈 것인지, 이런 몇가지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배 중증질환도 무상이 되면 병원에 안갔던 사람들도 다 갈텐데, 정말 10조원이면 가능한가? 더 늘어날 것 같다. 양 고가의 새로운 의료 기술이 개발되면 4년 뒤엔 15조원이 필요할 것이고, 10년이 지나면 또 더 필요할 것이다. 치밀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또 3자 합의에 의한 고통분담은 좋지만, 보험료 부담의 또 다른 축인 기업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저해하지 않기 위해선 보험료보다 일반재정의 부담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상 10조원은 아주 거칠게 계산한 것이다. 2005년 국민의료비에서 공공보건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보장성 수준을 살펴보면, 우리가 53%인데 국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72%이다. 10조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돈이다. 이걸 중증질환으로 모두 돌리자는 것이다. 이태 무상의료니 아니니, 이런 논쟁 보다는 많은 국민들이 부담없이, 본인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그걸 위해선 당연히 현재의 중증질환에 대해 느끼는 부담을 해소해야 하고, 재원 마련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성도 제기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