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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4 20:11 수정 : 2008.06.25 16:12

9-1

구멍난 비정규직법 어떻게 메울까

용역업체 바뀔 때마다 임금삭감 위협 시달려
사내하청 노동자부터 차별 시정 대상 넣어야

2004년 케이티엑스 승무원이 된 오미선씨.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케이티엑스의 승무원으로 일했지만, 공사 정규직들에 비하면 임금 수준이 턱없이 낮았다. 뒤늦게야 그는 자신이 철도공사가 아닌 한국철도유통 (현 코레일유통) 소속이란 걸 알았다.

오씨는 이른바 ‘간접고용’ 노동자다. 간접고용이란 기업이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외주업체에 고용된 노동자에게 일을 맡기는 고용형태를 말한다. 파견ㆍ용역ㆍ도급ㆍ사내하청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외주업체를 거치다보니, 같은 일을 해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의 계약 관계에 따라 고용도 늘 불안정하다.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기업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들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비정규직법을 피해가기 위해 ‘외주화’라는 수단을 취해버리면 속수무책인 셈이다. 그럼에도 외주화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경영계의 논리에 밀려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토론에선 외주화 규제 방안의 수준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시민 패널인 오씨는 “차라리 (철도공사에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털어놨고,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오씨처럼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받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먼저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오미선 오늘로 투쟁 800일을 맞았다. 왜 이렇게 길어졌나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코레일에 항의하면 (우리는) 자회사 소속이니 자기네들과 무관하다고 하고, 노동부를 찾아갔더니 ‘비정규직’이 아니라서 어렵다고 하더라. 차라리 ‘비정규직’이라도 되고 싶었다.

김유선 비정규직법을 만들 때 기업의 외주화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고,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어떤 방안이 있나?


이덕순 한 달에 105만원을 받는데,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임금삭감의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 이건 너무하지 않나.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렇다.

이목희 기업들이 업무를 외주화할 때, 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와 근로조건을 협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덕순 지부장이 바라는 대로) 이전보다 근로조건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도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은수미 정규직 노조의 상당수가 외주화에 동의해줘 버린다. 너무 느슨한 대책이 아닌가.

심 기업들이 외주화를 (비정규직법을 피해) 빠져나갈 구멍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주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원청업체에게 ‘사용자’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문제가 시급히 제도화돼야 한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문제에 대해 정몽구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목희 (원청업체에 사용자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이랜드그룹의 사례처럼 기업이 악의적으로 외주화를 한 경우에 한해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통해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면 되지 않나.

은수미 기업이 외주업체 노동자들에게 일을 맡겨 이윤을 얻었다면, 그만큼 책임있는 분배를 해야 한다. 모든 간접고용을 건드릴 게 아니라, 가장 문제가 되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 먼저 차별 시정 대상에 넣자. 파견법을 개정하거나 사내하도급 특별법을 만들면 된다. 자동차공장에 가면 같은 라인에서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사내하도급 업체 소속인) 비정규직이 만든다. 그런데도 양쪽의 근로조건 격차가 크다. 이런 건 너무 드러나는 차별이 아닌가.

심상정 연대책임 보다는 한발 더 나가야 한다. 원청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가 원칙으로 확립되지 않으면,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래야 이 쪽도 노사관계가 확립되고, 노동자들이 책임분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버젓이 작업 지시 다 내리고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용주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경우엔 고용주의 책임도 져야 한다.

글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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