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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에 따져묻다] 3. 청년실업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족), 엔지족(No Graduation족·졸업 유예족),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족), 토폐인(토익공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20대 취업난을 대변하는 신조어들은 ‘청년 백수’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참여정부는 지난 5년 간 100여개에 이르는 청년실업 대책을 내놨다. 예산도 해마다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안정적 일자리를 원하는 20대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백수’로 지낸 20대의 수는 지난 해 무려 109만명에 달했다. 공식 실업자는 30만6천명이었지만,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그냥 쉬는 사람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진보·개혁 진영에 따져묻다’의 네 번째 주제로 청년실업을 택했다. 사회 진입의 문턱에서 날개가 꺾여 좌절하고 있는 20대 청년들에게만 온전한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지난 2일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에서 시민패널들은 △미스매치 해소를 위주로 한 청년실업정책 △기업 규제를 통한 청년층 일자리 확대방안 등의 현실성과 구체성을 따져물었다. 그러나 4시간에 걸쳐 진지하게 진행된 토론회에도 불구하고, 흡족한 대안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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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이하 우) 김상섭씨의 이런 고민을 비단 개인의 특수한 문제로 돌려선 안될 것 같다. 진보·개혁 진영을 대표해 나온 전문가 패널께서 시민 패널들이 공감할수있는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진보·개혁에 따져묻다]청년실업1
■ ‘기업 의무고용제’는 실현 가능한가
공공부문도 안하는 의무고용 가능하겠나
인센티브-페널티 동시구사 효과 있을 것
1999년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로제타>. 벨기에의 10대 소녀 가장 로제타는 한 공장에서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어이없이 해고를 당한다. 가까스로 새 일자리를 얻었지만, 사흘 만에 사장 아들에 의해 밀려나고 만다. 그는 결국 친구의 부정행위를 사장에게 밀고한 끝에 실업의 늪에서 탈출하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일자리를 얻어야 시궁창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다”고 되뇌이는 로제타는 당시 심각했던 벨기에의 청년 실업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벨기에 정부는 지난 2000년 기업에 청년층 고용의무를 강제하는 ‘로제타 플랜’을 단행했다. 시행 1년 뒤 5만개의 계약이 체결됐고, 정부는 135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
한국판 ‘로제타 플랜’은 가능할까. 진보정당이 제시한 ‘기업 의무고용제’에 대해, 시민패널과 개혁 진영쪽 전문가 패널들은 당사자의 한 축인 기업을 설득할만한 논리가 무엇인지 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성희(이하 희) 한국에서 <88만원 세대>가 깊은 인상을 준 것처럼, 벨기에에선 <로제타>란 영화가 큰 시사점을 주면서 이런 조처가 시행됐다. 현재의 청년 고용 인센티브 수준으로는 기업들을 유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2005년 기준으로 100명 이상 고용한 기업 1만231곳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수는 283만662명이다. 이들 기업에 5% 청년층 의무고용을 강제하면,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가 일자리를 얻게 된다.
우 우리 사회가 워낙 기업에 규제를 부과하는 것에 민감하다. 국민 정서상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들 보시는가.
주덕한(이하 주) 이미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서 공공기관들에게 청년층 채용 노력 의무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런데 노력 의무가 부여된 기관의 절반 넘게 이를 지키지 않았다. 공공부문도 안 지키는데, 민간기업을 어떻게 강제할 건가. 게다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도 없애라 하는 판인데, 가능할까 의심스럽다. 진보진영 내의 논의로만 끝날 건지, 진짜 사회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희 벨기에에서도 보수정당과 기업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제도화에 성공했다.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동시에 구사하면 된다. 고용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력하게 하고, 청년층을 고용한 기업들에게는 재정적 유인책을 충분히 주는 식이다.
김성환(이하 환) 취지는 좋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제도가 작동될 수 있을지에 주목해서 봐야 한다. 또 청년층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장애인과는 다른 문제다. 청년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느니,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층에 직업숙련을 높이도록 돈을 쓰는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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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창균(이하 채) 기업이 청년층을 고용하는 대신, 중고령자나 여성을 내보내는 식의 대체관계가 발생하지 않을까.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를 얼마나 세밀하게 잘 설계하느냐가 관건인데, 제도로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희 기존 인력에 대한 해고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면 된다. 또 추가 고용의 대상을 정규직으로 한정하면, (비정규직이 많은) 여성이나 중고령 노동자들을 대체할 여지는 사실상 차단할 수 있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할거냐 말거냐의 문제다. 청년층 고용에 대한 사회적 개입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우 그렇다고 해도, 다른 집단의 상대적 박탈감은 없을까. 20대가 아닌 다른 취약 계층들이 받아들일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20대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는가.
희 청년층 내에서도 취약계층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벨기에의 경우도 청년층 내에서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등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을 고용한 사용자에게 사회보장 부담금의 감면 폭을 확대 적용했다.
김상섭(이하 섭) 잘 나가는 대기업은 어차피 신규 채용을 꾸준히 해 왔다. 관건은 경력직을 선호하는 중소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일 건지에 있다. 기업들을 설득할 논리가 무엇인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또 의무고용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구직자의 기대 수준에 맞는 질 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제한적이지 않을까.
희] 벨기에에서도 로제타 플랜으로 인해 만들어진 청년고용의 질적인 부분에 대해선 평가가 분분하다. 또 4년제 대졸실업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선 별도의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진보·개혁에 따져묻다]청년실업2
■‘잡 미스 매치(mismatch)’인가, ‘정책의 미스 매치’인가
일자리 돈 많이 썼다는데 체감 못하겠다
미봉책 집착 말고 장기적 해결책 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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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의 원인을 ‘잡 미스 매치’에서 찾는 것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돼 온 논리다. 잡 미스 매치란, 기업이 청년층에 제공하는 일자리의 수준과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의 수준이 어긋나 있어 실업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역대 정부는 이런 미스 매치를 해소하는 데 정책의 큰 비중을 뒀다.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년층 밀집 지역에 ‘잡 까페’를 설치하는 등 취업지원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경제성장이 이뤄져도 ‘질 좋은’ 고용이 늘지 않는 속에선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당사자인 시민패널들은 “허공에 삽질하는 식의 청년실업 대책을 펴서 청년층이 그 효과를 전혀 체감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잘라 말했다.
섭 언론에서 구직자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으니 낮춰야 한다고 보도하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광주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무직 일자리는 전부 초봉이 1800만원 미만인 곳들 뿐이다. 그래도 대학 졸업했는데 한 달에 15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으로 살아가려면 자괴감이 들지 않겠나.
환 외환위기 이전, 사실상 완전고용 상황에선 일자리를 잃어도 주변 지인들 소개 정도로도 취직이 가능했다. 김영삼 정부 때 대학정원을 풀면서, 지난해 대학 진학률이 82%를 넘어섰다. 단순히 청년층의 눈이 높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문제지만, 교육현장과 산업현장의 수요가 안맞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걸 해결하는 게 중요한데, 좀 더 속도감있게 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래서 청년층들이 체감하지 못한 것 같다.
주 면피성으로 들린다. ‘눈높이’ 문제는 정부가 청년실업 정책을 추진하다가 막히면 늘 나오는 이야기다. 참여정부가 예산을 해마다 수 천 억씩 들여가면서 열심히 했다지만, 성과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결과적으로 몇명이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은 전혀 없다. 공급자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희 실업이 있는 곳에선 언제나 ‘불일치’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걸 대단한 원인분석인양 떠들어선 안된다. 이런 식의 접근은 공자님 말씀으로 끝나버린다. 노동부가 대체로 그렇게 해왔다. ‘미스 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청년실업의 대책이 되긴 어렵다. 과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채 눈높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고학력화 현상을 무시할 수 없지 않나.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고학력화에 맞게 일자리도 수준이 높아졌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적어도 전문대 이상을 졸업하면, 직업분류상으로 보면 준전문가 정도의 일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일자리는 20% 수준이다.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김선명수 그런 식의 원인 진단과 접근은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온갖 정보들을 혼자서 다 찾아낸다. 취업 정보만 해도, 노동부 사이트를 이용할 것 같나? 그렇지 않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취업사이트에 더 많은 정보가 있다. 이런 건 이미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안미영 실제로 정부가 연결해주는 일자리는 신뢰가 안간다. 승무원 양성 교육을 저렴한 비용으로 해준다고 해서 국비 지원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교육 끝나고 알선해주는 곳이 1년 중에 석달만 일하고 월급은 60만원 수준이더라. 어쩜 그렇게 열악한 회사들만 골라서 해주는지 씁쓸했다.
환 다시 속도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화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반면, 고용서비스의 수준은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재원 규모만 봐도 독일이나 덴마크의 10분의 1도 안된다. 좀 더 과감한 결단과 투자가 필요했다.
희 ‘속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방향’의 문제다. 참여정부의 청년실업정책은 대체로 미봉책 수준에 머물렀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니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비정규직이라도 일단 취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하면서, 결과적으론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은 셈이다.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했지, 비정규직 고용으로는 청년들이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는 피해갔다. 심각한 ‘정책의 미스 매치’가 아닌가.
채 미스매치를 해소하려는 정책들이 한계는 있지만, 일부는 살릴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는데, 모든 청년층을 대상으로 예산을 써 왔다. 취업을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한 ‘예스 프로그램’(용어설명 참조) 같은 것은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모델이 된 영국의 뉴딜프로그램은 빚에 시달리는 등 아주 개인적인 문제를 상담해주는가 하면, 집에서 먼 지역으로 면접 인터뷰를 하러 가는 청년들에게는 차비를 지원했다.
우 토론을 해보니, 나 역시도 진보ㆍ개혁 진영에 좀 더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따져묻고 싶어진다. 여전히 다른 이슈에 비해 청년실업 문제가 뒤로 밀려나 있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청년실업 문제도 ‘광우병’ 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는 만큼, 새로운 ‘사회적 약속’이 필요해 보인다.
황보연기자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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