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피사 한국학생 과학 학습 태도 설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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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돌 기념 연중기획] 진보·개혁에 따져묻다
교육(상) 평준화, 폐기냐 업그레이드냐?
평준화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찬반론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평가(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결과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내세운다. 평준화 찬성론자들은 우리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상위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반대론자들은 상위 5% 학생들의 성적이 경쟁 국가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식이다.
그러나 평준화에 대한 찬반 견해와 관계없이 모든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학업에 대한 흥미도가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대학입시를 겨냥한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연말 발표된 2006년 피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만 15살 학생(고1)의 읽기와 수학 능력은 전체 57개국(OECD 회원국 30개국 포함) 가운데 각각 1위, 1~4위(최고, 최저 등수) 수준으로 나타났다. 읽기는 처음 피사를 실시했던 2000년 6위, 2003년(2회) 2위로 계속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고, 수학도 2000년 2위, 2003년 3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 성적은 2006년 7~13위 수준으로, 2000년(1위)과 2003년(4위)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과학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학습 태도였다. 피사는 매 평가마다 주요 과목을 선정해, 그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학업 흥미도 등을 측정했는데, 2006년(과학)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우리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흥미와 과학 개념에 대한 이해, 학습 동기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 57개국 평균보다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에 대한 흥미 정도는 -0.24, 학습 동기는 -0.26, 자아 개념(이해 정도)은 -0.71 등으로 모두 오이시디 평균(0)을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단순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는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자극해서 창의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오직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을 해온 탓”이라며 “학업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떨어져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과학 성적은 특히 ‘서술형 주관식 문제’가 많이 출제된 생물 분야에서 점수가 낮게 나왔다. 서술형 주관식 문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풀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학생들이 이런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점수가 낮게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단순 암기식 교육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2003년에는 피사의 주요 분석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이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수학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다.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자극하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학 성적도 낙관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편, 최상위 5% 학생의 성적이 이전 피사 결과와 다르게 나온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읽기와 수학은 각각 20위-7위-1위와 5위-3위-2위로 성적이 향상됐으나, 과학은 5위-2위-17위로 크게 떨어졌다. 이를 두고 “평준화가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하향 평준화’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과 “상위권 성적이 향상된 것은 사교육 효과 때문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오이시디 보고서에는 “한국 정부가 학교에서 작문 교과를 강조하고, 대학들이 입시에서 논술을 치르면서 상위권 학생들이 읽기와 사고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돼있다.
안승문 전 서울시교육위원(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은 “2003년 피사 결과 최상위권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 순위(3위)가 전체 학생 순위(1위)보다 조금 낮게 나온 것을 가지고 ‘하향 평준화’를 주장했는데, 이는 근거가 약하다”며 “피사가 주는 교훈은 암기식, 주입식 교육으로는 더이상 선진국 학생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사는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학업성취도를 3년 주기로 평가하는 것으로, 1998년부터 연구가 시작돼 2000년에 오이시디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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