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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7 20:40 수정 : 2008.02.17 20:58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못다한 이야기-참여정부 및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비판

[연중기획] 다시 그리고 함께 /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제2부 성찰 (다시보는 참여정부 5년) - (7) 에필로그- 5년의 공과

<한겨레>는 연중기획 ‘다시 그리고 함께’를 위해 지난해 12월초부터 우리 사회 주요인사 50여명을 대상으로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전현직 인사는 물론 진보개혁적 성향의 학자와 시민사회운동단체 주요인사들을 망라했다. 이들은 참여정부는 물론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참여정부를 향한 일방적인 ‘비판’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또 그동안 보수언론이 내린 편향되고 왜곡된 평가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각종 실책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이룬 성과까지 통째로 부정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들이 던진 쓴소리와 자성의 목소리 가운데 지금껏 소개하지 못했던 내용을 요약해 ‘못다한 이야기’와 ‘버려선 안될 것’으로 정리해 싣는다. ‘참여정부 5년의 공과’를 갈무리하는 차원이다. 모든 평가가 그렇듯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도 평가 주체에 따라 꽤 큰 인식차이가 엿보였다. 특히 참여정부 스스로 내린 평가는 일반국민들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수긍할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독자들이 비교해 판단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평가와 별도로, 지난해 말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와 참여정부 자체평가도 함께 실었다.

현장 모르는 ‘추상적 담론’ 시민들 가슴 닿지 못했다

대통령이 되면 오만해지는 것 같다. 누구라도 세상의 권력과 힘, 명예를 얻으면 그렇게 된다.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신은 너무 높이 있고 황제는 너무 멀리 있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권력이 구중궁궐에 갇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쉽진 않았을테지만 대통령이 되더라도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잘못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왕에게 잘못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면 곤란하다.

참여정부는 변화된 시대에 국민을 만족시킬만한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할 내용·추진력·조정력·조직력·통합력에서 전반적인 난조를 보였다. 정부를 장악하고 끌고 나갈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나 386세대 몇 사람을 욕한다고 될일은 아니고 전반적인 시민사회의 퇴조와 (정부에)참여했던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총체적 문제다. (진보개혁세력이) 민주화 운동시기와 이행기에 굉장한 역할을 했던 건 분명하지만 변화해가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실력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참여정부는 현장을 모르거나 주목하지 않았다. 농촌을 살린다고 하면서 정작 농민이 2차 가공품을 만들면 식품위생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 원천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잘살 수 있겠는가. 이런식의 정책적 오류는 현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언론도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추상적 담론이나 논해서는 시민들의 가슴에 와닿을 수 없다.

운동권 출신 아니면서 “다 안다” - 몰이해

△이수호(새진보연대 대표·전 민주노총 위원장)
소위 ‘운동권 출신’이 운동권을 깊게 신뢰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가 (노동운동의) 속내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저건 저런거야’라고 판단해 버렸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조직적인 운동권 출신도 아니면서 스스로 ‘다 안다’는 식으로 판단했다. 시위나 단체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민주노총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적 노동조합 중심의 사회개혁투쟁, 이라크 파병·국가보안법 같은 정치현안에 대한 개입에 대해 ‘왜 이런 일까지 자꾸 하느냐’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노동계가 세력화되는 데 대한 불안감도 있고, 보수언론·재벌들이 ‘경제발전에 대한 걸림돌’이라고 정치적으로 공격하면 노 대통령이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노동운동 문제 많다’, ‘귀족 노조다’ 등으로 공격하면서 노동운동 쪽과 불신이 쌓여왔다.

민초들 얘기 듣는 척이라도 했어야- 우월감

△최갑수(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대통령은 의사결정의 최고의 정점에 있다. 따라서 남의 얘기를 충분히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든 아니든 국민들 얘기를 충분히 듣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 자체가 소통의 과정이다. 힘있는 사람이 먼저 소통할 자세가 돼 있음을 보여줬어야 했다. 대통령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 특히 민초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아랫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 전 부분을 혼자 얘기하다시피 했다. 대통령 되고 나서 바뀐 사람이 얼마나 많냐. 권력을 잡은 순간 권력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 진보개혁 진영도 도덕적 우월감이나 권력을 잡았다는 오만감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진보 경제학 없어- 무능

△정상호(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미국의 우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쉬운 담론, 대중적인 담론으로 많이 바꿔가는데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그렇지 못했다. 대중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동떨어져 진행되는 담론들이 횡행하고 있다. 진보의 경제학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보수가) 성장에만 경도됐다고 비판하는데, 정작 진보는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을 힘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이를테면 세계화 시대에 필수적인 영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문제다. 국민들이 바라고 대중들이 알고 싶어하는 실현가능한 대안들을 마련하는 데 진보는 무능하다. 국민들이 바라는 영역에 대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국민들의 언어로 얘기하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내 탓이오’ 모르는 권력에 분노- 오만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참여정부는) 오만했다. 봉건왕조 때에도 가뭄이 들면 임금이 ‘내 탓이오’라면서 기우제라도 지냈다. 서민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 ‘내 탓이오’ 하기는커녕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하니까 다들 분노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산 것이다. 양당체제 아래서 노무현에 대한 배신감은 결국 한나라당밖에 찾을 수 없었다.


엘리트들 민주주의 화법 배워야 - 권위주의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주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진보파 엘리트들의 권위주의적 태도다. 이들이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기층세력에 대해 보여준 헌신성은 여전히 평가해 주어야 하지만, 정치·사회문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언어와 이해방법은 지나치게 계몽적이었다. 또 추상적 이념을 앞세움으로써 대중의 생활세계와 접맥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때론 이념적 표현을 무책임하게 남발해 마치 대중 앞에서 스스로 역사의 진리를 앞서 알고 있다는 듯한 권위주의적 문법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몇 진보파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에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는 데 반해 대체적인 진보파 엘리트들의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언어가 크게 부족하다.

피부 와닿는 대안제시 부족했다 - 대안 부재

△정진민(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국민들 일상생활과 밀착되지 못했다.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교육과 일자리 등 좀 더 일상생활과 밀착된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실현 가능성도 높여서 끊임없이 지지기반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했다. 실제 생활에 와닿는 생활진보, 구체적 성과는 물론 유권자들이 체감하면서 나의 삶이 나아지고 있구나 생각하도록 해야 했다. 진보학자들 세미나를 가봐도 대안제시가 부족하다. 이것도 총론에서 머물고 각론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주기적으로 심판받는 사람이다. 적당히 이야기해서는 이기지 못한다. 유권자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타산적으로 따지는 경향이 있다. 젊은 세대가 특히 그렇다.

가치판단 없이 형식적 합리 집착 - 형식적 합리주의

△박진섭(생태지평 부소장)
갈등조정 등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측면이 있지만 내용에 대한 가치 판단없이 형식적 합리주의에 지나치게 목을 맸다. 정책은 추진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것, 옳거나 그르다는 것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 (참여정부는) 그게 없었다.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참여정부 초기에 화물연대 파업, 새만금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했다. 탄핵 뒤 시민사회가 한번 더 정권을 재창출해줬다. 그걸 잘하라는 얘기로 들었어야 했다.

연중기획 특별취재팀 = 김이택 편집부국장(팀장) 정석구 경제부문 선임기자, 성한용 정치부문 선임기자,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이용인 이재명 황예랑 강성만 이창곤 이수범 신승근 이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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