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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월25일 청와대에서 편집·보도국장단 초청 오찬간담회를 갖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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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고 함께] 참여정부 소통의 실패 (하)
노대통령 ‘거친 말’→보수언론 ‘트집’→서툰 대응
‘언론과 5년전쟁’ 악순환…국민과 소통 점점 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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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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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실 집이 없습니다. 퇴임 후 새로 집을 사야 합니다. 제 아이 하나는 장가가고 하나는 시집갔는데 둘 다 아직 집이 없어요. 그러니까 집값 절대로 못 오르게 제가 잡겠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집값을 잡겠다는 식의 얘기다. …그러면 노 대통령이 집이 있고, 자녀들도 집이 있으면 집값을 잡지 않을 것인가. 근본적으로 국사와 가정사를 혼동하고 있다.”
앞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12일 대전·충남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고, 뒤는 며칠 뒤 한 보수언론 논설위원이 쓴 칼럼의 일부다. 농담성 짙은 노 대통령의 말을 꼬투리 잡아 칼럼은 “우리나라 대통령도 퇴임후 전셋집에 살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초다”라며 짐짓 엄중한 척 충고를 날린다.
#보수언론의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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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보수 언론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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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반어법·역설법과 농담이 뒤섞인 그의 ‘현장 언어’는 언론에서 양해되지 않았고, 막말은 대서특필됐다. 특히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으로 표현되는 보수·수구 언론은 시퍼렇게 날이 선 공격적인 보도로 그를 겨냥했다. 대통령 선거일 아침 <조선일보>의 문제 사설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02.12.19)는 5년간의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내내 보수·수구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금지선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깔론과 인신공격(약탈 정부, 버릇없는 정권), 과장보도(세금폭탄, 퍼주기), 일방적 보도(코드 인사), 선동(국민이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됐다)에 이르기까지 언론학 교과서에서 금지한 모든 반칙행위들이 등장했다.
남재일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대통령 보도와 청와대 출입기자>(05.12)라는 논문에서 “노무현 정권에 들어 언론이 과거엔 거론 않던 대통령 스타일상의 투박함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가 28.9%나 됐다”고 썼다.
그러나 보수·수구 언론의 공격에 대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대응은 서툴렀다. 사전에 조율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노 대통령의 ‘말’은 약한 고리였다. ‘때리려는 사람 앞에 뺨을 갖다 댄 격’이었다. 조중동은 대통령의 말을 먹잇감 삼아 보수층을 결집하며 오히려 영향력을 키워갔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군대서 썩지 말고”…
정제안된 말 대서특필, 감정대립 증폭
#노대통령 자극적 표현들
임기초부터 그가 여러차례 쏟아놓은 ‘대통령직’에 대한 발언은 ‘고뇌’의 산물이 아니라, ‘경박한’ 대통령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03.5.21) “대통령도 해보니까 괜히 했다 싶을 때가 있다”(6.24)는 말이 그랬다. 대선자금 수사 때는 “국민들께 재신임을 묻겠다”(10.10)고 했고, “대통령직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다”(10.13, 국회시정연설)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12.14, 4당대표 회동)는 말도 했다.
이런 때마다 언론은 “대통령직 못해먹겠다”(조선일보 사설 03.5.22), “대통령 ‘그만두겠다’가 벌써 몇번째인가”(〃12.15) 등의 글로 노 대통령의 가벼움과 자격 없음을 조롱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하루하루 대통령의 거취를 걱정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릴 리 없었다.
노 대통령의 ‘말’이 구설에 오를 때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조중동의 왜곡보도”라고 항변해왔다. 전체 맥락과 발언취지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표현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할 수는 있어도 언론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쓰기는 힘들다. 말에 관한 한, 언론이 완벽한 거짓보도라는 사실을 인정해 정정보도를 한 사례가 매우 드문 데서도 드러난다. 한마디로 상당수는 노 대통령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언론과 5년전쟁’ 악순환…국민과 소통 점점 멀어져
‘약탈정부’ ‘세금폭탄’ ‘퍼주기’ 과장보도 덧칠에
노대통령 민생탐방 거부감 ‘소통 부재’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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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나온 일간지 사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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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속을 긁는 자극적 발언은 유효한 공격수단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반대편을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왔다.“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 가서 몇년씩 썩지 말고”(06.12.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 “유식한 한국 국민 중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게 제일 걱정스럽고”(05.4.16) 발언은 보수세력의 이념공세 소재가 됐다. 언론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굳이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고”“불량상품은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07.1.4. 경제점검회의)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가지고”(07.1.16. 국무회의)라는 등 자극적 표현으로 당사자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나 기자실 제도 등 본질적 논쟁거리는 대통령의 ‘말’ 논란 속에 묻혀버렸다. 또 이런 발언들이 보수·수구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될 때마다 가랑비에 옷젖듯 대중들은 서서히 참여정부에서 멀어져갔다.
취임 초 방미 길에 뉴욕에서 연설하면서는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03.5.13, 코리아 소사이어티)고 과한 인사치레를 해 지지층을 실망시켰다. 민주당 분당 논란의 와중에 열린 광주전남 언론간담회(9.17)에서는 “호남 사람들은 노무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경선 당시 한때 호남의 민심이 나와 정몽준 후보를 놓고 방황하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가 지역사회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임기 초 “집값 절대로 못 오르게 잡겠다”고 공언해놓고 분양원가 공개에 찬반을 번복하며 오락가락한 것도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특히 임기 후반부 들어 노 대통령의 입에서 열악한 서민경제 상황과 동떨어진 말들이 튀어나오면서 일자리와 집값·사교육비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질 하는 결과를 빚었다. “부동산정책 말고는 꿇릴 게 없다”(06.12.27)“종합적으로 봐서 대통령 선거 때 국민들이 제게 기대했던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07.6.2)고까지 자화자찬을 했다.
#민생탐방 포기
한때 노 대통령은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위해 민생 현장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 “미디어를 동원해 쇼하는 것”이라며 내켜하지 않던 노 대통령은 몇차례 언론으로부터 ‘말꼬리 잡기’를 당한 뒤 현장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청와대 브리핑’이나 ‘국정브리핑’ ‘케이티브이’ 등의 매체를 만들어 보수·수구 언론에 맞서기도 했지만 국민적 관심을 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노 대통령은 뒤늦게 자신의 말버릇을 ‘반성’했다. 지난해 6월 참평포럼 강연에서 “준비되지 않은 것 한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말을 고상하게 잘 다듬어서 해야 되는데 그 재주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 재주가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11일 방영된 <케이티브이> 특집 인터뷰에서도 “언어와 태도에서 품위를 만들어나가는 준비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좀더 일찍 깨달을 수는 없었을까. ‘왜 대통령의 말을 참모들이 제어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었는데 국민들의 기대나 언론이 요구하는 대통령상과 갭(간극)이 있었던 것 같다”며 “언론이 왜곡한다고 대통령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런 잘못된 관행과 싸워보자는 오기도 있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 자신도 <케이티브이> 인터뷰에서 “언론에 요령있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지금도 자문자답해본다. 그런데 피할 수 없었던 일 같다.…만일 제가 안 싸우면 언론이 참여정부를 좋게 봐 주겠는가? 싸우지 않았다면 나는 저항도 못하고 매맞는 아이가 됐을 것이다. 내가 언론과 맞서 싸우지 않았으면 지금쯤 참여정부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뜻이지만 청와대 밖의 평가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는 “참여정부에 대해 대중들이 접하는 부정적 이미지는 대부분 언론을 통해 나온 것이고, ‘코드인사’ ‘세금폭탄’ 등 정책에 대한 공격도 있지만 상당수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말로 인한 것”이라며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의 말을 견제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진보개혁 진영이나 노무현 정부가 결과적으로 참패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2030 국가비전’이나 지방균형발전 같은 개혁목표 설정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의사소통의 실패에 있다”고 지적한 뒤 “아울러 진보개혁 진영도 이제 국민들이 답을 바라는 사회경제적 영역에 대해서도 쉽고 대중적인 언어로 정책을 만들어내고 전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수구 언론이 압도하는 구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서중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는 “진실에서 벗어나 공격만 해대는 언론이 우리 사회를 압도한다면 노 대통령처럼 싸우든지, 아니면 그 언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들한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좀더 생각있는 지식인들이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이런 근본적인 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인 김이택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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