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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9 14:09 수정 : 2010.05.19 14:09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유달승의 중동 이야기] 아프간 경유 송유관 사업(3)
탈레반 지원했던 미 인사들 9·11테러 이후 정계 진출

유노칼은 1998년 8월 20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 이후 CentGas 컨소시엄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했다. 물론 유노칼의 철수는 잠정적인 철수를 의미했고 CentGas 컨소시엄이 완전히 해산된 것은 아니었다. 유노칼의 파트너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델타 오일은 탈레반과 협상을 계속했다. 한편, BP-Amoco의 자회사인 팬 아메리칸 에너지는 아프간 경유 송유관 사업과 관련해서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의 관료들과 적극적으로 협상했다.

아프간 경유 송유관 사업은 2001년 1월 20일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노칼은 CentGas 컨소시엄을 재규합했으며 탈레반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리차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리차드 아미티지는 유노칼이 자금을 대고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얀마 포럼에서 유노칼 로비스트로 활동했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홍보 담당 책임자로 레일라 헬름스를 임명했는데, 그녀는 전직 CIA 국장이자 주이란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헬름스의 조카였다. 레일라 헬름스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3월 18일 레일라 헬름스는 탈레반 최고지도자의 고문관인 라마툴라 하사미를 워싱턴으로 초청했고 라마툴라 하사미는 5일간 체류하면서 CIA와 국무부 관료를 만났다.

미국과 탈레반은 9-11 테러사태가 일어나기 한 달 전에도 협상이 이루어졌다. 8월 2일 크리스티나 로카(Christina Rocca) 국무부 남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압둘 살렘 자에프(Abdul Salem Zaef) 파키스탄 주재 탈레반 대사와 만났다. 이 회담에서 크리스티나 로카는 오사마 빈 라덴을 추방하라고 요청했고 압둘 살렘 자에프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압둘 살렘 자에프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회담이 매우 성공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9-11 테러사태가 일어나자 미국은 테러의 주범으로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지목했고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거부하자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하미드 카르자이의 반탈레반 투쟁경력을 강조하면서 아프간 임시 정부의 수반으로 지명했다. 카르자이는 1992년 외무 차관을 지낸 경험이 있었고 1996년부터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유노칼의 고문 및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11월 27일 독일의 본에서 개최된 ‘아프가니스탄 제 정파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신문 알-와탄(Al-Watan)은 12월 15일 기사에서 카르자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카르자이는 1980년대부터 CIA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94년 탈레반에 미국의 원조를 집중시키기 위해 CIA와 공조했다.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 구체적으로는 ISI를 통해 탈레반의 권력 장악을 지원했다.”


또한 아프간 출신의 잘마이 칼리자드(Zalmay Khalizad)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했다.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아프간 특사 잘마이 칼리자드도 유노칼을 위해 일한 적이 있다. 칼리자드는 탈레반을 위해 로비를 했고 탈레반과의 협상에 참여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무성 특별자문역을 담당했으며,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 확대를 위해 성공적인 로비를 펼쳤다.” 칼리자드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에서는 미국 석유회사 간부들이 정책결정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다. 또한 유노칼은 아프간 임시정부의 임명권을 행사할 정도로 아프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유달승 교수는 1998년 이란 테헤란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9-2000년 하버드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초빙학자로 있었다. 2001-200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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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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