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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6 13:59 수정 : 2010.03.16 14:02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프간 경유 송유관 사업(1)

미국의 실크로드 전략은 카스피 해 자원을 서쪽으로 향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동쪽 및 남쪽의 전략적 경로에서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카스피 해를 둘러싼 다양한 경로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궁극적으로 포위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중국과 이란을 견제하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봉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미, 러 견제하려 탈레반에 무기와 자금 지원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미국의 석유 기업 유노칼(Unocal)은 1995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 해까지 천연가스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개발했다. 유노칼의 CentGas 송유관 사업은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하여 이란을 통과해 정남향으로 우회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유노칼은 카자흐스탄의 텐기즈(Tenghiz) 유전을 아라비아 해로 연결하는 이중 송유관 시스템을 추진했다. 러시아의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는 유노칼이 주도하는 CentGas 컨소시엄의 일부였지만 그 참여는 매우 미미했다. 그것은 이 사업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송유관 경로를 확보하고 있는 가즈프롬을 약화시키고, 러시아의 송유관 네트워크를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수출하던 러시아-투르크메니스탄 협약을 훼손시키는 것이었다.

유노칼은 사파르무랏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1단계 협상을 끝낸 후, 탈레반과 대화를 시작했다. 한편, 클린턴 행정부는 1996년 카불에 탈레반 정부를 복귀시키기로 결정했고, 이는 러시아가 지원하는 북부 동맹과 대립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타지키스탄에 군사 기지를 둔 아흐마드 샤 마수드(Ahmad Shah Massoud; 1953-2001) 장군의 북부 동맹에 물자 지원과 군사 지원을 제공했고 반면에 미국과 파키스탄은 탈레반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이 북부동맹 대신에 탈레반을 지원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패권전쟁을 의미한다. 또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나오는 송유관과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러시아 기업의 각축전을 상징하고 있다.

탈레반은 1994년 9월 아프가니스탄의 남부 도시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탈레반은 주로 파슈툰족으로 구성되었고 젊은 신학생들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시아파를 반대하는 운동을 주창하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곧 아프가니스탄의 전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탈레반은 1996년 9월 26일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금지시켰고 여학교도 폐쇄시켰다. 또한 탈레반은 사진촬영도 우상숭배라고 금지시켰다. 글린 데이브스(Glyn Davies)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국이 탈레반의 이슬람법 조치에 대해서 반대할만한 어떤 것도 발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10월 2일 유노칼의 부회장 마틴 밀러(Martin Miller)은 탈레반의 정권 수립을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1997년 유노칼은 46.5%의 지분을 갖고 중앙아시아 가스(CentGas)라는 이름의 송유관 건설컨소시엄에 참가했다.


“러시아 통제하는 송유관 불안정하게 해야”

1998년 2월 12일 존 마레스카(John Maresca) 유노칼의 국제관계 담당 부회장은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복합 송유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가 러시아가 통제하는 북향, 서향, 남향 송유관 경로 및 이란을 통과하는 주요 송유관들을 불안정하게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석유 수송에서 직면한 주요한 기술적 장애물은 지역의 기존 송유관 시설이다. 지역의 송유관들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던 소비에트 시기에 건설되었으며, 일반적으로 러시아 북쪽과 서쪽을 향하고 있다. 남쪽과 동쪽에는 아무런 연결통로도 없다.

기존에 확립된 남향 경로는 이란을 통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제재법으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접근할 수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또 다른 경로는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 경로에는 물론 고유한 해결과제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거의 20년간 끔찍한 전쟁 상태에 있다. 탈레반이 이 지역을 장악했지만 아직 많은 국가들이 공식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제안한 아프가니스탄 경유 송유관 건설은 정부들, 지도자들 및 우리 회사의 신뢰를 받는 승인된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시작될 수 없다.

유노칼은 중앙아시아 송유관이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의 기존 송유관 시설과 함께 그 지역 송유관 체계의 일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1천4십 마일(1천 6백 6십 km) 길이의 송유관은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 파키스탄 해안에 건설 예정인 수출용 터미널까지 확장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구축된 송유관은 4백 4십 마일(7백 km)에 불과하다. 직경 42인치 송유관은 하루 1백만 배럴의 수송 능력을 가질 것이다.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알라스카 경유 송유관과 비슷한 수준으로 약 25억 달러이다.

지역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 없이는 국경을 넘는 석유와 천연가스 송유관이 건설될 가능성은 없다. 우리는 정부와 의회가 유엔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평화과정을 강력하게 지원해 줄 것을 촉구한다.

아르헨티나 석유기업 브리다스도 갈등 한 몫

유노칼의 송유관 프로젝트 뒤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 자원을 둘러싼 유노칼과 아르헨티나의 석유기업 브리다스(Bridas)의 갈등에서 출발했다. 당시 탈레반은 아르헨티나의 석유기업 브리다스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카를로스 불게로니(Carlos Bhulgeroni) 브리다스 회장은 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보이면서 투르크메니스탄에 최초로 진출했다. 유노칼이 개입하기 여러 해 전에 브리다스는 1992년 투르크메니스탄 동부의 가스 채굴권을 획득했다. 또한 그 다음 해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서부 게이미르(Keimir) 석유 가스 지대의 채굴권을 획득했다. 미국은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을 파견해 로비를 하면서 브리다스의 중앙아시아 진입에 대응했다. 유노칼과 브리다스는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었다. 브리다스는 투르크메니스탄 관료들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반면에 유노칼은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외교 채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1995년 8월 아프간 내전이 정점에 있을 때, 브리다스 대표들이 탈레반 관리들과 만나 송유관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그해 10월 사파르무랏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은 뉴욕으로 초대되어 유노칼과 유노칼의 CentGas 컨소시엄 파트너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델타 오일(Delta Oil Corporation)과의 협약에 서명했다. 협약은 니야조브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존 F. 에밀(John F. Imle)유노칼 회장이 서명하고, 바드르 M. 알-아이반(Badr M. al-Aiban) 델타 오일 CEO가 증인이 되었다.

유달승 교수는 1998년 이란 테헤란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9-2000년 하버드대학교 중동연구센터(Center for Middle Eastern Studies)에서 초빙학자로 있었다. 2001-200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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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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