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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2 14:12 수정 : 2008.11.12 14:12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유달승의 중동이야기] 32. 새로운 지도자 하메네이의 등장

바니 사드르의 실각 이후 1981년 7월 24일 제2대 대통령으로 알리 라자이(Ali Rajai)가 선출되었다. 알리 라자이는 1933년 카즈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생활하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생계를 위해 14세에 고향을 떠나 테헤란으로 와 테헤란 시장에서 막일을 하면서 점차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7세 급진주의 단체 ‘이슬람전사’(Fedayan-e Eslam)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점차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후학 양성을 위해 수학 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교육계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일했다. 그는 1970년 ‘이슬람사회의 연합’에 가입해서 반팔레비 운동을 벌이다가 1973년 투옥되었고 1978년 석방되었다.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신을 대통령이기 보다는 교사로서 소개하는 등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성품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 1981년 8월 30일 그는 바호나르(Bahonar) 수상과 함께 수상실에서 회의를 하다가 폭발물 사건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무자헤딘 할크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끊임없는 테러와 암살, 대외적으로는 이라크와의 전쟁 속에서 호메이니는 평소대로 침착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이란이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국가”임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연설하는 알리 라자이

10월 2일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Ali Hoseyni Khameni)는 95%의 지지로 제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메네이의 당선은 이란 정국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사실상 대통령으로 당선된 첫 번째 성직자였다. 호메이니는 성직자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지만 국가 위기를 수습하고자 자신의 측근을 추대하면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었다. 호메이니는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성직자가 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나는 그들을 키웠다. 나는 베헤쉬티, 하메네이 그리고 라프산자니를 내놓았다. 나는 성직자의 권력 독점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 독점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이슬람의 독점을 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만이 절대적 주권의 주인이고 행사자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 독점이 아닌가?”

군복을 입은 하메네이
하메네이는 1963년 봉기부터 호메이니의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신임을 얻었다. 호메이니는 하메네이를 지식과 행동을 결합시킨 훌륭한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하메네이는 1960년대와 70년대 이념서클인 ‘쿠란연구회’를 결성했고 무슬림형제단의 주도적인 이론가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의 책을 번역했고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호메이니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하메네이에게 대학교에 가라고 권유했다. 하메네이는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다. 호메이니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선동하는 하메네이의 웅변술을 높이 평가해 1980년 1월 테헤란의 금요예배지도자로 임명했다.

하메네이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직접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나가 군인들을 독려했다. 호메이니는 이러한 모습의 하메네이를 높이 치하했다. “나의 친애하는 하메네이는 전선에서 피로에 지친 군인들과 함께 했고 후방에서 성직자복을 입고 봉사했다.” 1982년 1월 예언자 무함마드 탄생일을 맞이해 하메네이와 각료들은 호메이니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호메이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모인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함께 말하고 함께 논의한다. 나는 우리가 지난 시기 겪어온 고통으로부터 불행한 사람들을 구하고 현재와 미래에 그들에게 번영을 제공해 주기를 희망한다.”

연설하는 하메네이
하메네이의 대통령 당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하메네이의 당선을 계기가 이란에서는 성직자의 정치지배가 구체화되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 이후 정치인들이 이슬람의 원칙과 가치를 올바르게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되거나 다른 자리에 오르는 것은 성직자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이슬람을 이행해야만 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란의 대통령은 하메네이 이후 라프산자니, 하타미로 이어졌고 그들은 모두 성직자였다. 2005년 제9대 대통령으로 아흐마디네자드가 당선되면서 이란의 대통령은 성직자에서 비성직자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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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유달승의 중동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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