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6 20:25
수정 : 2007.11.06 20:25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보행권을 되찾자’
⑦ 저항의 광장이 주차장으로
서울 동소문동에 있는 한성대. 낮 동안 이 학교 운동장 한켠은 언제나 자동차로 가득하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보니 자가용을 운동장에 세워두기 때문이다. 운동장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차량이 점령하는 때도 있다. 한성대신문사 최승락(27) 간사는 “교정이 좁아 학교 쪽에서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긴 하지만, 학생들이 걸어다니는 운동장에 차가 들어와 다니는 것은 매우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학생들이 모여 각종 학내 집회와 시위를 하던 서울 흑석동 중앙대 ‘해방광장’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크게 늘어난 90년대 후반 슬그머니 주차장으로 바뀌어 최근까지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사용됐다.
때로는 낭만과 사색, 때로는 민주화를 외치던 구호와 함성으로 가득 찼던 대학 교정이 차량에 점령당했다. 광장에서 토론하고 집회를 열던 문화가 사라지며 ‘민주광장’이 어느새 주차장으로 용도변경된 것이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차량이 넘쳐나 교내 도로 한쪽에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주차돼 있거나,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마다 주차장이 조성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정의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안전도 크게 위협하고 있다. 한성대 재학생 오재은(20)씨는 “차가 운동장에 진입할 때 먼지가 날려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친구가 후진하던 차량과 부딪쳐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차량으로 인한 공해와 위험이 심각해지자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대학들도 있다. 국민대는 몇년 전부터 지상에서는 자가용 운행·주차를 금지하고 차량은 모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하는 ‘차없는 교정’ 정책을 펴, 학생들은 학생대로 편하게 걷고 차량은 차량대로 안전하게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대도 두달 동안의 공사 끝에 지난달 10일 해방광장에 의자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어 다시 광장으로 환원시켰다.
윤호섭 국민대 교수(시각디자인학)는 “‘차없는 캠퍼스’가 만들어진 뒤 공간이 넓어져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어 좋고, 공기가 좋아진데다 소음도 줄어들어 학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며 “이젠 (차량이 많은) 다른 대학에 갈 때마다 학문의 공간이 인공적인 운반 수단인 차량에 점령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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