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17 21:47
수정 : 2007.10.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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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정동의 한 횡단보도 옆 점자블록 위에 규정에도 맞지 않는 볼라드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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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보행권을 되찾자’
규정 무시한 ‘볼라드’ 설치
시각장애인인 김아무개(39)씨는 한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길거리에 가득한 자동차 진입막이용 말뚝(볼라드)에 부딪혀 정강이와 무릎 주위가 상처와 멍 투성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도에 있는 점자 블록 위에 볼라드가 놓인 경우도 많아서 안심하고 걷다가 부딪히기 일쑤”라고 말했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14일 주말을 맞아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 시립미술관을 찾은 박아무개(28)씨는 “북적대는 사람에 밀려 걷다가 볼라드를 미처 발견 못하고 부딪혀 정강이에 멍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도 주차가 보행자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볼라드가 또 다시 안전한 보행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에는 보행자 안전을 고려해 볼라드를 높이 80㎝ 이상, 지름 20cm 이내로 설치하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규정에 맞는 볼라드를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운 실정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전국 514개 지역의 볼라드 3219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볼라드의 5.8%만 규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94.1%가 충돌 때 부상 위험이 높은 화강석 등의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높이가 80㎝ 미만인 경우도 93%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런데도 볼라드를 관리하는 건설교통부는 볼라드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교통복지기획팀 홍성호 사무관은 “각 지자체나 사업시행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볼라드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문제제기로 일부 지자체에서 개선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 종로구 교통지도과 김덕부 팀장은 “워낙 규격에 맞지 않는 볼라드가 많아 부상과 민원이 잦았다”며 “2010년까지 화강석으로 된 볼라드를 충격 흡수가 가능한 재질로 전부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도 최근 점진적으로 볼라드 개선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남 목포시의회는 보행 관련 시설을 설치할 때 주민들의 사전 점검을 받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전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허주연 소장은 “보행권은 결국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며 “아름다운 거리, 쾌적한 거리를 넘어서 누구나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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