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거리의 인도 곳곳에 변압기 등 전기공급시설이 설치돼 시민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있다. 동영상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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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도심 보행자의 훼방꾼들 서울 봉천동에 살고 있는 나윤정(32)씨는 지난달 30일 유모차를 끌고 서울 종로 거리에 나섰다가 진땀을 뺐다. 변압기, 분전함, 지하철 환기구 등 인도에 설치된 각종 시설물 때문에 100m를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씨는 “사람들을 피해 걷다보면 시설물에 부딪히고, 간신히 시설물을 피하면 이번엔 사람들과 부딪힌다”며 “다시는 나오기 싫다”고 혀를 내둘렀다. 어느새 도시의 인도는 걷고 싶지 않은 길이 돼 버렸다. 각종 시설물이 인도를 장악하면서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 종로 2가 부근 정류장에서 내리다가 분전함에 부딪혀 무릎을 다친 직장인 최윤수(37)씨는 “한달 가까이 병원에 다녔지만 누구로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행권을 되찾자’ 도심 보행자의 훼방꾼을 찾아서 인도에 설치된 변압기와 개폐기, 분전함 등 전기공급시설과 지하철 환기구는 시민들의 보행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공공시설물로 꼽힌다. 1일 현재 서울시내 도로변 인도에는 한국전력이 설치한 전기공급시설이 1만4907대, 서울메트로의 지하철 환기구가 955개 들어서 있다. 녹색교통운동이 지난해 8~9월 서울 4대문 안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기공급시설과 지하철 환기구, 버스 승강장, 공중전화, 휴지통 등 각종 공공시설물이 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이르렀다. 서울 시내 전기공급시설만 1만5000여곳 달해
예산 핑계 ‘매립’ 미뤄…2009년 이후에나 결정
광진구, 주민 주도로 지상시설 없애 ‘쾌적’ 변신
퇴근시간이나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나는 종로는 서울시에서도 공공시설물이 인도를 장악한 대표적 거리다. 종로 1~6가에 설치된 변압기, 개폐기, 분전함 등 전기공급시설은 모두 159대로, 이들 대부분은 버스 정류장이나 좁은 인도에 설치됐다. 서울시와 한전은 지난 2005년부터 각각 40억원씩 분담금을 들여 종로1~6가의 시설물 정비작업을 진행해 왔으나, 2년 가까이 시설물 수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조기형 한전 홍보실 과장은 “지상에 설치된 전기공급기의 지하화를 위해 연구과제를 수행 중에 있으며 2009년 2월 그 결과에 따라 지하화 등의 방향이 결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공공시설물이 보행에 불편을 준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가로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병용 서울시 도시디자인과장은 “지난 4월부터 전기공급시설의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이미 설치돼 있는 전기공급시설을 모두 정비할 경우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 현재로선 손을 못대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의 노유거리(이른바 로데오거리)처럼 공공시설물을 인도에서 없앤 거리가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유거리는 폭 8m, 길이 390m 길에 소규모 상점들이 밀집한 곳이다. 하지만 분전함, 전신주 등 공공시설물이 거리에서 사라지면서 이곳을 찾는 시민들도 시원함을 느낀다. 1일 오전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나던 고재복(61)씨는 “몇년 전만 하더라도 상가에서 내놓은 입간판과 각종 공공시설물이 얽혀 자전거는 고사하고 사람이 걷는 것조차 힘든 길이었다”며 “지금은 쾌적한 거리를 걸으면서 여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노유거리는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거리’로 뽑혔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한 시민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근처 노유 거리를 걷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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