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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6 20:30 수정 : 2007.10.18 15:35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일중학교 뒷길. 대구 북구 산격동 산격시장 앞길.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북한산 가는길. 희망제작소 녹색교통운동 제공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보행권을 되찾자’
② 대도시도 ‘인도 없는 도로’

‘보행권을 되찾자’ 시리즈 첫 기사가 나간 지난 21일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사는 함정선(41)씨는 전화에서 “길 건너 경기 하남시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쌩쌩 달리는 차들에 질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며 “어떻게 도시 한복판 사람이 다니는 곳에 인도가 없을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가 없는 도로에 나섰다가 낭패를 입은 시민의 하소연이었다.

이튿날 <한겨레>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했다. 함씨가 말한 대로 상일동에서 하남시로 이어지는 접경도로의 약 1㎞ 구간엔 인도가 없었다. 주변 도로엔 횡단보도조차 없어 버스 정류장에서 하남시 쪽으로 가려면 목숨을 내놓고 차도를 건너야 했다.

차들이 맘껏 속도 내어 달리는 도로 위에 정작 ‘사람길’은 없는 기막힌 현실은 추석 때 찾은 고향 마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서도 그런 곳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종로구 북악산길은 서울의 대표적인 ‘인도 없는 도로’다. 종로구청은 지난해 북악산길 정상 부근 초소에서 창의문까지 3.8㎞에 걸쳐 산책로를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 뒷길을 통하거나 성북동을 지나 산책로로 접근하는 길엔 인도가 없다. 취재진이 찾은 21일 오전, 굽이진 도로에 짙은 안개까지 겹치면서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로 향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보도위 주차허용·무질서한 시설물도 환경 해쳐
차량위주 시스템 개선해 보행안전망 확보해야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일중학교 뒷길과 대구 북구 산격동 산격시장 앞길 등에도 인도가 없다.

이밖에도 도시의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녹색교통운동은 △횡단보도 부족 △보도 위 주차허용 △입간판 등 인도 위 불법시설물 관리 미흡 △전신주와 환기구 등 공공시설물의 무질서한 설치로 인한 인도 침식 등을 대표적인 보행환경 저해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 5월 울산에선 이틀새 3명이 멀쩡히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도시를 걷는 게 그만큼 위험한 일이 됐다. 지난해 7대 특별·광역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1496명 가운데 47.4%인 710명이 길을 걷다 사고를 당했다. 대도시 교통사고 사망자 2명 가운데 1명이 보행자였던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 지방에 견줘 교통사고 사망자수 자체는 적지만,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그래프 참조)

2006년 대도시 교통사고 사망자중 보행자 비중
민만기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대도시는 지방보다 교통시설이 보강돼 있지만, 자동차를 위한 시설 위주여서 상대적으로 보행자 안전이 취약한 건 마찬가지”라며 “과속에 대한 통제가 약한 데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생활도로의 보행환경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채한철 경찰청 교통관리관도 “인도 위 시설물 배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무분별하게 인도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보행환경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행우선 도로 설치, 인도 위 시설물 철거 등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적 뒷받침은 없는 상황이다. 도로교통법, 도로법, 교통안전법 등 자동차의 권리·의무와 관련한 법령이 완비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행권’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는 신명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은 시민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지금이라도 현재의 차량 위주 도로교통 시스템을 개선해 기본적인 보행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자동차에 주인 자리를 내줬다. 자동차가 주는 편리함만 추구한 대가로, 자동차를 두려워하며 생명의 위협 속에 도시 거리를 걸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광역자치단체 보행권 조례 있으나마나

예산 지원 없어 실효성 못 거둬

서울시를 비롯해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시 등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는 보행권 확보 및 보행여건 개선을 위해 조례를 제정했으나, 이를 추진할 법적 뒷받침이 없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997년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기본조례’를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제정했다. 서울시 조례는 걷기 편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가 △보행권 확보 △보행환경 시설의 유지관리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시민참여와 협력 강화 등의 책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조례는 보행권을 최초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정부 차원의 보행정책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아 관련 사업에 국가예산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서울시 자체 예산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거리 특성화 등 시범사업과 보도블록 교체 등 손쉬운 사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을 뿐, 보행여건의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명 통합신당 의원 등 30명은 지난달 13일 ‘보행권 확보 및 보행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냈다. 이 법안은 국가가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보행정책 관련 기본법인 이 법안이 마련되면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실효성 있는 조례 추진이 가능해진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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