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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0 20:10 수정 : 2007.10.11 11:17

지난달 24일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의 도이치제철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는 옌스 쿤츠(27)가 뜨거운 쇳덩이를 옮기는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그는 겉모습만 보면 한국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닮았지만 처우와 임금은 정규직과 똑같았다. 뒤셀도르프/황보연 기자

차별없는 노동 차별없는 사회 2부 대안을 찾아서
① 경제논리 이겨낸 공존의 사회


한국 사회의 ‘고질’이 된 비정규직 노동을 개선하려면 제대로 된 ‘입법’과 함께 인식·관행·정책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을 바로잡고자 노력해 온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나라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차별 없는 노동, 차별 없는 사회’ 기획의 ‘1부-무기력한 비정규직법’에 이어 ‘2부-대안을 찾아서’를 네 차례로 나눠 싣는다.

“파견노동자는 집없는 일꾼…노조가 대신 나서야”

“우린 노예노동을 원치 않는다”
노조, 파견 노동자와 연대

#1 지난달 24일 찾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도이치제철 공장. 뜨거운 쇳덩이 옆에서 공장설비를 다루는 파견 노동자 옌스 쿤츠(27)가 정규직 노동자와 뒤섞여 일하는 겉모습만 보면 한국의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쿤츠는 뜻밖에도 정규직과 똑같은 시급 12.63유로(1만6300원)를 받고 있었다. 고용주가 다를 뿐 임금과 복리후생도 차별이 없다고 했다. ‘작업복’이나 ‘점심식단’까지 차별받기도 하는 한국의 하청 노동자들과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2 이튿날 찾은 베를린 근교 루드비히스펠데에 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 공장에서도 파견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회사 쪽은 신차 생산 증대를 이유로 5명에 지나지 않던 파견 노동자를 150명으로 늘렸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술렁였다. 종업원평의회는 파견노동 자체를 반대했지만, 결국 정규직과 동일한 시급(11.11유로)을 조건으로 회사와 타협했다.

요즘 독일 노조의 최대 현안은 ‘파견 노동자와의 연대’다.

지난 2003년 독일 정부가 ‘고실업 해소’ 차원에서 파견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뒤 11만4천명에 불과하던 파견 노동자 수가 올 상반기까지 78만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노동자의 1.5% 수준이지만 독일 노조들의 위기의식은 각별했다. 독일 사회는 전통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지켜 왔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더 낮은 수준의 임금을 주는 별도 협약을 정부가 허용하는 등 각종 ‘예외조항’이 생겨나면서 곳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독일 쾰른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장에서 구직자들을 상대로 벌인 독일 금속노조의 ‘파견노동 근절 캠페인’은 파견 노동의 문제를 전하고 있었다. 당시 예시된 파견노동 계약서를 보면, 고용기간은 사업주의 마음에 달렸으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시급은 7유로(9056원)를 넘기지 않았다.

독일 노조, 산별·사업장별 단체협상 공동대처

파견노동자 많이 쓰는 악덕기업 공개 운동도

도이치제철의 뒤셀도르프공장 종업원평의회는 이런 현실에 맞서 2004년 파견회사가 지급하는 임금과 정규직이 받는 임금을 비교해 부족한 차액을 회사가 추가로 지급하도록 하는 협약을 회사와 맺었다. 콘스탄티노스 핀니디스 종업원평의회 의장은 “‘아위게’(파견법 혹은 파견 노동자의 약칭)의 규모를 조절하지 않으면, 결국 정규직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노예노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93명인 파견 노동자 중 일부는 연말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종업원평의회가 이 공장 노동자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파견 노동 확대에 대처하는 독일 노조의 가장 큰 무기는 단체협상을 통해 기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먼저 독일노총(DGB)과 파견업사용자단체(BZA)가 전국 단위에서 대략 시간당 7유로선의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그 뒤 다시 각 사업장의 종업원평의회가 회사 쪽과 협상을 통해 파견 노동자의 처우를 한 단계 더 높인다. 물론 독일도 평의회가 없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기적 태도를 보이는 곳의 사정은 좋지 않지만, ‘차별 없는 노동’을 위한 움직임은 독일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종업원평의회의 롤프 디터 블룸은 “파견 노동자들을 투입할 때부터 평의회 차원에서 꾸준히 사용자와 대화해 왔다”며 “비정규직은 ‘집 없는 일꾼’과 같아서 평의회가 나서지 않으면 대신 말해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8월에는 사용 사업주와 파견 사업주, 노조 3자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협약을 맺는 사례도 나왔다. 자동차업체인 아우디가 금속노조뿐 아니라 파견회사 아데코와 함께 파견노동자의 처우를 높여주기로 한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대표적 파견회사를 연루시켜 임금 덤핑을 막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저임금 노동’의 ‘유혹’에 맞닥뜨린 기업을 설득하는 독일 노조의 논리는 뭘까? 요르그 바이간트 독일금속노조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지부 사무총장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업이 파견 노동자를 많이 쓴다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요인”이라면서 “이런 ‘악덕 기업’을 공개 지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훔 지역의 노키아는 인력을 공급받은 네 군데 파견회사의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자, 기업 스스로 기존 파견회사와 계약을 파기하고 좀더 나은 파견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몇 해 동안 노조 쪽 당원들의 이탈에 고심해 온 사민당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8월 ‘파견 노동 제한’ 운동에 동참한 사민당은 금속노조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주 근무지를 옮겨 다니고 일자리 자체가 자주 중단된다면 장기적 가계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이는 가족 정책을 중시하는 당의 원칙과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뒤셀도르프·루드비히스펠데(독일)/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 기획자문위원 명단

안남기 응용경제연구소 연구위원/스페인

박명준 전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연구원/독일

정희정 틸버그대학 노동연구소 연구원/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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