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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6 20:09 수정 : 2007.10.12 10:13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는 자동차·가전부품 제조에서 원단 염색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영세 기업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청업체의 또 다른 하청업체로 ‘기업 먹이사슬’의 끝단에 자리한 50~60대 성수동 ‘사장님’들은 “자식 세대에는 공장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직원 70여명을 둔 ㅅ산업의 권아무개(48) 이사는 “10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로 직원들을 채운다”며 “20만~30만원이었던 기본급이 70만원대로 올랐는데, 납품가는 기껏 10% 올랐으니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말했다. 5일 낮 성수동 한 영세공장의 노동자들이 작업 분진이 가득한 일터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차별없는 노동 차별없는 사회-1부 무기력한 비정규직법
④ 우리도 약자

“대기업 납품업체가 지난해 1300억원 매출을 올렸는데, 영업이익은 고작 8억원이 났다더군요. ‘이런 비즈니스 왜 하나’ ‘공장 팔아서 현대차·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묻어두지 ….’ 사장님이 한탄을 해요. 결국은 ‘우리 직원들 400명 한 해 먹고 살았으니 됐다’고 하더군요. 그냥 사명감으로 하는 겁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의 김산 기획조사팀장의 말이다. 이 조합 300여 회원사는 현대·기아차와 지엠대우 등 자동차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하청업체가 대부분이다. 실제 자동차 부품 등 중소기업들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3.73%로 국내 제조업 평균 5.34%와 견줘 현저하게 떨어진다. 피나는 경영·기술 혁신으로 올해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기면, 이듬해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80억원 정도 단가를 깎아 오라”고 하기 일쑤다. 협동조합 이사장인 신달석 동명통상 사장은 “끝없이 원가 절감을 해야 하니, 기술 개발은 제쳐 두고 값싼 인력만 찾게 된다”며 “우리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원·하청 업체간의 불공정 거래가 ‘약자들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먹이사슬을 따라 약자가 더 아래의 약자를 쥐어짜고, 고용은 ‘차별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대기업이 사내 하도급 차별로 인건비와 노무관리 부담을 줄이는 것처럼, 중소기업인 하청 업체도 똑같은 흉내를 낸다. 아래로 갈수록 허울만 정규직일 뿐, ‘임금·복지 격차’와 ‘해고 불안’이라는 이중 차별에 옥죄인다. 또 제대로 된 근로계약도 없이 일당으로 계산한 월급·주급을 받는 비정규직도 흔하다.

100원 이익 남기면 납품단가 80원 후려쳐
‘하청업체 쥐어짜기’ 값싼 인력 고용 악순환
하도급 단체행동땐 거래끊어…저항 꿈못꿔

김현국(31·가명)씨는 지난해 지엠대우의 사내 하도급 업체에 들어갔다. 날마다 지엠대우 공장으로 출근하니 모르는 이들은 지엠대우 직원으로 본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과 김씨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임금 격차만 매달 70만~100만원씩 나고, 온갖 차별에 ‘천출’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월급은 잔업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주말 특근을 꼬박 채워야, 세후 170만~230만원이다.

일감이 달릴 땐 ‘해고 1순위’다. 물론 대기업은 사내 하도급 업체와 계약 해지를 할 뿐이다. 해고는 사내 하도급 업체 사장이 한다. 하지만 물량 계약 때마다 직원 머릿수와 임금 수준까지 지엠대우가 정하는 판에 해고는 원청업체 마음이다. 김씨는 “우리 사장은 힘이 없다”며 “올초 우리 라인의 절반 이상을 해고할 때도 미안해만 하더라”고 말했다. 김씨 동료들 역시 ‘원래 그런 자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순순히 해고를 받아들였다.


지엠대우에 납품을 하는 인천 남동공단의 ㄷ업체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이곳 사업장에서 일하는 350명 가운데 150명은 사내 하도급 업체 소속이다. ㄷ업체 정규직과 150명 사내 하도급 업체 직원이 받는 차별은 지엠대우에서와 비슷하다. 차별 대상의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나마 20% 안팎인 한국인 직원들은 외환위기 때 밀려난 이들이다. 한때 ㄷ업체 계열사의 정규직 직원이었던 이들은 정리해고 대신 사내 하도급 취업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2등 시민’으로 살아남은 대가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먹이사슬에 묶인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의 눈치만 볼 뿐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사업실의 이상우 국장은 “대기업은 사내 하도급업체 직원들이 단체행동 움직임을 보이면 물량을 아예 안 줘서 회사를 공중분해하는 간단한 대응 방식을 사용한다”며 “중소업체의 사내 하도급 이하로 내려가면 고용허가제에 묶이거나 불법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들이라서 부당한 차별에 저항할 생각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최악은 2~3차 하청을 받는 영세업체들이다. 이곳에는 이미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조차 의미 없는 ‘질 나쁜 일자리’만 존재한다. 이제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이런 기업들은 아예 공장을 돌리지도 못한다. 영세업체 경영자들은 “우리도 언제 길거리로 나앉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실 조성재 연구위원은 “1~2차 원청업체가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밸류 엔지니어링(가치분석)’이라는 칼을 위두르면 하청업체들은 속절없이 쥐어짜인다”면서 “하청업체의 인력과 임금 규모까지 들여다 보며 단가를 후려치는 ‘힘의 논리’ 앞에서 ‘일자리의 질’은 머나먼 얘기”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도축장 정규직은 소잡고, 비정규직은 돼지잡고

차별시정제도 피하려 ‘어이없는 편법’ 동원

사업장 규모별 비정규직 비율
지난달 3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뜻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비정규직법 시행 뒤 처음으로 지난 7월24일 ‘차별시정 신청’을 냈던 고령축산물 공판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19명 가운데 일부였다. ‘같은 도축 일을 하는 정규직과 임금차별을 시정해달라’던 8명이 10여일 만에 그 요구를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먼저, 공판장은 이들이 차별시정 신청을 낸 지 이틀 만에 도축 일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환경미화·냉동실보조 업무 등으로 전환배치했다. 도축 일을 같이 해온 정규직과 업무를 완전히 분리시킨 것이다. 결국 9명은 사쪽의 뜻에 따라 외주업체 직원으로 신분을 바꾸고 나서야 도축 업무를 다시 맡았다. 이들의 신분말고 또 달라진 게 있다면 ‘소 도축’은 정규직이, ‘돼지 도축’은 외주업체 직원들이 나눠 맡은 것이다. 이를 두고 정세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고령축산물공판장지부장은 “노골적인 차별시정 회피 행위”라고 분개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지난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에 담겨 도입된 차별시정 제도가 기업들의 ‘편법 대응’으로 곳곳에서 무력화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업무를 ‘소 도축’과 ’돼지 도축’ 처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분리시키거나, 비정규직의 업무를 외주화하면 기업의 차별시정 의무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 제도 아래서는 파견노동자들도 차별시정 신청이 가능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파견업체들 대부분이 영세해 차별시정 명령이 내려져도 실제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6일까지 각 지방노동위에 접수된 차별시정신청은 사업장 수로 따져 10곳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 정규직 노조가 발벗고 지원하는 경우다. 계약해지의 위험을 감수하며 차별시정 신청을 제기할 비정규직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뻔한 분쟁도 법정에 내몰아 “허수아비 노동행정 불신만”

ㄱ씨는 백화점에 입점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ㅅ 모드’의 봉제공장에서 특수고용직인 이른바 ‘객공’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회사의 지시에 따라 잔업도 했지만, 회사 쪽은 ㄱ씨에게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다. ㄱ씨는 노동청에 진정했지만 노동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 노동법률지원센터 법규국장인 박성우(34) 노무사는 6일 “회사가 고용주 노릇을 한 정황이 워낙 뚜렷해서 소송 판례 상 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ㄱ씨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며 “노동부는 법리 다툼의 여지가 약간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법정으로 떠밀려는 경향이 심하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참터의 김철희(34) 노무사도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노동 관련 사건에서 노동부를 거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동부가 노동자의 권리구제에 소극적”이라며 “이 때문에 노조가 없는 비정규직이나 개별 노동자들은 그냥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풀무원춘천공장은 지난 7월부터 주5일제가 적용되면서 생산직 30여명의 임금을 깎았다. 노조의 진정에 노동청은 “연간 기준”를 거론하며 “(현재로서는) 법 위반이 없다”고 회신했다. 이 사건을 맡은 김재광(38) 노무사는 “주5일제 시행 때 ‘기존의 임금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법 취지를 일선 근로감독기관이 외면한 것”이라면서 “노동부의 이런 허수아비 같은 자세가 노동행정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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