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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09:14 수정 : 2007.10.12 10:09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이뤄진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도장공장을 점거하고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31일 파업을 한 비정규직 노조는 “파업 기간 동안 정규직 노조가 구사대 노릇을 하며 파업을 만류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제공.

[차별없는 노동 차별없는 사회]
1부. 무기력한 비정규직법 ③ 해법찾기 ‘출구’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터가 아닌, (정규직) 조합원의 소중한 일터를 침해하지 말라.”

지난달 23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이 ‘원청업체의 교섭 참가’를 요구하며 도장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가자, 이 회사 정규직 노조가 낸 선전물 내용이다. 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을 노골적으로 만류했다. 이준영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은 “회사 관리자도 아닌 정규직 노조원들이 구사대 노릇을 했다”며 “정규직 노조가 지난해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해선 안 된다’고 하더니, 이번엔 ‘도장공장에서만큼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외주화·분리직군 추진 합의 해줘
‘비정규직 보호’ 공허한 구호 여전

정규직 노조의 지원은커녕 방해를 받았던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결국 변변한 성과도 얻지 못한 채 1주일여 만에 막을 내렸다. 이어 비정규직 노조는 기존 정규직 노조와 통합을 결정했다. 같은 조직 안에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두고 통제하려는 정규직 노조의 의도와 파업투쟁마저 무위에 그친 비정규직 노조원의 처지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열악한 노동환경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서 도와야 할 정규직 노조들의 ‘이기적 태도’는 여전하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외치지만, 일선 현장 조직들에선 ‘공허한 구호’가 되고 있다.

일선 정규직 노조들의 ‘비정규직 외면 실태’는 2005년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비정규기금 모금 상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50억원이 목표였지만, 8월 말까지 모금된 금액은 36.4%인 18억2천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지엠대우차 창원공장에선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우려던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대의원들로부터 불신임을 받고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노조 집행부가 해고된 사내하청 노동자 86명의 복직을 지원하는 지역대책위원회에 참여하려 한 게 발단이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최근에는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외주화나 분리직군, 라인 재배치 등을 회사 쪽과 합의해 버리는 일도 빈번하다. 현대백화점 정규직 노조는 지난 7월 회사와 계약직 노동자의 계산업무 외주화에 합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백화점은 이랜드그룹과는 달리 ‘조용히’ 외주화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계약과 분리직군의 형태로 ‘중규직’이 되는 것도, 대부분 정규직 노조와 사용주가 협상을 벌인 결과다.

급기야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들의 요구를 이루려는 ‘수단’으로 삼는 정규직 노조들도 생겨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의 한 일선 노조위원장은 “회사 쪽이 차별시정을 피하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와 지위를 무리하게 나누고 있다”며 “(정규직의 이해가 걸린) 단체교섭 과정에서 회사를 압박해야 할 때 공론화시킬 것”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처럼 정규직 노조들이 ‘대의명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김성희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외환위기를 전후로 고용조정을 겪었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종의 완충장치로 삼으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며 “개별 기업 수준의 노사관계에선 ‘명분’만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반면 양보와 연대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나서는 정규직 노조들도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주로 산별노조의 경험이 축적된 노조들이다. 그 가운데 지난 7월 병원 사용자단체와 정규직 임금인상분 3분의 1 가량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쓰기로 합의한 보건의료노조는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방치되고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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