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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6 20:50 수정 : 2007.09.26 20:58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 인근 카모게로 에이즈고아원에서 30개월 된 웬디가 두 뺨 가득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이 고아원은 트리산요 카톨릭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가보로네/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⑥ 또 하나의 전쟁-보츠와나·남아공

‘콘돔없이 섹스없다.’(No condom No sex)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하모니 광산. 남아공에서 세번째 큰 금광인 이곳 들머리에 붙은 에이즈 예방 구호다.

8월초 찾은 이곳에서는 ‘에이즈와 전쟁’이 한창이었다. 남아공 대표적 에이즈관련 시민단체인 치료접근운동(TAC)이 전국 탄광을 순회하며 에이즈 예방교육 중이었다. 활동가들은 광부들을 모아놓고 에이즈 검사부터 받으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200만명 가량이 에이즈 감염 사실조차 모른 채 생활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모두 얼룩무늬 전투복 바지 차림이고 현장 사무실은 국방색 야전 천막이었다. 마치 작전 중인 군대처럼 보였다. 티에이시 활동가 다니엘 토드에게 “왜 군인처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들은 에이즈와 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최고 감염률에 가족·사회 잇단 ‘파탄’ 위기
‘감염→사망’ 편견 깨기 꿈틀…가난 극복이 관건

보츠와나·남아공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놓인 상황을 보면 ‘에이즈와 전쟁’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세계 인구의 13%가 사는 이 지역에 세계 에이즈 감염자의 63%가 산다. 이 지역 에이즈 사망자는 전 세계 에이즈 사망자의 72%를 차지한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보건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맞먹는 재앙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 등은 “보츠와나·나미비아·스와질랜드·짐바브웨·남아공 등 남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확산이 국가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에이즈는 △사망률 증가→인구 감소→노동인구 감소·숙련 노동력 상실 △막대한 에이즈 치료비 지출→저축 감소 등을 초래한다. 에이즈는 잠재성장력에 절대적 구실을 하는 기술과 교육·경험 등 ‘인적자원’의 총량을 줄인다. 에이즈 사망자의 80%가 한참 일할 나이인 20~40대이어서 사회를 지탱할 노동력과 기술축적의 기반이 무너진다. 미국 국가정보자문회의(NIC)는 에이즈로 생산성 하락과 경제 위축으로 2010년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내총생산이 2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에이즈는 가족관계도 파탄낸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고아’가 급증하고 있다. 8월초 찾은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에서 17㎞ 떨어진 카모게로 고아원. 점심 때라 두살부터 여섯살까지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 250명이 식당에서 옥수수와 콩이 섞인 수프를 먹고 있었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은 보츠와나의 에이즈 고아를 16만명으로 추산했다. 보츠와나 인구가 177만명이므로 이 나라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에이즈 고아인 셈이다. 다이아몬드 생산량 세계 1위인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모범생’이다. 종족대립이나 쿠데타, 내전도 없고 수십년동안 안정적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 감염률 세계 최고 36%란 멍에를 쓰고 있다.

보츠와나에서 부모가 에이즈로 숨지면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한테 맡겨지거나 마을 공동체가 키운다. 에이즈 고아들은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로부터 에이즈를 감염된 채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표준체중보다 마르고 버짐이 생기거나 피부가 약한 아이는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의심받는다.

카모게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헬레나 수녀의 도움으로 할머니와 사는 ‘에이즈 고아’ 아톨랑(4)의 집을 찾았다. 구멍 뚫린 함석지붕 방 2칸짜리 4평 집에 6명이 산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침대로 쓰는 매트리스 2개뿐이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도는 없다. 아톨랑의 가족 가운데 고정 수입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헬레나 수녀는 “이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게 큰 일”이라고 말했다.

숫자로 본 아프리카 에이즈
심각한 에이즈 피해에도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비난과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 남아공의 여배우 코니(31)는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올초 남아공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 <소울시티>는 에이즈 문제를 다뤘다. 이 드라마 주연 코니는 실제 10년 전 에이즈에 감염됐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코니는 “드라마 시청자들을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며 “에이즈 감염자도 얼마든지 열심히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즈 환자도 성공할 수 있고, 지적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한다.

베엠베(BMW)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환하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 코니는 더이상 에이즈가 불치의 천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치료받을 돈만 있다면 에이즈는 만성질환의 하나일뿐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좋은 치료제가 나와서 미국 에이즈 환자의 평균생존기간이 8년에서 24년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에 드는 치료비용은 약값이 워낙 비싸 1인당 61만8천달러에 이른다.

아프리카 임산부들은 태아의 에이즈 감염을 50% 이상 줄일 수 있는 약값 8달러가 없어 에이즈 모자감염에 노출되어 있다. 에이즈 퇴치의 해법은 아프리카의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그 길은 멀고 험해 보였다.

요하네스버그 가보로네/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감염된 사랑? “희망의 증거!”

편견 뚫고 에이즈여성과 약혼
약혼녀 “불치 아니다” 시민운동

은코사나 빌라카지(왼쪽)와 에이즈 감염자 난야트얌보 마카렐라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웨스트딘의 하모니 금광에서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벌이던 중 웃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약혼했다. 요하네스버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귈까, 말까.” 이틀동안 밤새 고민했다. 은코사나 빌라카지(27)는 약혼녀와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에 수십번 되물어봤다. “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여자의 저 상태까지 모두 사랑하는가”. 결론은 “사랑한다”였다. 두 사람은 1년6개월 동안 연애를 하고 올 7월23일 약혼했다.

2005년 12월 빌라카지는 어머니집 뒷집에 사는 난야트얌보 마카렐라(25)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마카렐라는 에이즈 감염자였다. 마카렐라는 첫 만남 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마카렐라와 사귀는 빌라카지를 두고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남아공 인구 4270만명 가운데 13%(541만명)가 에이즈 감염자이지만, 비감염자가 감염자와 사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남아공에서도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극심하다.

2005년 1월 마카렐라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처음 알았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고 친구들은 마카렐라가 곧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카렐라는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에이즈를 이길 수 있다. 나는 괜찮다”고 외쳤다.

마카렐라는 에이즈가 불치의 병이 아니라 독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독감은 완치가 불가능하고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를 하는 것처럼, 에이즈도 항바이러스 치료를 하면 얼마든지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

마카렐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즈와 편견에 굴복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에이즈 관련 시민단체에서 상담·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 나처럼 여러분도 나아지고 있다.” 마카렐라는 숨거나 움츠리지 않고 에이즈 감염자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했다.

빌라카지와 마카렐라는 결혼하면 아이도 가질 계획이다. 치료법이 발달해 조절만 잘하면 에이즈 감염이 되지 않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칼레라는 “약혼자를 빼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고 말했다.

글 권혁철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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