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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7 19:15 수정 : 2007.12.17 19:15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칼럼

“2000년 새해 아침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온 국민을 사로잡았다. 그만큼 광고 효과는 대단했고, 지금까지도 비슷한 광고들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부유한가. 적어도 내 집에 세탁기와 청소기가 있으며 전기밥솥과 자동차가 있으면 이미 3∼4명의 하인을 두고 있는 사대부 집 주인이 아닌가. 왕이나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사람들은 아직 스스로 가난한 하인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정말 양반들이 하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이 같이 가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

며칠 전 어떤 분한테서 받은 전자우편의 내용이다. 국민 대부분이 이미 사대부 집 주인이 되었는데 스스로는 하인 행세를 한다는 통렬한 시대 비판이다. 잘살기로 하면 끝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이미 잘살고 있는데 계속 지나친 탐욕을 부린다면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법이다. 끝없는 물질적 탐욕 속에 우리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의 공약은 대부분 이런 ‘하인’들에게 영합하는 것들이다. 모두 부자가 되도록 하겠다거나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들이다. 심지어 ‘팔번 찍으면 팔자 바꾸게 해 주겠다’는 황당한 공약도 한다. 천박하고 부질없는 공약들이다.

우리와 동시에 진행 중인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연설을 들어보라. 이들의 연설이 우리나라 방송이나 언론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연설이 그 나라 국민도 아니고 투표권도 없는 우리의 마음조차 설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연설에는 단순한 정책 이상으로 영혼과 정신의 호소력, 공동체의 지향에 대한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나는 백인의 미국, 흑인의 미국, 아세안의 미국, 히스패닉의 미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저 우리 모두의 미국이 존재한다고 여길 뿐입니다. …… 그 미국은 벽난로 앞에 둘러앉은 가난한 이주민의 나라이기도 하고 꿈을 좇는 모든 아이들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이곳이 바로 미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바마가 전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했던 연설문이다. 마치 마틴 루서 킹처럼 그의 연설에도 꿈이 담겨 있다. 주류가 아닌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삶을 살아왔고, 미국 사회는 그것을 인정해 마침내 그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한 국가라는 공동체를 끌어가는 힘이 부자 만들어 주겠다는 허튼 약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오히려 기업인이나 재정경제부 장관이 할 만한 일이다. 부자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뽑았다가 온갖 부패 혐의 속에 쿠데타의 명분을 만들어준 타이 총리 탁신이 이 대목에서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용기와 신뢰, 그리고 가치와 비전을 주는 일이다. 21세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 중에서 우리는 최선의 기준을 가지고 뽑아야 한다. 늘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최악의 후보보다는 차악의 후보를 뽑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좋은 사회를 열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투표에 달렸다. 그리고 차가운 연말 우리도 ‘하인’ 행세는 그만두고 주변에 밥이라도 굶고 있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볼 줄 아는 ‘사대부’ 행세를 해 보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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