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2 18:14
수정 : 2007.10.02 18:14
|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박원순칼럼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미얀마(버마) 민중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세계 언론들에 의해 전해졌다. 미얀마 군사정권이 발표한 사망자 수는 13명이지만 인권단체는 군정의 무력 진압으로 138명이 숨지고 승려 2400명을 포함해 6000명이 수감된 것으로 추산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군정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 탓에 잠시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는 3천명의 희생자를 남긴 1988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사태를 연상시키면서 국제사회의 분노와 제재, 항의시위를 불러오고 있다. 유엔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 러시아도 이번 사태에 규탄성명을 냈다. 특히 미국 정부는 군사정권 최고지도자인 탄 쉐 국방장관 등의 자산 동결을 지시하고 최고 관리 14명에 대해 여행금지 조처를 내렸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도 이러한 국제적 분노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55개 시민단체와 누리꾼들은 각각 성명서를 내놓고 미얀마 대사관 앞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외교부가 취한 조치란 겨우 “미얀마를 여행 자제 지역으로 상향조정하고 현지에 체류 중인 국민은 신변안전에 특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정도였다. 이러한 미온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당장 유럽연합 루이스 미셀 개발·인권국장으로부터 “중국과 한국과 일본이 미얀마 자원개발 때문에 미얀마 군부를 지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으로 창피한 노릇 아닌가. 우리가 군사독재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수많은 피의 희생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것이 어제의 일인데, 꼭 같은 시련을 겪고 있는 미얀마 국민에게 이렇게 등을 돌릴 수 있는가. 이러고도 우리가 문명국의 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정부가 보이는 이러한 미온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미얀마에는 대우인터내셔널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해서 가스전 개발사업과 함께 목재, 봉제류 생산법인을 운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익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 나라 국민의 인권과 심각하게 충돌한다면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설리번 원칙’이라는 것이 있었다. 1980년대 인종차별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남아공에 대해 미국의 기업들이 무역이나 거래를 하지 말라는 원칙이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제재조처의 참여로 결국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은 폐지되었고 백인 소수정권은 물러나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진정한 국가이익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미얀마의 독재정권에 협력하여 자원개발을 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독재정권 협력국가로 찍혀 미얀마 국민의 미움을 사는 것 중에 어느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할 것인가. 과거 내가 인권운동을 하고 다닐 때 어느 국제회의장에서나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동티모르 임시정부의 대변인 호세 라모스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일제하의 우리 임시정부 인사들도 그러했지만 동티모로 임시정부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도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 후 동티모르는 독립했고 호세 라모스는 어엿한 독립국가의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 미얀마 군사정권이 저 시민들을 억압하고 몇 년이나 견디겠는가. 우리는 도도한 민주화의 흐름에 견딜 수 있는 독재정권은 없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미얀마 독재정권과의 수치스런 관계를 확실히 청산하고 문명국의 일원으로서 미얀마 민중들의 정당하고도 의로운 저항에 확실한 지지를 보내야 한다.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