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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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 지음, 김영사)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것이 우상화하거나 신화나 이데올로기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법이다. 논술시험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 논술에 대한 여러 신화나 이데올로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넘쳐난다. 냉정하게 실체에 접근하는 태도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는 한국의 논술시험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바칼로레아는 ‘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쓰라는 식인 데 반해 한국의 대학들에서 내는 논술은 채점하기 편하게 출제되며 일정한 패턴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제시문의 존재가 그것을 보여준다. “제시문을 여러개 내는 것은 수험생이 마음대로 답안을 쓰지 못하게 가둬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따라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대신 철학, 사회학, 소설, 인문학 등의 배경지식만을 암기식으로 쌓아놓는 것은 효율적인 공부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요리법을 모르면 음식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요리법을 익히는 게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저자가 말하는 요리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논증 연습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생각하는 법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유능하지만 부패한 공무원과 무능하지만 청렴한 공무원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와 같은 문제를 떠올려본다. 생각을 전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부패하면서 유능할 수는 없다’(뇌물은 공익과는 배치되는데 공무원은 공익을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질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임기 중 업적이 많았는데 임기 후에 뇌물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는 어떤가.” 하품이 전염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전염된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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